[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우영우, 자폐스펙트럼 장애

입력 2022. 8. 12.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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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자폐"라고 말하고, 배려하는 사회 오길


‘이상한 번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인 P는 우영우와 같은 자폐스펙트럼 장애다. 하지만 우영우처럼 걸음걸이나 움직임의 독특함이 별로 없어 겉으로 보기에는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사실 지능이 좋은 자폐스펙트럼 장애의 경우 우영우처럼 눈에 띄는 독특한 움직임을 보이는 경우는 별로 없다). 하지만 친구들이 좀 지내다보면 자기들과는 ‘뭔가 다르다’는 걸 느낀다.

P는 곤충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신이 난다. 처음에는 아는 것이 많다고 신기해하며 듣다가 나중엔 슬슬 피하기 시작한다. 상대 말은 듣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곤충 얘기만 하니 다른 사람들과 대화가 잘 안 되고, 친구를 만들지 못한다. 아무도 P에게 장애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좀 이상하다’, ‘괴짜다’, ‘성격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해를 받기도 하고 결국은 괴롭힘, 놀림을 받다가 따돌림을 받게 된다.

P는 지능이 좋아 공부를 잘하고 기억력도 매우 우수하지만 수학, 과학만 좋아한다. 친구들은 한참 축구나 야구에 빠져 있지만 P는 운동신경이 둔해 잘하지 못한다. 체육 시간에 축구를 하더라도 P는 어떤 팀의 선택도 받지 못하고 마지막에 남게 되고, 경기 중 실수라도 하게 되면 친구들의 빈축을 사고 원망을 듣게 되니 운동을 더 하기 싫다. P는 어려서부터 소리에 민감한 편이었다. 청소기 소리나 드라이 소리를 들으면 자지러지게 울었고, 공포감마저 느끼는 듯했다. 언어 발달이 늦은 것은 아니고 책을 읽는 것도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대화할 때는 너무 현학적으로 문어체의 말투나 지나치게 수준 높은 단어를 사용하여 언뜻 성숙한 듯도 보이지만 뭔가 어색하고 말의 높낮이와 톤도 어색하다. 양손을 사용하여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힘들고 소근육 활동이 부족하여 글씨를 쓰거나 가위질 등도 유난히 못한다

자폐스펙트럼 장애(또는 아스퍼거 장애)는 ‘스펙트럼’이라는 표현처럼 증상의 정도가 매우 다양하다. 전형적인 자폐 장애와 달리 언어 발달, 이해는 정상이거나 뛰어난 경우가 많으나, 문자적 언어적 이해력에 비해 비언어적(표정, 분위기, 제스쳐등)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은 현저히 부족하다. 즉 말로 안 해도 알아듣는 ‘눈치’가 부족하다. 이런 능력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더 중요하고 실용적인 능력인데도 말이다. 다른 사람과 소통을 잘하려면 언어적인 이해능력, 어휘력도 중요하지만 상대의 감정, 생각, 표정을 보고 ‘마음을 읽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심하면 언어의 톤이 일정하거나 특이한 억양으로 말하기도 한다. 상대의 마음을 읽지 못해 상대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속임수에도 잘 속아 넘어가고, 순진하고 고지식하다. 거짓말을 잘하지 못하고 모범생인 경우도 많다. 관심의 범주가 제한되어 있어 특정한 것에만 꽂혀 있고, 또래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것에는 관심이 없으니 또래들과 공통의 관심사가 없어 어울려 놀거나 대화거리가 없다. 양손의 협응 능력이 부족하고, 대근육의 움직임도 둔한 경향이 있다.

여러 가지 감각적인 특성이 있어 생활이 불편하기도 하다. 촉각적인 방어가 심하여, 다른 사람과 닿는 것에 민감하고 옷의 감촉이나 음식이 닿는 느낌에도 예민하여 편식도 심하고, 일정한 옷만 입으려 고집한다. 또 머리 감는 것, 이발하는 것도 싫어하고 피해 위생관리에 어려움이 생기기도 한다. P처럼 청각이 예민하여 잠을 깊이 자지 못하고, 놀이공원, 사람이 많은 쇼핑몰이나, 식당 등을 안가려 하거나, 가더라도 문제행동을 일으키거나 심하게 울기도 한다. 시각적으로도 빛에 민감하여, 일정한 색으로만 장식을 하고 옷도 입으려하고, 바닥만 보고 걸으려하기도 한다.

이런 특성들은 타고난 것인데도 가족이나 사회가 아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공공장소에서 이유 없이 울고, 떼쓰는 행동, 자해, 공격성을 보이기도 하여, 말썽꾸러기, 골치덩어리로 치부되어 미움을 받기도 한다. 4~6세경에 여러 특성이 전형적으로 나타나니 이때 진단을 받는 것이 좋고 적어도 입학 전에는 진단을 받아 대비하는 것이 좋다. 진단은 연령에 따라 ADOS, ADIR등의 도구를 사용한다.

드라마를 보면서 우영우처럼 ‘저는 자폐인입니다’라는 걸 당당히 말하고 사회구성원이 자폐인의 특성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회가 오기를 그려본다. 그런 ‘드라마 같은 세상’이 오기는 하려나...... 현실은 장벽이 여전히 높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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