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은 향기를 남기고①] "공연장에서 나던 그 향기 뭐야?"

박정선 2022. 8. 12.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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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슨카운티의 다리' '빅피쉬' 등 후각 효과 사용
"향기 효과, 관객들의 무대 몰입감 높여"

여성을 유혹하는 기술 중 하나인 ‘차머’(chamer)의 무기는 즐거움과 편안함이다. 예컨대 어린 시절 부모가 주었던 편안함을 연상시키는 향수나 향기 등 머릿속에 각인된 기억을 끄집어내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식이다.


무언가를 기억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향기’는 가장 강력한 기억의 방식이다. 후각은 다른 감각에 비해 1만 배 민감하고, 100배 이상 선명한 기억을 남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양한 분야에서 ‘향기 마케팅’을 벌이는 이유다.


뮤지컬 '빅피쉬' 공연 장면 ⓒCJ ENM

문화예술계도 예외는 아니다. 대표적으로 영화관에선 시각과 청각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것을 넘어 2010년 전후로 4DX, 즉 촉각과 후각 등의 감각을 더하면서 관객들의 몰입감을 높이고 있다. 전시회에서도 각 전시관 콘셉트에 맞는 향기를 입히면서 감동을 더하고, 공간을 특별하게 기억하도록 한다.


공연계에서도 꽤 오래 전부터 향기, 냄새를 활용한 작품들이 있어왔다. 2014년부터 매년 진행되고 있는 박칼린 연출의 뮤지컬 ‘미스터쇼’에서는 관객들이 공연을 기다리는 로비에 관능적이고 포근한 향을 퍼트려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섹시한 남자들이 등장하고 여자들을 위해 준비된 공연인 만큼 섹시한 향을 설치해 더욱 공연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후각을 통해 전달하는 작품들도 있다. 마치 관객들이 무대 위의 상황을 함께 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연출하는 것이다. 지난 2017년 한국어 초연 후 2018년 재연으로 관객들을 만났던 뮤지컬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는 주인공이 요리하는 장면에서 실제 음식 냄새가 서서히 객석으로 퍼지면서 관객들의 식욕을 자극하도록 했다.


CJ ENM 공연사업팀장 임영조 PD는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따라 관객들도 마치 무대 위 공간에 함께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향의 사용은 공연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면서 “러시아의 한 공연에서도 관객들이 입장했을 때 삶은 감자의 구수한 향을 미리 맡을 수 있게 하여 저녁 식사 시간에 극장을 찾아 준 관객들의 식욕을 자극하면서 역으로 관객들의 극 도입부 집중도를 높였다. 그 밖에도 많은 공연들에서 관객 몰입과 오감 자극을 위해 향기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임 PD는 지난 2019년 초연한 뮤지컬 ‘빅피쉬’에서 직접 향기 마케팅을 선보이기도 했다. 당시 작품의 1막 후반부에 객석 곳곳에 수선화 향이 퍼지면서 관객들의 후각을 자극했고, 관객들을 후기를 통해 해당 장면의 후각적인 연출에 높은 만족도를 드러내기도 했다.


임 PD는 “‘빅피쉬’의 경우 아버지가 아들에게 자신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과대 포장해 들려준다. 1막이 진행되는 동안 관객들은 자연스레 아버지 말이 허풍임을 인지하게 된다. 하지만 1막 마지막 아버지의 수선화 프러포즈 장면을 통해 관객들의 이런 확신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다시 말해 아버지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사실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면서 “눈앞에 펼쳐지는 환상 같은 순간이 사실처럼 느껴지게 하는 낭만적인 효과가 필요했고, 무대 바닥이 열리면서 펼쳐지는 수 천 송이 수선화 무대 콘셉트와 함께 극장 전체에 수선화 향이 퍼지는 효과를 사용해 그 의도를 실현시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향을 분사하는 과정에서 고민도 많았다. 후각은 매우 민감하고 까다롭다. 때문에 누군가에겐 ‘아름다운 향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겐 ‘최악의 냄새’가 될 수도 있다.


임PD는 “대다수 관객들에게 거부감이 최대한 덜 드는 향을 선택하는 것이 최우선이었고, 그렇게 선택된 향은 향기 분사 장치를 이용해 분사했다. 넓은 객석에 골고루 앉아 있는 관객들이 최대한 동시다발적으로 향을 맡을 수 있게끔 분사 장치를 배치했고, 무대 위 수선화가 보이는 순간의 시점부터 관객들이 향을 맡게 되는 시점을 계산해 분사시점을 여러 번 테스트한 후 극에 사용했다”면서 후각효과를 사용함에 있어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는 지금까지도 많은 공연장에서 후각 효과를 쉽게 사용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뮤지컬 제작사 관계자는 “공연을 기획하면서 후각을 자극할 수 있는 효과에 대해 논의를 한 적은 있지만 실제로 공연에서 활용하진 않았다”면서 “작품과 어울리는 향이라도 관객들에 따라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기도 하고 수백, 수천 명의 관객들에게 일정 순간에 향을 고르게 느끼게 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후각을 자극하는 공연들을 앞으로 꾸준히 제작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임 PD는 “사람은 외부로 부터의 자극에 민감하고, 그 자극이 새로울수록 관심과 집중이 커지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인간의 감각이 퇴화되지 않는 한 그 자극을 통해 몰입과 경험을 만들어내는 공연계의 노력은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한한 상상이 현실이 되게 만드는 것은 결국 믿음직한 자극들로부터 출발되기 때문”이라고 내다봤다.


뮤지컬과 연극 무대를 디자인하다 향수공방 ‘121르말뒤페이’를 운영 중인 김세훈 대표 역시 “아쉽게도 공연장에서의 향은 아직까지 다소 보수적인 편이다. 공연분야에서 일을 할 때 기획단계에서 걱정이 너무 많다는 것을 느꼈다. ‘관객 중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대응해야하지?’ ‘누군가 공연 중 향 때문에 기침을 한다면?’ 등의 걱정 때문에 시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공연을 향기로 기억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공연에서는 언제나 다양한 실험적인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고, 어쩌면 당연하게 향이 공연에 쓰일 날도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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