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정책의 난맥상 한꺼번에 터졌다

2022. 8. 11. 04: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박길성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지난 한 주 한국 사회는 초등학교 5세 입학 정책으로 극도의 혼란을 빚었다. 정책이 거론되고 정확히 열흘 만에 장관이 책임지고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5세 입학 정책이 해프닝으로 끝난 것처럼 보이고, 장관의 사퇴로 일단락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문제를 그대로 안고 있다.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교육이 무엇인지, 백년대계라는 것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 교육 문제는 어떻게 풀어가는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끝까지 포기 못하는 영역이 교육이다. 전 국민의 빈틈없는 영역이다. 모두가 직접 경험을 가지고 있음은 물론 남녀, 계층, 세대, 지역 모든 층위를 커버하는 이슈다. 생태계를 완전히 흔들어 놓을 수 있는 휘발성을 지니고 있다. 정당성이 효율성보다 훨씬 우선시되는 영역이다. 이러하기에 정책의 선정이나 선점, 협의와 조율, 제도로의 정착에 이르는 일련의 프로세스에 대한 세밀한 접근이 요청된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 문제는 ‘뜨거운 감자’ 그 자체다. 만지기도 삼키기도 그렇다고 그냥 놔두기도 어려운 것이 교육이다. 전 국민이 전문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념이 진영 깊숙이 진지를 틀고 있다. 이러하기에 교육을 둘러싼 정책이 순항하기 위해서는 정책 결정이 갖추어야 할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정책 하나로 정부가 이런 사면초가에 처한 적이 있나 싶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노무현정부를 포함한 지난 정권들도 제시한 공약인데 왜 이렇게 반발이 심할까. 일단 출처가 분명치 않았다. 대선 공약이나 국정과제에도 언급되지 않았던 사안이 교육부 1호 정책으로 등장한 것이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보수, 진보 가리지 않고 교육 관련 단체들이 일제히 비판에 나섰다.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모두 사전 논의나 이렇다고 할 만한 정책연구도 없이 나왔다고 비판을 쏟아냈다.

직접 당사자인 학부모 반발은 더 거세다. 일선 학교나 유치원, 어린이집 어디 하나 환영하는 곳이 없다. 경험을 충분히 갖춘 전문가가 아니라는 비판은 더 뼈아프다. 여기에다 교육 공무원은 우리도 모르는 일이라고 손 놓고 있다. 주무 관청인 교육청과 국회와 사전 논의를 해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이런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여기에 임명 과정에서 제기된 교육부 수장에 대한 국민의 불신도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국민 여론이 돌아섰다. 문자 그대로 사면초가다.

흔히들 교육을 백년대계라고 한다. 지속가능한 미래에 있어 교육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화급한 교육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과중한 사교육비, 공교육 정상화, 학력 격차 확대, 입시제도, 미래인재 양성 등등 절박을 넘어 절체절명의 이슈들이 줄 서 있다. 이러다간 교육 개혁은 손도 못 대고 끝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이번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첫째, 이슈 선점이 잘못됐다. 두 가지 이유가 있을 듯하다. 정책 몇 개를 가지고 지금의 상황을 반전하려는 정치적 조급증이 그 하나고, 다른 하나는 전문성 부족이다. 왜 이 정책을 지금 해야 하느냐에 대한 설명이 없다.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것이다.

둘째, 접근 방법이 잘못됐다. 정책 형성의 필요조건인 조율 과정을 건너뛰었다. 정책은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하고 조율하는 과정이다. 결과는 그다음이다. 의도적으로 건너뛴 것인지 아니면 절차를 몰라서 그런 것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하고 설득하는 정교한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셋째, 행정 책임자에 대한 신뢰 부재가 발목을 잡았다. 임명 과정에서부터 제기된 도덕성 문제가 정책의 불신을 더 가중시켰다. 여러 선례에서 보았듯이 다른 영역의 정책과는 달리 교육의 상당 부분은 정당성의 문제에서 걸린다.

교육은 국가 비전의 상징이다. 국가 비전에 대한 좀 더 깊은 고민이 있어야 한다. 이번 정책의 난맥상 하나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번 건을 심각하게 보는 것은 이러다간 제대로 된 교육 개혁은 손도 못 댈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교육 정책의 동력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지 점검하는 진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박길성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