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마음 섭한 줄.." 시시콜콜 쓴 이육사 손편지, 문화재 된다

김정연 2022. 8. 1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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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친필 편지, 엽서 국가등록문화재 등록예고. 사진 문화재청


"그대의 마음도 섭한 줄 알았다만은 떠나는 나의 마음은?"(1931년 이원봉에게 쓴 엽서 중)

'청포도'의 시인 이육사가 쓴 편지와 엽서가 국가등록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11일 이육사 친필 편지 및 엽서 4점과 서울 구 천도교 중앙총부 본관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저항시인 이육사도 끼니거리 걱정하고, 친구 떠나 섭섭해했다


이육사(본명 이원록·1904∼1944)는 '청포도' '광야' 등으로 널리 알려진 저항시인이다.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으로 3년간 옥고를 치를 때 수인번호 '264'에서 이육사라는 필명으로 삼았다. 등록 예고된 편지와 엽서는 이육사의 고향인 경북 안동에 위치한 이육사문학관 소장한 자료로,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이육사가 자신의 일상을 친척과 친구에게 전하는 내용이다.
이육사 친필 편지, 엽서 국가등록문화재 등록예고. 사진 문화재청


1930년 중외일보 대구지국에 근무하던 시절, 친척 이상하에게 보낸 한문 편지에서는 "형제가 서로 의지하며 열심히 일하고 있으나 보잘것없어서 아침에는 끼니거리가 없고 저녁이면 잠잘 곳이 마땅치 않다"라며 생활 형편을 털어놨고, 1931년 안동군청에 근무하는 친척 이원봉에게 쓴 엽서에서는 "바람같이 가서 꿈같이 만나고 또 번개같이 떠나올 때, 보내는 그대의 마음도 섭한줄 알았다만은 떠나는 나의 마음은? 아니 떠나면 안 되는 나의 생활!"이라며 한동네에 살았던 절친이자 친척인 원봉에 대한 그리움을 썼다.

"백 아무개와 관련된 일은 백방으로 알선하고 있는데" "두어번 말씀드린 것은" 등 가리키는 내용이 명확하지 않은 문장도 곳곳에 등장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독립운동 등 비밀스러운 활동과 관련된 내용일 수 있다고 추정은 하지만, 아직 확실히 밝혀진 바는 없다"고 설명했다.


대구, 경주 거쳐 포항… "해안까지 버스도 있다"까지 시시콜콜 쓴 264


이육사 편지. 문화재청

1936년 친구인 시인 신석초에게 쓴 엽서는 감상적이다. 대구 중외일보와 조선일보에서 근무할 때 쓰던 이름 '이활'로 보낸 엽서와는 다르게, 신석초에게 쓴 편지는 '육사제(弟)' 라며 옥고를 치른 뒤 지은 호 '육사'를 썼다.

충남 서천의 신석초 집에 머물다 경북 포항으로 돌아온 여정을 "대구에서 아파서 일주일 치료하고, 경주에서 하루 자고 불국사도 갔다가 여기(포항)에 왔다"고 시시콜콜 적은 뒤, "해안까지는 버스가 있다, 명사오십리에 해안의 잔물결이 두 사람의 걸어간 자취조차 스쳐버리지 못하고 보드랍게 핥아 간다"며 해안가의 풍경을 전했다. 그러면서 "깨끗한 일광해면에 접촉되는 지음 유달리 빛납니다. 함께 와서 보았으면 야복 좋아하지 않을 것을"이라며 아쉬움을 더하기도 했다.

"이육사의 인간적인 면을 파악할 수 있는 친필자료로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는 게 문화재청의 평가다.


독립운동에 쓰인 천도교 건물… 종로에서 우이동까지 고스란히 옮겨 보존


서울 우이동에 위치한 구 천도교 중앙총부 본관.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예고됐다. 사진 문화재청

현재 서울 강북구 우이동에 위치한 서울 구 천도교 중앙총부 본관은 1921년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천도교 중앙대교당 옆에 함께 지어졌다. 독립운동, 사회계몽 운동 등에 활용되다 수운회관이 들어서면서 철거 위기에 놓였으나 독립운동 역사를 보존해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으며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기록에 따르면 68년 9월 1일부터 69년 4월 22일까지 한 장 한 장 뜯어낸 벽돌들을 우이동으로 옮겨 짜 맞추는 방식으로 고스란히 원형 복원했다.

당시 건축술은 물론 민족운동사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인정돼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되게 됐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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