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리포트] 문화·관광시설로 개발 공감대.. "성동구 랜드마크 탄생 기대"
서울 성동구 응봉산에 올라서면 고층 빌딩과 서울숲의 풍경을 가리는 레미콘 공장을 하나 볼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철거가 확정된 삼표산업 성수공장이다. 이 공장을 두고 주민들은 빨래를 널지 못할 정도로 자욱한 미세먼지와 교통 체증에 시달려왔다. 서울시 역시 사실상 마지막 알짜배기 땅인 이 곳에 수차례 개발을 시도했으나 현대자동차그룹 사옥 개발 등 모든 계획이 엎어지며 실패를 반복해야만 했다.
그런 삼표산업 성수공장이 오는 16일 마침내 완전히 철거된다. 1978년 공장을 가동한 지 44년 만이다. 해법은 삼표산업의 자진 철거 및 자체 개발이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민선 8기 핵심 정책인 수변 감성 도시 구축의 전진기지 역할을 할 이곳의 개발 계획에 수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성수공장의 실질적인 개발 논의는 2006년 시작됐다. 성동구 관계자는 9일 “그때부터 총 세 번의 변곡점을 거쳤다”고 돌아봤다. 2006년 현대차그룹은 성동구와 손을 잡고 성수공장 부지를 현대제철을 통해 사들였다. 이어 1조원을 투입해 110층 규모의 ‘서울 포리스트 워터프런트 타워’ 건축 계획을 세웠다. 포화상태였던 서울 서초구 본사 사무실뿐 아니라 컨벤션센터, 자동차 테마파크 등을 포괄하는 매머드 구상이었다. 2009년 현대차그룹이 제1종 주거지역인 이곳을 상업지구로 바꿔 달라는 제안서를 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2011년 10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개발계획을 전면 재검토하면서 사업이 중단됐고, 현대차그룹은 신사옥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계획은 현대차그룹이 추후 매입한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로 고스란히 옮겨져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로 확대됐다.
두 번째 변곡점은 2015년이었다. 성수공장의 폐수 무단배출 현장이 성동구에 적발되면서 부지 적절성 논란이 재점화됐다. GBC를 놓친 성동구와 인근 주민을 중심으로 공장 이전 요구가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결국 박 시장이 성동구를 찾아 공장 이전을 약속했다. 2017년 10월 레미콘공장 부지 소유주인 현대제철, 공장 운영업체 삼표산업, 성동구 간의 4자 협의가 시작된 후 ‘서울숲 완성을 위한 삼표산업 성수공장 이전협약’이 체결됐다. 2022년 6월 30일까지 공장 철거를 완료하고, 서울시와 성동구가 공장용지를 매입해 서울숲과 이어지는 공원으로 만드는 내용이었다.
시는 시유지인 서울숲 동쪽 주차장(1만9600㎡) 부지를 자연녹지에서 준주거용지로 용도 변경한 뒤 민간에 매각키로 했다. 그 자금으로 공장 부지를 강제 수용해 공원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번엔 민간에 특혜를 줄 수 있다는 논란 등이 나오면서 오 시장이 지난해 서울시로 복귀한 뒤 이 방안 역시 폐기됐다.
그러자 삼표산업이 현대제철로부터 부지를 매입하고 공장을 자진 철거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세 번째 변곡점’이다. 서울시와 성동구는 결국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시 관계자는 “강제 수용 후 공원화 방안만으로는 올해 안 철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며 “오 시장이 기존 방안을 폐기하고 자체 철거 방안을 받아들이면서 전략적 합의를 끌어냈다”고 말했다.
현재 방식으로 진행되면 실질적인 부지 활용 방안은 일단 삼표산업의 뜻이 우선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삼표산업 역시 부동산개발 전문가인 전 대림산업 사장을 사업개발 총괄사장 겸 에스피에스테이트 대표이사로 영입하면서 적극적인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용도 변경 권한을 가진 서울시 역시 자신의 뜻을 관철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서울시는 일단 사전협상제도를 활용해 해당 부지 개발 방안을 삼표산업과 협의할 계획이다. 사전협상제는 1만㎡ 이상 대규모 부지를 매입한 민간 사업자가 개발계획을 세울 때 미리 서울시와 협의하는 제도다. 시는 이를 통해 완화 받은 용적률의 60%를 공공기여분으로 받을 수 있다.
다만 ‘불가역적’인 철거 조처가 이뤄질 때까지 구체적인 사업은 거론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시 관계자는 “구체적인 방안은 삼표 측이 해당 부지를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만든 뒤부터 논의할 생각”이라며 “불가역적 수준은 사일로 해체”라고 말했다. 현재는 레미콘 생산시설 중 플랜트 4·5호기 등만 철거된 상태다. 삼표산업 관계자는 “성수공장 가동은 29일 중단됐으며, 3일부터 1~3호기에 대한 동시철거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부지가 중랑천과 한강 합류부에 있는 ‘개발 요지’인 만큼 수변 중심의 복합거점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만 오 시장이 직접 밝힌 상황이다. 따라서 주거 목적 건물에는 상당히 부정적이다. 시 관계자는 “주거 기능이 있는 건물도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주거 중심의 건물이 들어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시와 성동구는 해당 부지를 문화·관광시설로 개발해야 한다는 데 큰 틀에서 동의한 상태다.
주민들은 수십 년 세월의 고생을 보상해줄 수 있는 시설을 기대하고 있다. 성수동 부근에서 30년 이상 거주한 이모(63)씨는 “사고, 소음, 미세먼지 등 때문에 오랜 기간 주민들이 고통을 받아왔다”며 “이제는 대기업 본사나 과학관 등 주민에게 필요한 시설이 들어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송모(65)씨 역시 “고생 끝에 철거되는 만큼 향후 뚝섬 승마장 부지까지 활용해 성동구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시설이 들어오길 바란다”며 “주거 위주의 시설이 들어온다면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수십년간 어려움 많았는데 드디어 마침표… 오페라하우스 지었으면”
정원오(사진) 서울 성동구청장은 성동구의 숙원이었던 삼표산업 성수동 레미콘 공장 이전을 첫 임기부터 꾸준히 추진해왔다. 7년의 노력 끝에 3선 임기 첫해인 2022년 결실을 보는데 성공했다.
정 구청장은 최근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수십 년간 성동구에서 사업을 추진하려고 했고, 어려운 점이 많았는데 오세훈 시장이 마침표를 찍어줬다"며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성수공장 이전 문제는 어떤 현안보다도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 공장 인근 서울숲의 대기 질은 악화일로였고, 레미콘 차량에 의한 사고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 구청장은 "서울숲에서 미세먼지 측정을 하면 굉장히 높게 나온다. 숲에서는 농도가 낮아져야 하는데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정 구청장은 앞서 발표한 2040 성동도시발전기본계획에 담긴 것처럼 왕십리 일대는 업무 중심지역으로 개발하고, 행당동 소월아트홀 부지를 행정타운으로 조성한다면 성수공장 부지는 문화·예술타운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민들에게 서울숲과 어울리는 시설에 대해 설문을 했을 때 대부분 문화 시설이 와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며 "성수동 일대가 관광명소로 유명한 만큼 이를 연계한 문화관광 타운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성수공장 부지 개발과 관련해서는 "서울시의 개발 주도권을 확실하게 인정한다"고 밝혔다. 서울시가 사전협상의 주체이고, 성동구는 일단 협상 과정을 지켜보면서 의견 개진을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2040 성동도시발전기본계획에서 언급된 오페라하우스도 해당 부지를 고집하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정 구청장은 "성수공장 부지를 개발하면서 서울숲도 재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며 "(오페라하우스는) 공장 부지도 괜찮고, 다른 자리라도 합리적으로 조정을 할 수 있으면 하면 된다. 충분히 논의가 가능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성동구의 입장은 사전협상 과정에서 나오는 이익을 활용해 서울숲 부지 내에 랜드마크적인 오페라하우스가 지어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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