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실력
실력. 윤석열 대통령이 유난히 강조하는 키워드다. 취임 전에는 주로 전 정부를 비판하는 데 썼다. 지난해 12월 경제 유튜브 삼프로TV에 출연해 “실력 없는 정부는 하면 할수록 마이너스다. 지금 정부는 실력 없는 정부”라고 직격탄을 날린 게 대표적이다.
취임 이후엔 주로 인사의 당위성을 옹호하려 썼다. 지난 3월 기자회견에선 “각 분야에서 최고 경륜과 실력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임명하면서 “절대 파격 인사가 아니다. 영어 실력이 유창하다”고 말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검찰 편중 인사, 서오남(서울대 출신 50대 남성) 일색 인사란 지적이 쌓여갈 때도 윤 대통령은 ‘일을 잘할 테니까 믿어달라’고 대응했다.
한데 지금 이 정부의 실력에 박수 칠 국민이 얼마나 될까. 속도만 앞세운 경찰국 설치는 공감을 얻지 못했다. “가뜩이나 먹고 살기 힘든데 이게 그리 급한 일이냐”는 비판 앞에 ‘경찰의 민주적 통제’라는 명분은 퇴색됐다. 청년을 돕겠다며 내놓은 채무조정 지원방안은 “빚내서 주식·코인에 투자한 사람을 왜 우리 세금으로 돕느냐”는 반발을 샀다. 시대의 화두가 ‘공정’인데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탓이다. 코로나19 재확산에도 존재감이 없는 질병관리청이 ‘질병관람청이냐’는 조롱을 듣는 것도 딱히 이상하지 않다.
화룡점정은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5세로 조정하는 학제 개편안. 이 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파워를 자랑하는 학부모를 상대로, 전혀 준비되지 않은 키워드를 던졌다. 실력은 차치하고, 최소한의 정치 감각조차 안 보인다. 장관이 발표한 걸 대통령실이 해명한다는 건 사전 조율 기능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수차례 반복되고 있다.
정부의 실력은 정책에서 나온다. 정책은 애초에 그림도 잘 그려야 하지만, 일 처리도 깔끔해야 한다. 일단 내부의 원활한 소통이 전제돼야 동력이 생긴다. 생각이 다른 정책 수요자를 설득하고, 속도 조절을 하는 것도 필수다. 이 모든 걸 잘해도 칭찬받는 건 쉽지 않다. 반면 실력 없다고 찍히는 건 한순간이고, 회복도 어렵다.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을 낙관하기 힘든 이유다.
일주일 뒤면 취임 100일을 맞는다. 지지율은 29.3%(8일 리얼미터). 국민이 지금, 대통령의 실력을 묻고 있다.
장원석 S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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