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연하게 '구체적 사실' 퍼뜨리면 안 돼요

입력 2022. 8. 11. 15:0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생활 속 법률 이야기] (23)
알쏭달쏭 명예훼손 기준

지난 6월 1일 미국 유명 배우 조니 뎁이 전처인 앰버 허드와의 사이에서 벌이던 명예훼손 소송에서 우리 돈으로 100억원에 가까운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법원이 조니 뎁 손을 들어준 이유는 앰버 허드가 워싱턴포스트에 쓴 기고문 때문이다. 해당 기사에서 그녀는 뎁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가정폭력의 대명사’라는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동시에 가정폭력 피해자에 대한 지원, 법령 개정 등을 요구했다. 기사를 읽은 이들은 다들 조니 뎁 이야기임을 짐작할 수 있다.

저 정도 손해배상액이라면 웬만한 사람은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엄두도 내지 못하겠다는 생각은 든다.

아주 감정적이고 다혈질적인 사람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조차 상대방 명예를 훼손하는 것을 가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우리가 쉽게 인식 못하지만, 국내법이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는 명예훼손이나, 그보다는 조금 가볍다고 할 수 있지만 처벌 대상인 ‘모욕’의 범위는 굉장히 넓다. 일일이 문제 삼지 않아서 그렇지, 모두가 서로 문제 삼기 시작하면 웬만해서는 입을 벌리기가 무서울 정도가 될 것이다.

형법은 공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를 2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허위의 사실인 경우에는 이보다 무겁게 처벌한다)고 규정한다.

여기에 더해 인터넷상에서 상대의 명예를 훼손했다면 더 엄하게 처벌한다. 피해의 중대성 등을 고려한 조치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명예를 훼손한 경우 가중처벌한다.

우리 법상 명예훼손이나 모욕이 성립하려면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것(공연성)’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이라도 다수가 인식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명예훼손은 성립하지 않는다. 판례는 공연성이 전파될 가능성이 있는가의 의미라고 본다. 비록 다수가 인식하더라도 발언 상대방이 발언자나 피해자의 배우자, 친척, 친구 등 사적으로 친밀한 관계에 있어 비밀의 보장이 상당히 높은 정도라면 공연성이 없다고 본다.

다만, 공연성은 생각보다 매우 폭넓게 인정된다. 때문에 공연성이 없다는 이유로 책임을 부인하기는 쉽지 않다. SNS 비공개 대화방에서 상대방으로부터 비밀을 지키겠다는 말을 듣고 일대일로 대화했다고 치자.

문제는 상대방이 ‘비밀을 지킨다’는 점을 확신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명예훼손죄의 공연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려면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해야 한다. 구체적인 사실이라기보다는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모욕은 될 수 있어도 명예훼손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잘 운영돼가는 회사를 파괴하려 한다’ 이런 정도로는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라고 할 수 없다. 명예훼손죄에서의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힘들다.

다만 구체적인 사실이라면 상대방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나 사회 일부에 잘 알려진 사실, 또는 소문을 적시한 경우에도 명예훼손죄가 성립한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기사란에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댓글이 달린 상황에서 그 진위를 확인하지도 아니한 채 같은 취지의 댓글을 추가 게시했을 때도 명예훼손죄가 성립한다.

마지막으로 명예훼손을 당했다면, 상대방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심한 말을 확인한 날로부터 3년 이내에 소송을 제기해야 함을 기억해둬야 한다. 3년이 지난 후 갑자기 억울함을 느껴 자다가 벌떡 깨어나는 일이 있어도 그때는 어쩔 수 없다.\

[김연학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71호 (2022.08.10~2022.08.16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