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감만으론 못 버텨".. 뇌혈관외과 의사들이 사라진다

이금숙 헬스조선 기자 2022. 8. 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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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간호사의 죽음] ① 뇌혈관 응급 의료 체계 실태
뇌혈관외과 의사는 1년에 180~350일 당직을 서는 경우가 많고, 퇴근해도 콜이 와서 다시 나와야 하는 경우도 흔하다. 야간 응급 환자라도 있으면 6~8시간 수술하고 아침 7시부터 정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뇌혈관외과 의사들은 “사명감만으로 일하는 것이 갈수록 어려운 현실”이라고 했다./ 대한신경외과학회 제공
"서울아산병원 같은 국내 최대 병원에서 뇌혈관외과 의사가 없어 응급 환자가 사망했다는 것이 말이 되나"

최근 37세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뇌동맥류에 의한 뇌출혈로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환자 상태가 위중해 개두술(開頭術)을 해야 했지만, 당직 의사가 없어 서울대병원으로 전원한 뒤 사망했다. 최고의 술기와 시스템을 자랑하는 종합병원에서 벌어진 일이라 많은 사람이 적잖이 놀랐다. 신경외과 의사들은 “아산병원 간호사 같은 사례가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경고한다.

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후 생명을 좌우하는 필수의료의 열악한 현실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치명적인 뇌혈관 수술의 경우 앞으로 의사가 없어 국민의 생명이 위험해질 것이라고 한다. 이미 지방의 큰 병원에는 뇌혈관외과 의사가 한 명에 불과해 365일 24시간 체제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한다. 뇌혈관외과는 신경외과의 세부 전공이다. 뇌혈관 개두술과 머리를 열지 않고 하는 뇌혈관 중재 시술을 주로 담당한다. 뇌혈관 질환은 국내 사망원인 4위. 매년 2만 5000명~3만 명 발생하는 뇌출혈 환자는 모두 뇌혈관외과에서 수술이나 시술을 해야 하고, 뇌경색 환자 중에서도 상당수는 뇌혈관외과 의사가 혈전제거술을 해야 한다.

헬스조선은 3회에 걸쳐 응급 뇌혈관 의료 체계의 실태와 해법에 대해 조명한다. 

◇의사 한 명이 365일 24시간 당직 
뇌출혈·뇌경색 같은 뇌혈관 질환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응급 질환이고, 바로 개두술 같은 고도의 술기가 요구되는 질환이기도 하다. 클립 결찰술(파열된 뇌혈관 부위를 클립으로 집는 수술) 같은 개두술은 신경외과 교수가 돼도 5년은 경험을 쌓아야 자신있게 수술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뇌혈관외과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대한신경외과학회에서 전국 85개 전공의 수련 병원 의료 인력을 살펴본 결과, 100례 이상의 클립 결찰술을 경험한 숙련된 개두술 의사는 133명에 불과했다. 한 병원당 숙련된 개두술 의사가 2명이 채 안되며, 그것도 수도권에 치우쳐 있다. 지방 병원의 경우 한 명이 개두술을 담당하고 있어 의료 공백을 없애려면 365일 24시간 당직을 서야 하는 상황. 대한뇌혈관외과학회 김용배 상임이사(세브란스병원)는 “한 명이 당직을 선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된다”며 “병원당 최소 3명의 뇌혈관외과 의사가 필요하며 이중 2명은 개두술이 가능한 숙련된 의사여야 한다”고 말했다.

◇권역심뇌혈관센터, 신경외과 1명이 기준?
현재 전국에는 국립대병원을 중심으로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가 14곳 지정돼 있다. 생명을 위협하는 중증 응급질환인 뇌졸중·심근경색 환자를 빨리, 잘 치료하기 위해 국가심뇌혈관정책에 따라 2008년에 개소됐다. 그런데,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 2022년 운영지침에 따르면 뇌졸중을 담당하는 신경과 전문의는 3명이지만, 뇌졸중 수술이 가능한 신경외과 전문의는 한 명에 불과하다. 아산병원 사례처럼 담당 의사가 해외 학회나 휴가를 가면 당연히 개두술을 집도할 수 있는 의사는 없게 된다. 대한뇌혈관내치료의학회 신승훈 정책이사(분당차병원)는 "해당 정책을 만드는 전문가 집단에 신경외과가 배제됐다”며 “뇌졸중의 최종 진료과인 신경외과를 배제시켰다는 것은 중증 심뇌혈관질환에 대한 인식 부재에서 온 결과”라고 말했다.

◇의료 인력 부족, 왜?
뇌혈관외과 의사의 부족은 예고됐다. 높은 근무 강도에 비해 의료 수가가 낮기 때문. 고난도 수술로 의료 사고 위험은 높고, 전공의 수련 과정의 어려움이 커서 신경외과 전공을 선택했다 해도 중도 탈락이 많다. 이런 이유로 신경외과 전문의 배출 수는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다.(2018년 91명에서 2022년 78명으로 감소) 게다가 신경외과 전문의 중 뇌혈관외과 세부 전공자는 20% 내외에 불과하다. 한 해 신경외과 전문의가 80명쯤 배출되면 뇌혈관외과 전공 지원자는 20명도 되지 않는다. 신승훈 정책이사는 “뇌혈관외과 의사는 1년에 180~350일 당직을 서는 경우가 많고, 퇴근해도 콜이 와서 다시 나와야 하는 경우도 흔하다”며 “야간 응급 환자라도 있으면 6~8시간 수술하고 아침 7시부터 정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명감만으로 일하는 것이 갈수록 어려운 현실”이라고 했다.

◇턱없이 낮은 의료수가, “난이도, 위험도 등 반영 안 돼”
뇌혈관 수술의 의료 수가는 턱없이 낮다. 우리나라 뇌혈관 수술의 의료 수가는 일본과 비교했을 때 20% 내외다. 예컨대 뇌동맥류 클립 결찰술의 경우 일본은 수가가 1140만원인 반면, 한국은 242만원에 불과하다. 차이는 OECD 전체 국가로 확대해도 마찬가지다. 2020년 ‘OECD 보건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의료수가를 100으로 뒀을 때 1위는 139인 스위스였다. OECD 국가 평균은 72였고 우리나라는 48에 그쳤다. 이보다 낮은 의료수가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헝가리, 폴란드, 체코, 러시아 등 이었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원인은 가산점수 항목이 없기 때문이다. 뇌혈관을 클립으로 묶는 수술인 ‘클립 결찰술’을 예로 들었을 때, 일본은 가산점수 항목이 있다. 수술 난이도 등에 따라 세부적인 가산점수 항목이 있고, 수가를 차등 부여하고 있다. 

김용배 상임이사는 “뇌혈관 수술은 수술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 상당 기간 중환자 치료를 해야 한다”며 “나의 경우 개두술만 하는데, 의사·간호사·중환자실 인력 등 인건비, 재료비, 경비 등을 고려하면 수술을 할 때마다 4%씩 적자가 난다”고 했다. 
대한신경외과학회 김우경 이사장(가천대 길병원)은 “수술의 위험도는 높은데 수가는 낮으니 이를 시행하는 병원이나 의료진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라며 “앞으로는 뇌혈관 환자를 수술할 의사가 없어 사망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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