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찾은 친부, 못찾은 바꿔치기 딸..원점 돌아간 구미 3세 사망

김정석 2022. 8. 11.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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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기환송심 재판부 “DNA 다시 검사”


지난해 8월 17일 오후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에서 열린 경북 구미 3세 여아 사망사건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8년형을 선고받은 '친모' A씨가 법원을 떠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2월 경북 구미에서 발생한 ‘3세 여아 사망사건’이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대구지법 제1형사부(부장판사 이상균)는 11일 미성년자 약취와 사체은닉미수 혐의로 기소된 A씨(49)에 대한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서 A씨와 숨진 여아의 유전자(DNA) 감정을 다시 실시하고, 사건과 관련된 증인들을 재차 불러 신문할 것을 요청했다.

구속기소된 A씨는 이날 재판에서도 아이 바꿔치기는 물론 출산 사실까지 부인했다. A씨는 “평생을 하고 싶은 말 못하고 살았는데 지금도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다”며 “사회적 지탄과 공분을 샀다는 이유로 진실이 왜곡되면 안 된다. 제발 사건을 잘 봐주셨으면 정말 고맙겠다”고 말했다.

오는 23일 열리는 다음 공판에서는 추가로 실시되는 DNA 검사 결과와 함께 당시 사건을 수사한 경찰관, A씨가 입원했던 산부인과 간호사, A씨가 근무하다 퇴직한 업체 직원 등이 증인으로 나설 예정이다.


유죄 판결 뒤집고 대법 파기환송


이날 재판은 앞서 대법원이 A씨의 미성년자 약취(납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1·2심을 뒤집고 사건을 다시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내면서 이뤄졌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지난 6월 16일 A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유전자(DNA) 감정 결과만으로 미성년자 약취라는 쟁점 공소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며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다.
경북 구미에서 방치돼 숨진 3세 여아 친언니의 1심 선고 공판이 열린 지난해 6월 4일 오후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정문 앞에 시민들이 하늘로 떠난 여아를 추모하기 위한 밥상을 차려 놓은 모습. 뉴스1

사건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지난해 2월 경북 구미시 한 집에서 3세 여아가 홀로 숨진 채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발견 당시만 해도 여아를 키우던 20대 엄마가 집에 홀로 아이를 방치해 숨지게 한 사건으로 전해졌지만, 경찰 수사 과정에서 DNA 검사를 한 결과 외할머니로 알려졌던 A씨가 숨진 아이 친모로 드러났다.

A씨가 숨진 아이의 친모라는 반전은 곧 여러 가지 의문점을 낳게 된다. 우선 ‘숨진 아이의 친부가 누구냐’는 의문이 쏟아졌다. A씨의 딸 B씨(23)가 친모로 알려졌을 때 친부는 당연히 B씨와 2020년 이혼한 전 남편으로 여겨졌다.

경찰은 ‘진짜 친부’를 찾기 위해 주변 남성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DNA 검사를 진행했다. 구미와 인근 지자체 산부인과 100여 곳도 압수수색했지만 특별한 단서는 발견하지 못했다.


언제 어떻게…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들


A씨가 B씨의 딸과 자신의 딸을 바꿔치기했다면 B씨가 낳은 자식도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뜻이 된다. 경찰은 B씨가 낳은 자식의 행방을 찾는 데도 수사력을 쏟았지만 이마저도 밝혀내지 못했다. A씨 남편이나 딸 B씨 등 가족들도 모두 A씨가 숨진 아이의 친모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게다가 A씨는 DNA 검사 결과가 나온 뒤 아이 바꿔치기는 물론 출산 사실까지도 부인했다. 이 때문에 경찰 안팎에선 DNA 검사 결과 자체에 오류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말마저 나왔다. 이에 검·경은 모두 4차례에 걸쳐 DNA 검사를 실시했지만 모두 A씨가 숨진 아이와 모녀 관계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결과가 나왔다.

재판은 수사당국이 A씨의 아이 바꿔치기 수법에 대해선 밝혀내지 못한 채 진행됐다. 1·2심에서는 직접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도 A씨에게 유죄가 선고됐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A씨)은 B씨가 출산한 2018년 3월 31일과 가까운 시점에 바꿔치기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이 숨진 여아의 친모가 맞다고 인정된다면 실제 피해자가 바꿔치기 됐다는 사실은 필연적으로 성립된다”고 했다.


새 증거 제시 못 하면 일부 무죄 가능성


재판부는 또 “피고인이 범행을 전면 부인하고 사라진 피해자의 행방에 대해 알 수 있는 객관적·직접적 증거가 없는 상황이지만 이에 대해 빠짐없이 연결고리를 요구한다면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는 것을 막는 것”이라며 “사실 관계를 일일이 증명할 수 없는 상황이고 세부적 범행 경위와 방법을 모르더라도 앞선 사실들을 종합해볼 때 피고인의 아이 바꿔치기가 충분히 증명된다”고 판시했다.

앞으로 이어질 파기환송심 재판에서 검찰이 명확한 증거나 보다 세밀한 논리를 제시하지 못할 경우 A씨는 사체은닉미수 외 미성년자 약취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윤우석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수사당국이 추가 증거를 내세우지 못할 경우 이 사건 공소 유지에도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며 “현재로선 사체은닉미수 혐의만 유죄로 인정되고 (아이를 바꿔치기 한) 미성년자약취 혐의는 무죄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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