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안녕'을 묻는 아침

김나래 입력 2022. 8. 10.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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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타인의 안부를 챙길 만큼 다정한 사람은 아니더라도 오늘만큼은 서로의 안녕을 묻자.

밤새 안녕하셨냐고.

'안녕'이라는 말뜻 그대로 아무 탈 없이 평안했냐고 묻고 답을 듣기까지 마음이 조마조마한 아침이다.

기후 대응 정책을 강구할 때까지 우리, '서로의 안녕'을 묻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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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래 온라인뉴스부장


평소 타인의 안부를 챙길 만큼 다정한 사람은 아니더라도 오늘만큼은 서로의 안녕을 묻자. 밤새 안녕하셨냐고. 수도권에 내린 80년 만의 폭우로 하루아침에 재난영화 속 장면이 삶의 현장이 돼 버린 아침. ‘안녕’이라는 말뜻 그대로 아무 탈 없이 평안했냐고 묻고 답을 듣기까지 마음이 조마조마한 아침이다.

친구는 어젯밤 뉴스 화면을 채웠던 그 장소에 있었다고 했다. 퇴근길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앞이 한 치도 보이지 않는 길을 간신히 헤치고 귀가했다고 한다. “전쟁터가 따로 없었어.” 반지하 월세방에 물이 차서 지인 집으로 피신한 이는 “내가 뉴스의 당사자가 될 줄은 몰랐다”는 말로 당혹감을 토로했다. 이 정도면 그래도 다행이다. 서울 관악구 반지하 가구에 살던 10대 아동과 지적장애인을 포함한 일가족이 숨졌다. 이웃들이 구하려고 했지만 순식간에 들어찬 물 앞에서 방법이 없었다. 이들 외에도 장대 같은 빗줄기에 속수무책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있다. 빗속에서도 작업해야 했던 노동자들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거나 전기에 감전돼 숨졌다.

2022년 8월, 이렇듯 기후 재앙은 이미 우리의 일상이다. 수도권과 강원 내륙·산지 지역에 며칠간 호우 특보가 내려진 동안 남부 지방과 제주도엔 폭염 특보가 떨어졌다. 누군가는 참을 수 없는 더위와 전쟁을 벌이고, 누군가는 상상하지 못했던 물폭탄과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모두에게 재앙이 된 기후라는 조건은 같다. 하지만 큰 비가 지나간 뒤 드러난 것처럼 기후 재앙과 싸우는 개개인의 대처 조건과 능력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폭염을 이겨낼 에어컨은커녕 효과 없는 선풍기 하나 갖지 못한 이들이 있다. 어떤 이들은 비를 피하기 위해 기상청 날씨누리 사이트에 들어가서 ‘초단기예측-강수’ 페이지를 통해 10분 단위로 강수량을 확인한다. 반면 누군가는 당장 어디서 얼마만큼의 비가 내리는지 정보를 찾을 시간도, 이를 확인할 휴대전화나 전자기기도 없다.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던 밤, 실시간 전자 정보에 익숙지 않은 노년층의 퇴근길이 더 멀고 험할 수밖에 없었다. 기후 재앙을 결코 개개인이 알아서 대처하도록 둘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우리가 ‘기후 정의’라는 말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도권의 물폭탄은 처음 겪는 것이 아니다. 구글에 ‘서울 침수 지도’만 쳐봐도 지금까지 어느 지역이 어떻게 침수를 겪었는지 바로 데이터를 찾아 들여다볼 수 있다. 수천억원의 예산이 들어갔음에도 왜 달라지는 것 없이 여전히 피해가 컸을까. 이런 재해에 가장 대응하기 어려운 이들은 누구였나. 이들을 위해 지방자치단체는, 정부는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유례없는 수도권의 비 피해를 보면서 우리가 찾아야 할 것들은 이런 문제에 대한 답변이다.

기후 재앙 앞에서도 가장 쉬운 길은 누군가를 탓해버리는 일이다. ‘누구의 탓’이라고 돌려버리고 감정적으로 배설하면 속은 시원할지 모른다. 이번에 큰 피해가 발생한 곳이 서울 강남이라는 이유로 지난 대선 결과와 결부해 비아냥거리는 글도 온라인에선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탓하고 넘어가기엔 앞으로도 닥쳐올 기후 재앙이 너무나 크다. 더구나 이 순간이 지난 후 제대로 대책을 세우지 못한 채 똑같은 일이 생긴다면, 그때도 가장 먼저, 가장 큰 피해를 볼 이들은 우리 사회의 약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다.

이미 10여년 전에 앤서니 기든스는 ‘기후변화의 정치학’에서 국가적, 지역적, 국제적 차원의 정치적 결단이야말로 중요한 해법임을 언급했다. 제발 역대 정부나 직전 시장 탓 같은 것 말고 제대로 된 대응을 볼 수 있을까. 기후 대응 정책을 강구할 때까지 우리, ‘서로의 안녕’을 묻자.

김나래 온라인뉴스부장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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