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음주 문화 '주류 소비 뉴 트렌드'

나건웅 입력 2022. 8. 10.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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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는 기본..섞어 마시는 '믹솔로지'
'고급화' '홈텐딩' 확산, 위스키 인기 폭발

대한민국 음주 문화가 달라졌다. ‘소맥’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마시고 죽자’는 경향은 차츰 희미해져가는 모습이다. 대신 ‘한 잔을 마셔도 의미 있는 술을 마시자’는 분위기가 2030세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 중이다. 단순히 느낌만 그런 것이 아니다. 국세청을 비롯해 편의점·마트·주류 수입사 등 유통 채널에서 ‘통계’로 포착되는 결과다.

위스키 인기가 뜨겁다. ‘싱글몰트 위스키’와 ‘버번 위스키’ 제품은 물론 위스키를 탄산음료와 혼합해 먹는 ‘하이볼’ 인기가 시장 성장을 견인 중이다. 사진 (위) 수입사 트랜스베버리지가 판매 중인 버번 위스키 ‘와일드 터키’, (아래) 페르노리카 ‘발렌타인 파이니스트’. (각 사 제공)

▶트렌드 1 주류 소비의 ‘고급화’

▷와인·위스키도 더 ‘프리미엄’하게

술을 찾는 입맛이 점점 비싸지고 있다. 주종을 불문하고 값비싼 ‘고급 술’이 인기를 끄는 요즘이다.

‘와인’이 대표적이다. 올해 상반기 와인 수입액은 역대 최대를 경신했다. 국내 와인 수입액은 2억9748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6.2% 증가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와인 수입량은 되레 감소했다는 점이다. 상반기 와인 수입량은 3만5104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만371t)보다 13% 가까이 줄었다. 그만큼 ‘고급 와인’을 찾는 수요가 늘어난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부르고뉴 와인 등 고급 와인의 본고장인 프랑스산 와인 수입액도 크게 늘었다. 올해 상반기 수입액은 1억386만달러로 전년(8352만달러) 대비 24.6%나 늘었다. 캘리포니아 나파밸리를 중심으로 한 미국 와인 수입액 역시 전년 동기 대비 17.6% 증가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저가 와인이 나오는 칠레나 호주로부터 수입액은 감소세를 보였다.

고급 양주의 대명사로 불리는 ‘위스키’ 시장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올해 상반기 국내 수입 위스키 시장은 약 162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62% 증가했다. 특히 한 병에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싱글몰트 위스키’는 70% 가까이 증가하는 괴력을 뽐냈다. ‘맥캘란’ ‘글렌피딕’ ‘발베니’ ‘글렌그란트’ 등 주요 싱글몰트 위스키 고연산 제품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다. 박찬욱 감독 영화 ‘헤어질 결심’에 소품으로 등장해 인기를 얻은 ‘카발란’ 역시 올해 상반기 매출이 5배 이상 늘었다. 임페리얼로 유명한 드링크인터내셔널의 자회사 ‘인터리커’의 싱글몰트 위스키 ‘로크로몬드’는 올 상반기 판매가 전년 동기 대비 500% 넘는 성장률을 기록했다.

싱글몰트 위스키뿐 아니다. 고연산 블렌디드 몰트 위스키도 역시 인기다. 페르노리카코리아가 내놓은 대표적인 프레스티지 위스키 브랜드 ‘로얄살루트 21년 몰트’, 디아지오에서 파는 전 세계 판매 1위 스카치 위스키 ‘조니워커 블루’ 등이 대표적이다.

경기 일산에서 위스키 바를 운영하는 정도성 씨(가명)는 “값비싼 술을 한 잔씩 마시는 ‘잔술 문화’가 확산되면서 고가 위스키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규모가 작은 소형 위스키 바들은 제품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할 만큼 품귀 현상이 심하다”고 설명했다.

▶트렌드 2 ‘비주류’의 반란

▷버번 위스키·오가닉 와인·수제맥주

‘비주류’로 분류돼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술도 요새는 없어서 못 판다. 소비자 기호가 다양해지고 독특한 제품을 찾는 수요가 늘면서 주류 시장 전반에 활기가 돌고 있다.

와인만 해도 그렇다. ‘와인 하면 레드’라는 기존 통념이 무색할 정도로 최근 레드 와인 판매 성장세는 지지부진하다. 반면 ‘화이트 와인’ ‘스파클링 와인’ ‘내추럴 와인’ 등이 점차 점유율을 넓혀가고 있다. 올해 상반기 샴페인을 비롯해 스파클링 와인 수입액은 481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2.1% 늘었다. 화이트 와인 수입액 역시 6.4% 성장한 5361만달러를 기록했다.

‘친환경 와인’도 주목받는다. 신세계L&B 주류 전문 매장 ‘와인앤모어’에는 유기농·내추럴·비건 와인 등 친환경 와인을 전문으로 파는 ‘오가닉앤모어’라는 코너를 마련하고 총 350여종 와인을 판매 중이다. 지난해 와인앤모어 친환경 와인의 연간 매출은 직전 연도보다 96%가량 증가했다.

신세계L&B 관계자는 “과거에는 유명 브랜드나 특정 원산지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지만, 최근에는 다르다. 와인 애호가가 아닌 일반 소비자도 모바일 와인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와인 정보를 파악한 후 마음에 드는 와인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위스키에서는 ‘버번 위스키’가 대세로 부상했다. 한 병에 수십만원씩 하는 싱글몰트 위스키와 달리 4만~5만원에도 충분히 구입 가능해 지갑이 얇은 MZ세대에 특히 인기가 좋은 편이다. 버번 위스키는 옥수수를 51% 이상 사용해 화이트 오크의 안쪽을 불로 그을려 만든 술통에 숙성시켜 만드는 술로 캐주얼한 이미지가 강한 ‘가성비 위스키’로 주목받는다.

유통업계도 버번 위스키 유통망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GS25가 지난 6월부터 판매한 버번 위스키 ‘켄터키스피릿’ 10개 배럴 중 3개 배럴에 해당하는 500여병이 판매 시작 하루도 되지 않아 팔렸다. 신세계L&B는 지난해 11월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팔리는 버번 위스키 브랜드 ‘에반 윌리엄스’를 국내에 선보였다. 9개월 만에 누적 판매량 9만6000병을 기록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리는 중이다. 트랜스베버리지가 올해 6월 선보인 ‘와일드 터키 프라이빗 배럴’에 대한 반응도 뜨겁다. 리큐어 스토어, 스마트 오더 등에 업로드되자마자 일주일도 안 돼 준비한 물량이 완판됐다. 와일드 터키 올해 상반기 매출은 지난해 상반기 대비 234% 늘어난 바 있다.

‘주류 다변화’가 가장 두드러진 주종은 역시 ‘맥주’다. 오비맥주·하이트진로 등 기존 대기업뿐 아니라 소규모 브루어리들이 갖가지 ‘수제맥주’를 쏟아내면서 취급 제품 수가 급격히 늘었다. 지난해 ‘곰표 밀맥주’ 대란을 기점으로 수제맥주 매출과 가짓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지난 6월 CU 수제맥주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70.4%, 같은 기간 이마트24는 268% 증가했을 정도다. 편의점 4사에서 올해 새롭게 선보인 수제맥주만 60가지에 달한다.

과거에는 비주류로 취급되던 ‘비건 와인’에 대한 관심도 크다. 사진은 신세계L&B에서 비건 와인으로 리뉴얼해 선보인 ‘G7’. (신세계L&B 제공)

▶트렌드 3 섞어 마셔 ‘믹솔로지’

▷‘하이볼’ 인기에 ‘토닉워터’도 껑충

자기 취향에 맞게 술을 직접 섞고 만들어 즐기는 ‘믹솔로지(Mixology)’ 트렌드도 빼놓을 수 없다. 집에서 소비자 스스로 칵테일을 만들어 먹는 ‘홈텐딩(홈+바텐딩)’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중이다.

위스키에 탄산음료를 섞어 마시는 ‘하이볼’ 인기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 일본식 선술집에서나 볼 수 있던 하이볼은 최근 일반 음식점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을 정도로 대중적인 음료가 됐다. 위스키보다 도수가 낮은 덕분에 음식과 함께 먹기도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강남에 위치한 칵테일 바 ‘만타’에서 근무 중인 김진환 바텐더는 “하이볼은 증류주와 탄산수를 섞기만 하면 되는 음료로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다. 높은 알코올 도수 탓에 접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증류주들을 보다 쉽게 즐길 수 있는 방법으로, 주량이 세지 않은 이들도 맥주를 대신해 즐거운 술자리를 가질 수 있는 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이볼 인기 덕에 ‘탄산수’ 시장도 웃는다. 하이볼 제조에 주로 쓰이는 ‘토닉워터’가 대표적이다. 최근 3년간 토닉워터 시장 규모는 100억원에서 300억원대까지 성장한 것으로 집계된다. 올해 1분기 하이트진로의 ‘진로토닉워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1% 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류사들도 처음부터 ‘하이볼 패키지’를 내놓는다. 신세계L&B는 지난 2월 위스키 에반 윌리엄스 블랙 1ℓ 제품과 하이볼 전용 잔을 함께 구성한 하이볼 패키지를 선보였다. 이마트 트레이더스를 통해 8000개 한정 수량으로 선보인 하이볼 패키지는 판매를 시작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완판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발렌타인 역시 올해 4월부터 ‘발렌타인 7년 버번 피니쉬’와 ‘발렌타인 파이니스트’를 활용한 발렌타인 하이볼을 선보이고 있다.

아예 ‘섞어 만든 술’을 콘셉트로 한 제품도 속속 나오고 있다. GS25는 하이트진로와 손잡고 지난 5월 ‘소맥’을 제품화한 ‘갓생폭탄 맥주’를 선보였다. GS리테일 MZ세대 직원이 기획한 맥주로, SNS상에서 ‘소맥 황금 비율’로 알려진 ‘소주 1/3잔+맥주 1/2잔’ 비율의 맛을 구현한 ‘소맥 맥주’다.

수제맥주 스타트업 더쎄를라잇브루잉 역시 맥주에 사이다를 섞은 칵테일 맛을 낸 ‘맥싸’를 선보였다. 맥주와 사이다를 2 대 1로 섞는 레시피로 통상 맥주보다 도수(3.2%)가 낮아 저도주를 즐기는 MZ세대에 인기가 많다.

막걸리도 믹솔로지 트렌드에서 ‘핫’하다. 국순당은 지난 6월 롯데칠성음료와 손을 잡고 신제품 ‘국순당 칠성막사’를, 서울장수는 파리바게뜨와 함께 ‘장수 막걸리 쉐이크’를 선보였다. 특히 장수 막걸리 쉐이크는 출시 약 두 달 만에 30만잔 넘게 팔릴 정도로 주목받았다.

▶트렌드 4 술에 ‘스토리’를 담아라

▷연예인이 직접 기획…술 OST도 나와

이제 술에도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시대다. 단순히 맛은 물론 ‘재미’와 ‘개성’까지 녹여내야 술이 팔린다.

최근 연예인 등 셀럽이 직접 기획한 술이 인기를 얻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단순한 소주가 아닌, 셀럽들의 개성이 담긴 맛과 디자인에 힘입어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임창정 막걸리’ ‘김보성 소주’ ‘보아 맥주’ 등 셀럽과 협업한 각종 술이 잇달아 판매를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아티스트 박재범의 원스피리츠가 GS25에 단독 판매하는 ‘원소주 스피릿’은 카스와 참이슬 후레쉬의 아성을 넘어설 정도로 판매 열기가 뜨겁다. 나오자마자 바로 GS25 전체 주류 상품 매출 1위를 차지한 이후 순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차별화된 디자인도 인기 포인트 중 하나다. 라벨에는 한국 전통 자개를 모티브로 전복 껍데기 무늬의 홀로그램박을 넣어 세련된 이미지를 강조했다.

술마다 제품을 표현하는 OST가 생기는 날도 멀지 않았다.

‘쥬시후레쉬맥주’ ‘불닭맥주’로 유명한 더쎄를라잇브루잉은 최근 농심 새우깡과 컬래버해 만든 ‘깡맥주’를 주제로 음원을 발표한다. ‘손이 가요 손이 가’로 익숙한 새우깡 CM송을 EDM 버전으로 편곡해 만든 노래로, 향후 각종 뮤직 페스티벌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깡맥주에 앞서 선보인 ‘고길동에일’ 역시 가수 설운도의 ‘나침반’을 편곡한 노래를 내놓는다. 만화 영화 ‘아기공룡 둘리’의 캐릭터 고길동이 부른 노래에서 영감을 얻었다.

전동근 더쎄를라잇브루잉 대표는 “수제맥주 홍수 시대에서 콘셉트가 분명한 제품, 또 재미있는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 이마트24와 함께 선보인 수제맥주 ‘바나나플래닛’도 그중 하나다. 이마트24 캐릭터인 우주 원숭이 ‘원둥이’ 옆에 맥주를 태워 성층권으로 쏘아 보내는 퍼포먼스를 통해 우리 브랜드의 비전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나건웅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71호 (2022.08.10~2022.08.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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