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재호 칼럼] 풍요 이후에 오는 나라
미국의 경제학자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는 1958년 『풍요로운 사회(The Affluent Society)』라는 명저를 통해 자본주의 발전의 모순을 예리하게 분석했다. 자본주의는 뛰어난 효율성과 생산성으로 인류를 풍요롭게 만들지만 수요보다 더 많은 생산 때문에 광고를 통해 과잉소비를 유도하게 된다. 반면에 저소득층은 구매력이 부족해 소비를 못한다. 이처럼 겉으로는 풍요로운 사회처럼 보이지만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과 경제양극화가 심화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하버드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조지 W. 부시 정부의 백악관 정책비서관을 지낸 부크홀츠(Todd G. Buchholz)도 『다시, 국가를 생각하다 (The Price of Prosperity)』에서 풍요로움의 패러독스를 세계사의 교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원제 ‘번영의 대가’에서 볼 수 있듯이 국가가 번영할수록 애국심은 사라지고 공동체 의식은 흐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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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진국 사회 풍요의 패러독스
무적 스파르타 저출산으로 소멸
풍요 이후 국가사회 붕괴 막아야
미래한국 설계에 온 힘 기울여야
」
로마 제국의 몰락은 귀족들의 사치와 환락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막강한 군사력을 지닌 스파르타는 어떻게 멸망했는가? 부크홀츠는 기원전 4세기 초반 스파르타의 몰락을 80퍼센트나 인구가 감소한 저출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천하무적 스파르타는 전쟁의 승리로 경제적 부를 얻고 노예를 거느리며 풍요롭게 되었다. 하지만 강인한 스파르타 군인들에게 풍요로운 생활은 출산의 필요성을 감소시켰다. 자녀가 많으면 여행이나 사치를 즐길 여유도 줄어들고 재산분할의 문제도 생기기 때문이다. 결국 스파르타는 기존의 군대도 유지하지 못할 정도로 인구가 줄어들어 역사에서 소멸한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세대 간 갈등은 심각하다. 흔히 60, 70대는 후진국, 40, 50대는 중진국, 20, 30대는 선진국에서 살았다고 한다. 60, 70대는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과 전쟁의 폐허에서 죽도록 일해야 겨우 먹고 살 수 있는 헝그리 정신으로 공부하고 일했다. 이들은 오늘 세계 10대 경제대국을 만들었다는 자부심과 함께 20, 30대가 따라오기 어려운 개인적 부도 누리고 있다. 40, 50대는 중진국 정도의 생활수준을 누린 세대였지만 군사독재 치하에 자유와 평등을 목마르게 갈구하던 세대였다. 한편 IMF 경제위기를 생생하게 경험하면서 불확실한 미래에 위기의식을 느끼는 세대이다. 20, 30대 MZ세대는 부모들이 가꾼 경제적 풍요로움뿐 아니라 K-문화 등 선진국 국민으로 자신감 가득한 세대이다. 하지만 미래보다는 현재를 즐기는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족의 세대이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성장한 우리나라는 흔히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는 용어처럼 어느 나라보다도 더 다른 세대가 한 나라에 공존하며 살고 있다. 이들이 서로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제 세대를 넘어 계층, 성별, 지역 등 다양하게 분열된 사회가 이익집단화된 정치에 의해 더욱 분열되고 있다. 어렵던 가정이 먹고 살만하니까 풍비박산이 나는 형국이다.
미국사회도 풍요 이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붕괴되고 있다. 이민사회로 이루어진 미국이 트럼프 정부 이후 이민을 제한하고 인종차별적 행태가 만연한다. 탐욕적 자본주의는 디지털 전환과 맞물려 빈부격차를 심화시킨다. 애국심, 프로테스탄트 윤리, 직업의식, 공화주의가 소멸하고 있다. 하버드대 퍼트남(Robert D. Putnam)교수가 『나 홀로 볼링(Bowling Alone)』에서 분석한 것처럼 미국 사회의 커뮤니티가 붕괴되고 극단적 개인주의 셀피시대가 도래했다. 총기난사, 선거결과 불인정, 가짜뉴스 선동, 극단적 정치 팬덤현상 등이 민주주의 공동체 질서를 위협하고 있다.
일본사회도 1980년대 “Japan as No.1” 신화가 붕괴되고 잃어버린 30년을 넘어 계속 추락하고 있다. 풍요 이후 길을 잃고 헤매는 일본의 많은 젊은이들은 최저임금의 아르바이트 생활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접고 근근이 살아간다. 해외유학은 생각도 안 하고 직장인들은 해외근무를 기피한다. 우물안 개구리처럼 국내의 안일한 삶에 자족하며 살길 원한다. 정치인들은 파벌 중심 정권연장에만 매달려 사회시스템 혁신에는 관심이 없다.
풍요 이후의 사회, 우리나라는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세계 최장수 국가로 달려가지만 세계 최고의 노인빈곤율, 노인자살률, 저출산율에 직면한 우리나라. 과연 정치 지도자들은 국민들에게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어떤 미래를 꿈꾸게 해줄 것인가? 검수완박에 사활을 걸었던 문재인 정부나 경찰국 신설에 매달리는 윤석열 정부에 미래 한국의 비전을 기대할 수 있을까? 미국이나 일본처럼 선진국병은 어쩔 수 없다고 수수방관만 하기에는 유사 이래 최고의 풍요를 맛보게 만든 선조들의 피땀 어린 노력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제라도 윤석열 정부는 국민통합위원회 출범을 계기로 미래 한국을 위한 새로운 어젠다를 마련하여 풍요 이후의 나라 설계에 온 힘을 기울여야만 한다.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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