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완의 논설위원이 간다] 7년째 제동 걸린 설악산 케이블카, 정권 바뀌며 재시동
인적 없어 한산한 오색지구 케이블카 예정지
오색지구 공영주차장에서 도로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니 넓게 포장된 광장이 나왔다. 광장 앞 작은 케이블카 모형은 이곳의 미래 계획을 보여주는 듯했다. 광장 옆에는 질퍽한 흙바닥으로 방치한 공터가 있었다. 케이블카의 하부 정류장을 건설하기 위해 남겨둔 땅이다. 주변에는 오가는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아 한산한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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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부가 불허, 행정심판서 뒤집혀
윤 정부 대선공약 … 양양군에 힘실어
환경단체 “산양 서식지 파괴” 우려
양양군 “공사 기간 보호대책 마련”
사업비 1000억원, 야당 협조가 관건
민주당, 선거때 지원 약속 지켜질까
」
오색지구는 강원도와 양양군이 추진하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대청봉 근처에 있는 봉우리인 설악산 끝청(해발 1604m) 앞까지 약 3.5㎞ 구간을 연결하는 사업이다. 2015년 8월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에서 조건부 승인을 받았지만 7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첫 삽을 뜨지 못했다. 녹색연합 등 환경단체의 거센 반발과 전임 문재인 정부의 부정적인 태도로 우여곡절이 심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강원도와 양양군은 다시 사업 추진에 의욕을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 대선에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조속 추진’을 지역 공약으로 제시했다. 현재는 환경영향평가를 위해 원주지방환경청과 양양군이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하부 정류장 예정지에서 야트막한 바위에 올라 설악산 쪽을 바라봤다. 초록빛 잎사귀가 반짝이는 나무 사이로 작은 봉우리가 보였다. 기자를 안내한 김철래 양양군 삭도추진단장은 “케이블카를 건설하면 네 번째 중간 지주가 올라갈 자리”라고 말했다. 오색케이블카의 전체 노선에서 중간쯤에 해당하는 위치다. 강원도와 양양군은 2026년 말까지 공사를 완료하고 2027년 초 케이블카 운행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김 단장은 “케이블카 상류 정류장에 오르면 대청봉과 동해 전망이 시원하게 보일 것”이라며 “주변 환경 훼손을 막기 위해 펜스와 CCTV를 설치해 등산객의 이동을 차단하고 등산 장비도 일절 가져오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첫 번째 케이블카는 민간 특혜 논란
설악산 케이블카의 시작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올해로 51년째 운영 중인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의 권금성 케이블카(운행 구간 1.1㎞)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위인 한병기 전 의원이 설악산 국립공원 지정 직전에 사업 허가를 받았다. 민간 사업자가 기간 제한 없이 막대한 이익을 챙겨가는 구조여서 특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권금성 케이블카를 운영하는 ㈜동효는 2020년 말 기준으로 500억원의 이익잉여금을 쌓아두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에는 60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설악산에 두 번째 케이블카를 설치하려는 움직임은 80년대에도 있었다. 당시 건설부(현 국토교통부)는 오색지구부터 설악산 중청봉 앞까지 연결하는 케이블카 사업 계획(운행 구간 3.8㎞)을 세우고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에 문화재 현상 변경을 요청했다. 하지만 문화재위원회는 환경 훼손을 이유로 건설부의 요청을 부결시켰다.
그러다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난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1만 달러를 웃돌면서 관광 수요가 자연스럽게 증가했다. 해외 여행지에서 산악 케이블카를 경험한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국내에서도 케이블카 추가 설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정치권에선 특별법까지 만들어 국립공원 내 케이블카 설치를 허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환경부가 실시한 ‘사이버 정책포럼’이란 온라인 설문조사에선 응답자의 97%가 케이블카 추가 설치에 찬성했다. 환경단체는 “일부 개발업자와 지방자치단체가 조직적으로 참여한 결과”라며 설문조사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정책 변화의 속도가 빨라졌다. 환경부는 2010년 자연공원법 시행령을 고쳤다. 기존에 2㎞로 제한했던 국립공원 케이블카의 운행 구간을 5㎞까지 허용했다. 국립공원위원회는 시범사업을 거쳐 단계적으로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때 설악산 케이블카도 시범사업 대상에 포함했다. 당시 환경부는 “일본은 29개 국립공원에서 40개 이상, 중국은 장자제(張家界) 등 주요 국립공원에서 15개의 케이블카를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세계문화유산지구인 호주 레인포레스트 국립공원에선 세계에서 가장 긴 7.5㎞짜리 케이블카를 운영하며 글로벌 관광명소가 됐다”고 소개했다.
법원 “공사 끝나면 산양 돌아올 것”
설악산은 국립공원인 동시에 문화재의 일종인 천연기념물이다. 따라서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려면 문화재위원회 심의와 환경영향평가를 모두 통과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문화재청과 환경부는 케이블카 불허(부동의)를 결정했지만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가 번번이 불허 결정을 뒤집고 양양군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환경단체는 행정심판 결정을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냈지만, 1심에 이어 2심 재판부도 각하했다. 복잡하게 얽힌 법적 공방에서 승리한 쪽은 양양군이었다.
환경단체는 여전히 오색케이블카에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이다.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강원행동 등 7개 단체는 지난 5월 강원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색케이블카 사업 백지화를 요구했다. 이들은 멸종위기 1급 야생생물인 산양의 서식지 보호를 중요한 이유로 내세운다. 케이블카 예정지 주변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했더니 산양 38마리의 움직임이 확인됐다. 녹색연합은 “사업 대상지에서 새끼산양의 배설물이 발견됐다. 이 지역은 산양의 주 서식지일 뿐만 아니라 산란처(번식지)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케이블카를 운영하면 소음과 진동으로 산양의 서식환경이 파괴되고 심하면 산양의 멸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환경단체의 논리다.
강원도와 양양군은 “사업 대상지는 산양의 주 서식지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김 단장은 “케이블카를 운영할 남설악 지역은 산양 특별보호구역에 해당하지 않고 서식 밀도도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케이블카 지주를 500~700m 간격으로 설치하면 그 사이로 산양들이 충분히 이동할 수 있다. 공사 기간에는 소음 방지대책을 세우고 산양의 산란 시기나 야간에는 공사를 중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원도 양양군의 손을 들어줬다. 환경단체는 국립공원위원회가 오색케이블카를 조건부로 승인한 걸 취소해 달라며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서울행정법원은 2019년 판결에서 “공사 소음으로 인해 산양이 일시적으로 떠날 수 있지만 회귀 습성에 따라 공사 종료 후 다시 돌아올 것으로 생각된다. 케이블카 노선 주위의 생태축과 생태통로가 단절되는 결과가 초래될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남는 건 돈 문제, 국비 50억 지원 요청
양양군은 올해 말까지 환경영향평가 재보완서를 작성해 원주지방환경청에 제출할 계획이다. 환경영향평가가 마무리되면 남는 건 돈 문제다. 2016년 양양군이 추산한 케이블카 총사업비는 587억원이었다. 이후 6년이 지나면서 물가가 많이 오른 데다 새로운 공법까지 적용하려면 1000억원가량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강원도와 양양군은 사업비의 일부를 정부에서 지원받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는 입장이다. 김진태 강원지사는 지난달 9일 추경호 경제부총리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김 지사는 내년 정부 예산안에 케이블카 지원금 50억원을 반영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부와 여당만 합의한다고 국비 지원이 이뤄지는 건 아니다. 국회에서 예산안 처리의 열쇠를 쥔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올해 두 차례 선거를 거치면서 더불어민주당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문재인 정부의 환경부가 케이블카 사업을 불허한 것과 대조적이다.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의원은 오색케이블카에 대해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는 대안이 구축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케이블카가 오히려 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측면이 많다. 반드시 성사되도록 뒷받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발언이 선거용 ‘립서비스’였는지, 실제로 입장이 변화한 것인지는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드러날 전망이다.
주정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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