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의 시시각각] 한동훈의 솜씨 보여줄 이민청 설립
한국에서 100년 넘게 대를 이어 살아온 인요한 연세대 의대 교수와 지리산 여행을 갔을 때다. 삼겹살을 구우며 동반자들에게 “왜 빨리 안 마시고 빼냐”며 연신 소주를 권하던 그는 영락없는 한국인이었다. 입에 착착 달라붙는 그의 전라도 사투리는 영혼에서 나오는 것처럼 구성졌다. 어느새 몰려든 그의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선 정작 토종 한국인들이 까맣게 잊고 있는 한국인의 정(情)이 가득했다.
그때 절감한 게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데 피부색은 중요하지 않다는 거였다. 특히 이제는 그럴 때가 됐다. 절멸을 향하는 출산율 때문이다. 한국의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지난해 0.81은 한 자녀 정책을 고수해 온 중국(1.15)보다 낮을 만큼 심각하다.
출산율 1.3은 초저출산 구간이다. 인구를 유지하려면 2.0을 넘어서야 하는데, 1.3 아래로 내려가면 종국에는 멸종으로 향한다. 최근 일본은 출산율이 1.3에 이르자 야단법석이 났다. 하지만 한국은 자유낙하하듯 올해 0.7 수준으로 출산율이 떨어질 것이 확실시되지만 고요하기 그지없다. 지금은 아예 출산율 저하를 거론하지 않는 분위기다. 젊은 부부에게도 가족계획을 좀처럼 묻지 않는다. 사회 활동이며 육아와 교육 비용을 책임져주지 못하는 삭막한 현실에서 아이를 낳으라는 말을 꺼내기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이대로 절멸할 수는 없다. 저출산의 끝은 절멸을 의미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1.3 수준인 일본의 저출산 소식을 접한 뒤 “일본이 사라지면 지구촌에 큰 손실”이라고 걱정했을 정도다. 우리는 지난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인구가 감소했다. 머스크가 이 소식을 접하면 어떤 반응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일본에선 인구가 유입되지 않는다는 극단적 가정에 따라 출산율이 1.3을 계속 밑돌면 총인구가 200년 후 1000만 명으로 줄고 종국에는 일본이 무인도가 된다고 전망했다.
로마와 미국은 이민 받아들여 번영
출산율 제고 어렵다면 이민이 대안
외국인 늘어나면 국가 활력 살아나
우리는 대안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요컨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이민이다. 그동안 한국은 주요국 중에서 가장 쇄국적인 이민 정책을 취해 왔다. 우리보다 더 폐쇄적으로 보이는 일본조차 그동안 몇 차례에 걸쳐 이민의 문호를 대폭 개방해 왔다. 고민 끝의 고육지책이었는데, 제도 설계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미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의 이민 정책을 대폭 참고했다. 즉 전문직이면 충분하고 특정 분야의 기술과 지식이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문을 열었다. 시행한 지 불과 3~4년도 지나지 않았고 코로나 여파도 있었기 때문에 아직 성과는 알려진 바 없다.
한국은 청사진조차 없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법무부 과제로 이민청 신설을 공식화한 것은 만시지탄이다. 늦어도 한참 늦었지만 한국의 절멸을 막는 유일한 길은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것밖에 없다. 한국은 1차 저출산 기본계획이 나온 2006년 이후 지금까지 출산율 제고를 위해 250조원을 투입했지만, 결국 아이 낳지 않는 사회로 전락했다.
이제 우리가 백의민족이라고 말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 글로벌화의 시대에 한국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됐다. 방탄소년단의 우리말 아리랑에 전 세계 아미 팬들이 열광하는 시대다.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의 불법체류를 단속하는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한국의 매력에 끌려 한국으로 오고자 하는 외국인을 적극 받아들여야 한다. 로마처럼, 미국처럼 이민을 받아 더 강력한 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 이미 농어업과 건설 현장에서는 외국인 없이 일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법무부는 그동안 검토한 해외 제도와 이민 현황을 토대로 이민청 개청에 속도를 내주기 바란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이민청 신설을 추진하다 반대 여론에 밀려 지레 접었던 적이 있다. 이제는 누가 반대하랴. 한국에 오고 싶어 하는 외국인이 최소한의 기준에 부합한다면 한국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한동훈 장관이 솜씨를 보여줄 때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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