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읽기] 그 어느 때보다 화급한 올여름
맹렬한 여름이 계속되고 있다. 폭염도 무섭지만, 호우도 두렵다. 기후가 언제부터 이처럼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급변했는지 의아할 정도이다. 최근에 본 사진 한 장이 내 머릿속에 남아 계속 맴돌았다. 인도인 기후활동가인 소남 왕축이 다람살라에 있는 달라이 라마에게 라다크 빙하의 얼음을 건네는 사진이었다. 소남 왕축은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환경을 생각하며 사는 ‘단순하게 살기’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고 했다. 달라이 라마는 “녹아내리는 얼음을 받아드니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고 한다. 기상이변이 우리 목전에서 수시로 일어나고 있어서 이제 지구 환경의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제주에도 불볕더위이다. 해 뜨자마자 땅이 후끈거린다. 한 점 바람도 없다. 유일하게 나무 그늘이 들어가 숨을 곳이다. 멀구슬나무나 팽나무 그늘은 폭염을 피할 만하다. 나무들이 없다면 여름 한낮에 들어가 있을 곳이 마땅하지 않을 것이다. 그늘에 들어가 있는 것만으로도 얼음물을 한 컵 마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정현종 시인이 시 ‘나무에 깃들여’에서 ‘나무들은/ 난 대로가 그냥 집 한 채./ 새들이나 벌레들만이 거기/ 깃든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면서/ 까맣게 모른다 자기들이 실은/ 얼마나 나무에 깃들여 사는지를!’이라고 노래했는데, 새삼 나 또한 나무라는 한 채의 집에 새들과 벌레들과 함께 깃들여 사는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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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상이변 잦은 2022 여름나기
단순하고 소박한 피서 그리워
자연에 대한 무관심은 큰 죄악
」
밤에도 더위가 이어져 더위를 피하려 바닷가에 나가기도 한다. 해변에는 많은 사람이 나와 있고, 저 멀리에는 어선들이 집어등을 켜고 조업을 하느라 밤바다는 환하다. 파도는 밀려와 시원한 해조음을 들려준다. 밤이 되고 바닷바람이 불어와 사람도 해변의 모래도 몸을 식힌다. 한참을 바닷가에 앉아 있다 보면 마음도 한가함을 얻는다. 칠레 출생의 솔 운두라가의 그림책 『여름 안에서』는 해변의 여름 풍경을 다뤘는데, 이런 문장이 있다. ‘오후 두 시, 햇볕이 맹렬히 내리쬔다. 타지 않으려면 물에 들어가야 한다.’ 밭에서 일하는 사람은 맹렬한 햇볕을 피해 나무 그늘로 피신하고, 해변에 나온 사람은 맹렬한 햇볕을 피해 바닷물 속으로 피신한다. 그렇다면 나무와 바닷물은 잘 가꿔야 할 자연인 셈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해안선을 등 뒤에 두고 늦은 밤에 집으로 돌아오곤 한다. 내 등 뒤에는 푸른 바다가 있다. 시인 월트 휘트먼이 ‘펼쳐진 땅이 용솟음치는 바다여!/ 드넓게 호흡하는, 숨결 불거진 바다여!/ 생명의 소금인 바다여!/ (…) / 폭풍우를 울어 내고 길어 내는 자여!/ (…) / 나는 너와 하나가 된다……나 역시 한 면이자 모든 면이다’라고 노래한 바다가 여름밤 속에 있다.
이 여름날에 무엇을 해서 드시느냐고 시골에 계시는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더니 감자를 드시고 호박잎을 드신다고 하셨다. 남새밭을 가꾸면서 거기서 나는 것을 캐고 따서 드신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자니 일순에 어디에고 잘 뻗어 나가는 호박넌출이 눈에 들어왔고, 호박잎을 쪄서 먹던 여름날이 떠올랐다. 동시에 원두막 생각도 났다. 참외나 수박이 영그는 밭머리에 지었던 원두막 그늘이 그리워졌다. 햇볕을 피해 들어가던 그 원두막 그늘에는 바람이 좋았다. 원두막 그늘에서 잠깐씩 땀을 식힐 수 있었고, 밤에는 그곳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말하자면 원두막은 앞서 말한 또 다른 나무 그늘이요, 맹렬한 햇볕에 타지 않으려고 들어가던 해변의 바닷물 같은 것이었다.
한 산사에서 모기장 영화 음악제를 열었다는 소식은 신선했다. 평상에 모기장을 쳐놓고 그 속에 들어가 옥수수를 먹으며 밤하늘을 올려보던 기억이 떠올라 행복한 마음이 들게 했다. 무더위를 금방 가시게 할 전자제품의 도움을 받는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더러는 예전에 피서의 방법으로 선택했던, 혹은 여름날을 살았던 생활 방식을 이즈음에 응용해서 살아보는 일도 해볼 만하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기상 이변이 일어나고 있는 올해 여름을 살면서 우리가 생명 세계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돌아봤으면 한다. 정현종 시인은 또 다른 시 ‘급한 일’에서 이렇게 썼다. ‘그 어떤 경우에나 이제는 꼭/ 먼저 생각해야 할 게 있어./ 죽어가는 공기/ 죽어가는 물/ 죽어가는 흙 생각이야./ 공기니 물이니 흙 따위엔 관심이 없다고?/ 그 무관심은 오늘날 아주 큰 죄악.’ 이 시에서처럼 올여름은 어느 때보다 우리에게 닥친 급한 일을 생각하게 한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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