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정치의 사법화
‘정치의 사법화’(judicialization of politics)는 국가의 주요 정책이 정치 과정이 아닌, 사법 과정에서 결정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국내에서는 대법원과 함께 양대 최고법원 지위를 가진 헌법재판소가 줄곧 그 논란의 대상이었다. 2004년 ‘서울=수도’라는 관습헌법을 근거로 헌재가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 결정을 내렸을 때가 대표적 예로 꼽힌다. 당시 강금실 법무부장관이 “이 문제는 정치가 해결해야 할 문제지 법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꼬집었지만, 여야는 끝내 노무현 정부 최대 국정 현안이었었던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헌재 심판대에 올려놓았다.
이외에도 이라크 파병(2004), 통합진보당 해산(2014), 김영란법 존치(2016) 등 굵직한 현안이 그간 헌재 손에서 판가름났다. 법조계 일각에는 “민주주의·법치주의 확산과 함께 전 세계 여러 국가에서 널리 확산되는 현상”(윤영미 고려대 교수)이라며 정치의 사법화를 불가피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헌재 연구관 출신인 윤 교수는 2018년 논문에서 ‘헌재가 국민의 지배적 여론에 부합하거나 적어도 그것에 반하지 않는 결론을 내리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적었다.
문제는 정치의 사법화가 최근 헌재 차원을 넘어 일선 법원과 검찰에까지 만연해졌다는 점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국민의힘이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여러 건 고소·고발했다. ‘누가 이겨도 피의자 대통령’ ‘검찰 칼끝에 선 대선’ 등의 오명 속에 지난달 초 여야 지도부가 대선·지방선거와 관련된 상호 고소·고발을 일괄 취하하자고 논의했지만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이제 정치의 사법화는 본안 소송도 아닌 가처분 인용 여부에 집권 여당의 운명이 내맡겨지는 수준까지 전락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0일 자신의 대표직을 박탈하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려는 당의 결정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서를 냈다. “정당의 운명을 정치인들이 결정 못 하고 판사가 결정하는 한심한 정당이 될 수는 없다”(하태경 의원)는 내부 우려가 무색했다.
물밀듯 밀려오는 여의도발 갈등에 법원도, 검찰도 난색을 보이고 있다. 학계에서도 “사법적 결정에 대한 정치적 평가는 필연적으로 개개 법관의 독립을 위협하게 된다”(김병록 조선대 교수)는 비판이 나온다.
심새롬 정치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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