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택지휘에 "폰트롤타워" 비판..'디테일' 없었던 尹 재난대응
국가 재난 상황의 대응 방식은 그 총책임자인 대통령 평가로 직결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부실 대응 논란으로 정치적 위기에 직면한 반면, 휴가를 제쳐두고 폭우 피해 수습에 나섰던 이명박·문재인 전 대통령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115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로 취임 후 첫 재난 상황에 직면한 윤석열 대통령. 이번 대응에 대한 정치권과 민심의 평가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가장 큰 논란은 ‘자택 지휘’다. 윤 대통령은 비가 쏟아지던 지난 8일 저녁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퇴근해 서초동 자택에서 폭우 관련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렸다. 윤 대통령의 지휘는 이튿날 새벽 3시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들의 대처와는 조금 달랐다. 과거 대통령들은 폭우 등 재난 상황이 예상되면 청와대 경내 지하벙커에 있는 국가위기관리센터로 이동했다. 센터에는 재난 관련 각종 상황이 집계되고, 각 부처와 화상 회의도 가능한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의 국가위기관리센터로 이동하지 않고 자택에서 전화로 지시했다는 게 논란의 핵심이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1일 라디오에서 “(지난 8일 퇴근 때) 바로 차를 돌려서 용산으로 돌아갔어야 한다. 그래도 집에 가야 되겠다면 그 ‘국가지도통신차량’이라도 (자택인) 아크로비스타 앞에 대기를 시켰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같은 당 윤건영 민주당 의원도 전날 “아파트에서 어떻게 국가 재난을 관리하고, (재난 관리) 그게 장악될 수가 있냐”고 지적했다. 민주당에선 “폰트롤타워”(핸드폰+컨트롤타워)라는 조롱 섞인 비판도 나왔다.
윤 대통령이 지난 9일 신림동 일가족 참변 현장을 방문한 사진을 대통령실이 홍보용 카드뉴스로 만든 것도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재난 참사를 국정 홍보에 이용한다”는 지적이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11일 국회에서 열린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반지하 일가족 참사 현장을 국정 홍보에 활용하는 인식이 경악스럽다”며 “실력도, 개념도 없는 대통령실 무능 인사들을 전면 교체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실은 결국 카드뉴스를 삭제했다.
여당 내부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지역구 의원들은 비가 오면 오는대로, 안 오면 안 오는대로 지역에 피해가 있을까 늘 걱정한다”며 “윤 대통령은 정치를 안 해봐서인지 그런 인식이 적은 것 같다. 윤 대통령이 폭우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대통령실 참모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대통령 주변에 제대로 조언해주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중진 의원은 “대통령실의 대응이 잘 조율돼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정무·홍보는 디테일이 중요한데, 디테일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야권 원로인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도 이날 라디오에서 “설사 대통령이 거추장스럽게 또 사무실 나가야 하냐고 얘기하더라도 참모들이 그러시면 안 된다고 (얘기)했어야 한다”며 “한덕수 국무총리는 경험이 많다. 대통령이 댁에 계신 것보다는 사무실로 나가는 게 훨씬 국민을 안심시킬 거라고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이번에 카드뉴스 논란 등 정무적 감각이 부족했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우리가 개선할 과제”라고 말했다. 다만 “폭우가 내리고 있는 상황에서는 관련 부처가 제대로 역할을 하도록 빨리 지시하는 게 중요하다. 장소가 중요한 건 아니며, 지시 자체는 신속하고 적절히 이뤄졌다고 본다. 국가위기관리센터 화상 회의는 폭우로 발생한 수해 대책을 마련할 때 필요한데 다음 날(9일) 대책 회의도 했다”고 설명했다.
여권에선 윤 대통령 주변의 실수가 윤 대통령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도 크다. 윤 대통령의 멘토로 불리는 신평 변호사가 지난 9일 신림동 참사 현장을 “누추한 곳”으로 표현해 여론을 악화시킨다거나 “대통령실 직원들이 엉뚱한 홍보 방식으로 오히려 대통령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정부의 최종 책임자로서 대통령이 비판을 감내해야 한다”면서도 “과거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치수 문제를 제대로 대응하지 않아 생겨난 문제까지 오롯이 떠안고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다”고 말했다.
폭우 논란 속에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하락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8~10일 진행해 11일 발표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윤 대통령 직무 수행 긍정 평가는 28%, 부정 평가는 65%로 집계됐다. 직전 조사인 2주 전 조사보다 긍정평가가 6%포인트 하락했다. 부정 평가 이유로는 ‘경험과 능력이 부족해서’가 33%로 가장 많았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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