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불황에 주목받는 합병의 경영학..이젠 분할보다 합병으로

배준희, 윤은별 2022. 8. 1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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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에서 유사 사업부를 한데 모으는 합병이 확산하고 있다. 코로나19 직후에는 넘치는 유동성에 올라타기 위해 유망 사업부를 물적분할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주를 이뤘지만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자 거꾸로 합병을 택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유형별로 그 목적이 제각각인 합병의 경영학을 분석한다.

한화그룹은 최근 적극적인 계열사 통합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한화디펜스를 흡수합병하고 ㈜한화에서 물적분할한 방산 부문도 에어로스페이스와 합친다. 사진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사업장.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분할 → 통합·합병으로

▷신사업 육성 전략적 의도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8월 3일 기준 올 들어 회사 합병 결정을 공시한 건수는 114건으로 파악됐다. 2019년과 2020년 69건, 지난해 89건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준이다.

최근 눈에 띈 합병 결정은 한화그룹이다. 한화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중심으로 방위 산업 계열사를 줄줄이 재배치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100% 자회사인 한화디펜스를 흡수합병하고 ㈜한화에서 물적분할한 방산 부문도 에어로스페이스와 합친다. 한화건설과 에어로스페이스 자회사인 한화정밀기계는 ㈜한화 비방산 부문으로 들어가 새로운 사업 시너지를 모색한다.

재계의 합병 움직임은 지난해 말부터 본격화했다. SK㈜가 자회사인 SK머티리얼즈를 합병한 것을 시작으로 올 들어 롯데제과·푸드의 빙과 사업 부문 합병, 포스코인터내셔널과 포스코에너지 합병, 오뚜기의 오뚜기라면지주·오뚜기물류서비스 합병, KT의 미디어 자회사인 스카이라이프TV와 미디어지니 간 합병 검토 등이 줄을 이었다.

학계에서는 기업이 합병을 택하는 동기를 여러 요인으로 분석한다. 요약하면 효율성 증대를 통한 규모의 경제 실현, 거래 비용과 불확실성을 회피하기 위한 영업적 시너지, 위험 분산으로 기업의 총 위험을 감소시켜 얻어지는 재무적 시너지, 자본 조달 능력 확대에 따른 자본비용 감소, 시장 지배력 확대를 통한 독점적 이윤 등을 합병 촉진 요인으로 분석해왔다. 대체로 효율성(efficiency)을 추구하려는 목적에서 합병을 택한 경우가 많았다는 분석이다. 합병을 통해 규모와 범위의 경제를 구축함으로써 단위비용당 생산성을 제고하고 금융비용을 줄여 이익률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국내에서는 제도적 정당성(legi timacy)을 확보하려는 목적의 합병도 많았다. 지주사 전환에 따른 계열사 재배치나 대주주 일감 몰아주기 규제 회피 등 외부 제도 변화에 순응하려는 목적에서 크고 작은 합병이 단행됐다.

최근 줄을 잇는 합병은 과거와는 다소 결을 달리한다. 무엇보다 미래 신사업을 육성하려는 전략적 동기(strategic motive)에서 합병을 택하는 사례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물론 효율성을 추구하려는 합병은 지금의 경영 환경에서도 유효하다. 다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를 지렛대 삼아 시장의 확장, 다각화, 불확실성 대응 역량 개선 등 전략적 관점의 합병이 늘고 있다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KT그룹은 지주형 조직 구조로 전환하면서 핵심 사업부별로 분산, 배치하는 조직 재편을 단행 중이다. 최근에는 자사 OTT 시즌과 CJ ENM의 OTT 티빙 간의 전략적 합병을 결정했다. 사진은 구현모 KT 대표. (KT 제공)

▶통합으로 신사업 마중물

▷규모의 경제·지배구조 개편 목적도

사례별로는 차별적 조직관리로 미래 신사업을 키우려는 합병이 주목받는다. 한화그룹이 대표적이다.

지금까지 한화 방위 산업 계열사는 ㈜한화·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시스템·한화디펜스 등 4개로 분산돼 있었다. 별개 조직이 각자도생하는 식으로 투자가 이뤄지다 보니 전략적 포커스가 명확하지 않았다. 중복 투자와 경영 효율성 저하로 한화 방위 산업 매출은 5조원대에서 수년간 정체됐다. 이번 계열사 통합으로 한화 방산은 통합법인인 ‘에어로스페이스’와 자회사인 ‘한화시스템’ 두 축으로 재편된다. 한화그룹은 방위 사업 재편을 통해 서로 성격이 유사한 조직을 한데 모으고 여기서 벌어들인 현금흐름을 미래 신사업의 마중물로 삼겠다는 복안이다.

가령, 우주 사업을 벌이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사업 특성상 장기간 연구개발 투자가 필수적이다. 연구개발비와 설비투자 비용을 한화디펜스가 벌어들이는 현금에서 충당한다. 한화디펜스는 K9 자주포·장갑차·발사대 등을 만드는 회사로 한화 방산 부문에서 캐시카우 역할을 한다. 최근 해외 수출 계약이 잇따르면서 지난해 1156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도심항공교통(UAM) 사업을 벌이는 한화시스템도 한화디펜스의 재무적 지원을 기대할 수 있다.

한화는 방산 부문 합병으로 연관 기술의 조직 내 이전(spillover) 효과도 기대한다. 방산과 우주항공, UAM 등은 서로 기술적으로 연관성이 높은 분야다. 각자 흩어져 있는 것보다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라는 큰 우산 아래 모여 있는 것이 조직 간 지식과 기술 이전, 혁신 시너지 창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디지털 플랫폼 전략을 추진 중인 KT그룹은 외부 조직과 합병이라는 과감한 선택을 내린 경우다. KT그룹은 온라인동영상 서비스(OTT) 경쟁력 확보를 위해 CJ그룹의 티빙과 전략적 합병을 결정했다. KT는 지주형 조직 구조로의 전환 과정에서 통신, 미디어, 클라우드, 콘텐츠, 금융 등 핵심 사업부별로 분산, 배치하는 조직 재편이 줄을 잇는다. 콘텐츠 부문에서는 KT스튜디오지니가 미디어 콘텐츠를 담당하는 핵심 계열사로, 지니뮤직·스토리위즈·현대미디어 등 관련 자회사를 직간접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OTT는 소비자와 공급자 등 양축이 존재하는 양면 시장에 해당한다. KT와 CJ는 상호합병을 통해 양쪽 참여자의 양적 기반을 확장하고 OTT 플랫폼의 네트워크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동원산업과 동원엔터프라이즈 간 합병으로 통합 동원산업도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현금성 자산이 두둑한 동원산업이 지주사로 합쳐지면서 동원그룹의 신사업 투자가 활발해질 전망이다. 두 기업의 합병으로 기존 동원엔터프라이즈 대비 두 배 이상의 투자 실탄이 마련된다.

이외 전통적인 의미에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려는 합병도 여전하다. 롯데는 롯데제과와 롯데푸드로 분산돼 있던 빙과 사업을 합쳐 시장점유율 44%의 대형 빙과 사업체로 재탄생시켰다. 빙그레(점유율 40%)를 제치고 국내 1위 사업자로 도약했다. 롯데푸드를 흡수합병한 롯데제과는 4조원대 식품 기업으로 발돋움한다. 롯데제과는 중복 사업이었던 빙과 조직을 통합해 비용 효율화를 추진한다.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합병도 추진된다. 라면과 물류 지주사 합병을 선언한 오뚜기가 이런 예다. 오뚜기는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그룹 내부 거래와 순환출자 우려를 해소하겠다는 복안이다. 오뚜기라면지주와 물류서비스지주는 지난해 매출의 거의 대부분을 그룹 내부거래를 통해 올렸다.

▶성공적인 합병되려면

▷섬세한 PMI 설계 필수

합병 시너지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합병 이후 프로세스라는 게 전문가 조언이다. 합병 후 통합을 ‘PMI(Post-Merger Integration)’라고 부르는데, 이는 비단 외부 조직의 인수합병뿐 아니라, 동일 기업집단 계열사 간 합병 때도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당초 의도했던 합병 목적을 달성하려면 두 기업 간 물리적 결합에 그치지 않고 내부 조직 변화, 심리, 문화 등의 정성적 요인을 종합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선 합병 과정에서 PMI 계획을 꼼꼼히 세워야 한다는 조언이다.

무엇보다 브랜드 통합, 직원 보상 체계 정비 등 모든 통합 절차를 철저히 계획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컨설팅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여전히 합병 자체의 절차에만 관심이 많고 통합 이후 커뮤니케이션에서 실수를 범하는 경우가 많다”며 “글로벌 기업은 PMI 계획을 세울 때 합병 첫날 경영진이 직원들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까지 정해놓는다”고 전했다.

특히 임직원 보상 체계 문제가 최근 PMI의 화두다. 직원들의 공정성 민감도가 높아지면서다. 지난해 카카오페이지와 카카오엠의 합병(현 카카오엔터테인먼트) 과정에서도 두 기업 간 서로 다른 직급과 고용 체계, 보상 체계가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됐다.

합병으로 이루고자 하는 명확한 비전을 조직 구성원에게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시너지 효과와 통합 명분, 신사업 진출 등 분명한 비전을 앞세워 커뮤니케이션에 나선다면 이해관계자나 주주들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복되는 사업부를 정리하기 위한 합병의 경우, 비용 절감을 숫자로 보여주는 것이 필수적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비용 절감으로 방만 경영을 정상화하겠다는 식의 실질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경영 효율성을 강조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다만, 이런 경우 위축되는 사업부의 인력 감축분을 재배치하면서 이들의 반발을 최소화하는 운용의 묘가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외부 이해관계자를 아우르는 커뮤니케이션도 이슈다. 국내 증시에서 주주행동주의 성향이 강해지면서 상장사 합병 때 잡음이 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최근 동원산업과 동원엔터프라이즈의 합병 때도 주주 반발로 합병 비율이 조정됐다. 전문가들은 특정 이해관계자에게 과도하게 유리하지 않도록 정확한 실사로 합병 비율을 정하고 합병 비전을 명확하게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합병 시너지는 언제 나나

최소 2~3년 걸려…단기 수익성만으로 판단 금물

합병 시너지 효과는 언제쯤 가시화할까. 합병으로 생산성 향상 등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자원을 정비하고 인력을 재배치하는 과정이 필수적인데, 여기에 소요되는 기간에 따라 시너지 효과의 발생 시점이 좌우된다. 특히 합병을 통해 전통적인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1+1=3’의 시너지를 기대한다면 성과를 내기 위한 기간이 더 길어진다.

결국 단기간 내 합병의 효과를 곧장 확인하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중복되는 사업부를 축소하거나, 신사업 진출을 위해 추가 투자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단기 실적은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 업계에서는 합병 효과를 확인할 수 있는 최소 기간으로 2~3년을 잡는다. 지난해 GS홈쇼핑을 흡수합병한 GS리테일이 대표적이다. GS리테일의 올 1분기 실적은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매출은 합병 이전인 전년 동기 대비 24% 증가했지만, 수익성이 악화됐다. 영업이익이 27% 줄면서 시장 기대치를 크게 밑돌았다. 영업이익률은 1%에 그쳐 통합 이전 두 기업의 실적을 단순 합산한 것보다 나빠졌다.

이는 GS리테일이 합병 이후 단기 수익성보다 디지털 사업의 덩치를 키우는 데 집중했기 때문이다. GS리테일은 GS홈쇼핑과의 합병 이후 조직 전반의 디지털 전환 속도를 높이기로 하고 관련 투자를 대폭 늘렸다. 실제 같은 기간 GS리테일의 디지털커머스 사업부는 매출이 50% 이상 늘었지만 영업손실은 33% 증가했다. 결국 합병을 추진한 전략적 목표에 따라 시너지가 나타나는 기간이 다를 수밖에 없으며 단기 수익성만으로 합병의 성패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배준희 기자, 윤은별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71호 (2022.08.10~2022.08.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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