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희천 (9) 신학공부 갈증 풀었지만 전도사 사례비 못 받아 눈칫밥

강주화 2022. 8. 11.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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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울 때마다 금식기도나 철야기도를 했던 내게 풍금을 위한 기도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스물다섯 된 우리 교회 전도사가 풍금 생기게 해 달라고 철야 기도를 하고 있다"고.

1951년 9월 초 총회신학교가 다시 문 연다는 소식이 들렸다.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땅에서는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시 73:22~25).' 고신대 전신인 고려신학교는 지금과 달리 예과 2년, 본과 3년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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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사역 중임에도 신학 공부 갈증 커져
동향의 한 목사님께 학업 문제 고민 토로
박희천 목사가 편입한 1952년 당시 고려신학교 교수진.


어려울 때마다 금식기도나 철야기도를 했던 내게 풍금을 위한 기도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주변에서는 “기도한다고 풍금이 생기냐”며 웃었다. 그런데 서부교회 성도가 어느 집에 놀러가서 내 얘기를 했다고 한다. “스물다섯 된 우리 교회 전도사가 풍금 생기게 해 달라고 철야 기도를 하고 있다”고. 그 자리에 있던 어떤 부인이 선뜻 풍금을 사주겠다고 약속했고 그 다음 주 교회로 풍금이 배달됐다.

서부교회에서 사역하면서도 마음은 온통 신학 공부에 가 있었다. 평양에서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갈증이었다. 1951년 9월 초 총회신학교가 다시 문 연다는 소식이 들렸다. 같은 해 9월 중순 이북에서 같은 동네에 살았던 강진선 목사님을 만나 학업 문제에 대한 고민을 나눴다. 9월 말 대구 서문로교회에서 고려신학교 교장인 박윤선 목사님이 부흥집회를 인도하러 왔다. 박 목사님에게 인사를 드렸고 이후 고려신학교로 가게 됐다.

10월 15일 서부교회 사임 후 부산으로 갔다. 1952년 1월 첫주부터 부산남교회 유년부 전도사로 일하게 됐다. 강진선 목사님이 한명동 목사님에게 나를 소개해 채용됐다. 당시 고려신학교는 부산에서 가장 번화한 광복동 한복판에 있었다. 징집을 피하기 위해 집을 나선 50년 8월부터 부산에 안착한 52년 1월까지 하나님은 내게 기적과 같은 일들을 계속 일어나게 해주셨다.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땅에서는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시 73:22~25).’ 고신대 전신인 고려신학교는 지금과 달리 예과 2년, 본과 3년 과정이었다. 26세 나이에 어렵게 들어온 만큼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다. 이제 고생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복병이 있었다.

전도사로 있던 부산남교회에서 ‘1년간 사례비는 없다’고 통보했다. 한명동 목사님이 새로 온 전도사를 두고 보기로 한 것이다. 식사도, 일도 편치 않았다. 교회에선 제과점을 운영하는 집사님 댁에 가서 밥을 먹으라고 했다. 교회에서 쌀도 주지 않고 하루 세끼를 해 먹이라니 누가 좋아하겠는가. 사흘 째 되는 날 점심 때 집사님이 이런 말을 했다.

“부산에서 꼬박꼬박 점심 먹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다.” 다음 날부터 점심은 거르고 아침과 저녁만 얻어먹었다. 한창 나이에 점심을 먹지 않고 공부하고 일을 하려니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었다. 돈이 있으면 뭐라도 사 먹을 텐데 월급을 못 받으니 그러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내가 말을 옮겼다간 자칫 목사님과 집사님 사이가 갈라질 수 있으니 그냥 참았다. 1년 6개월 동안 꼬박 점심을 걸렀다.

점심을 거른 10월 어느 주일 오후 1시, 너무 배가 고팠다. ‘하나님, 정말 못 견디겠습니다. 병 나서 죽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불평하는데 이 말씀이 떠올랐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너는 죽는 날까지 충성할 의무만 있는 자’라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그 자리에서 눈물로 회개했다.

정리=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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