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죽음을 기억하라

2022. 8. 10.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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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하루는 너무나 뜨겁고, 하루는 벼락 비가 쏟아지는 계절이다. 때때로 상쾌한 기분을 맛보고 싶어서 벨기에 풍자화가 필립 그뤽의 ‘르깟’(팬덤북스)을 읽으면서 재앙 같은 날씨를 견디는 중이다. 르깟은 벨기에의 ‘스누피’라고 불리는 고양이 캐릭터다. 아내와 아들, 딸 넷이서 도란도란 살고 있다. 1983년 처음 세상에 등장한 이후 위트 넘치는 말솜씨와 기발한 상상력으로 수많은 이의 사랑을 받았다.

르깟은 잠자리에 들 때는 “아침에 시간을 더 절약하려면 양복을 입고 잘까? 아니면 파자마를 입고 출근할까?”와 같은 출근 걱정을 한다. “계급에는 세 종류가 있어. 낮은 직급은 명령 없이는 아무 일도 못 하고, 높은 직급은 명령만 내리지. 그리고 중간 직급은 받은 명령을 전달만 하지” 같은 회사 생활의 불만도 털어놓는다. “나의 비만 친구들이여! 우리에겐 내면의 아름다움을 위한 공간이 더 많을 뿐이라네”라면서 외모를 중시하는 세상을 비꼬기도 하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와 마찬가지로 르깟은 “죽고 나서 또 다른 삶이 있다면, 도대체 왜 우린 죽어야 하지?” 같은 심각한 질문도 가슴에 품는다. 구약의 욥 같은 실존의 철학자들이 던졌을 듯한 질문이다.

청년 시절 짧게나마 비슷한 의문을 품었던 적이 있다. 죽음 이후에도 천국과 지옥이 이어진다면 살아 있는 우리를 심판하면 되지, 신은 왜 착한 사람조차 죽음의 문턱을 넘는 고통을 치르게 하는 것일까. 젊은 날에는 바쁜 일상에 삼켜져 그 답을 제대로 고민해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인생길 반 고비를 넘은 듯한 나이 탓인지 이번엔 새삼 이 질문이 와닿았다.

르깟의 말처럼 우리 인생에서 확실한 것은 “이제 완전히 끝난다는 마지막 마침표”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젊을 때부터 의지하던 어른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면서 요즘 그 엄연함을 선연하게 깨닫는다. 과거에는 더 많은 미래가 있었으나 어느덧 ‘미래들’은 사라지고 ‘미래’만 남은 듯한 기분이 든다. 죽음이란 인생에 주어진 가능성이 하나씩 줄어들다가 드디어 전혀 남지 않게 되는 일이다.

그러나 죽음 자체가 우리를 두렵게 하지는 않는다. 필연의 죽음은 오히려 살아 있는 동안 우리 인생의 순간순간을 극도로 소중하게 만든다. 일찍이 괴테는 노래했다. “내가 받은 유산 얼마나/ 찬란하고 얼마나 넓디넓은지/ 시간이 나의 재산,/ 내 경작지는 시간.”

시간은 인간의 가장 소중한 재산이다. 살아가면서 시간을 어떻게 경작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가을에 무엇을 수확하느냐가 정해진다. 우리의 삶이란 태어날 때 주어진 가능성을 써서 무엇을 현실로 빚어내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진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시간을 돌이켰을 때 우리 삶에서 의미 있어 보이는 그 무엇도 남지 않는 일일 테다.

그런데도 실제로 시간의 텃밭을 정성 들여 경작하는 사람은 드물다. 네이버, 카카오,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플랫폼과 소셜미디어 세상에선 더욱더 시간 낭비가 심해졌다. 이런 기업들은 인간의 시간을 착취할수록 더 큰 이익을 얻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노동시간도 짧지 않은데, 몸과 마음을 돌보고 가족과 친밀히 보내기보다 무의미한 글을 읽고 쓸데없는 영상을 보면서 여가를 보내는 이들이 세상에 넘쳐난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언어 말고는 궁극적으로 아무 가치도 없다. 괴테는 말한다. “거침없이 나의 영혼에서/ 흘러나오려는 사유밖에는/ 진정 내 것이 아님을 나 알고 있네.” 한때의 쾌락에 씨 뿌리는 엉뚱한 경작은 인생을 무가치한 허무로 남길 뿐이다. 신이 인간 앞에 죽음의 확고한 문턱을 마련한 이유가 있다. 인간에게 진짜 소중한 것은 시간뿐임을 깨달아 인생을 더 가치 있고 더 의미 있게 살려고 애쓰라는 것이다. ‘죽음을 기억하라.’ 이것이 신적 지혜의 기틀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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