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틀임' 준비하는 龍山..금싸라기 땅, 亞 실리콘밸리로

정다운 2022. 8. 9.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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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국제업무지구를 일터와 주거, 문화, 녹지가 어우러진 ‘하이테크놀로지도시’로 만들겠다.”

“(용산 일대를)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융복합국제도시로 조성해 해외 자본과 글로벌 기업이 들어오는 아시아의 실리콘밸리로 탈바꿈시키겠다.”

지난 7월 26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구상’ 브리핑에서 약 49만3000㎡ 규모 용산정비창 일대 개발 가이드라인을 내놓으며 다짐한 말이다. 이날 개발 인허가권자인 서울시는 10년째 방치돼 있던 용산정비창 부지를 아시아의 실리콘밸리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용적률 1500% 이상을 적용해 잠실 롯데월드타워(123층)보다 높은 초고층 건물을 짓고, 부지 50% 이상을 녹지로 조성해 일자리와 주거, 문화생활까지 한 공간에서 이뤄지는 ‘직주혼합’도시로 조성하겠다는 구상이다. 방치돼 있던 서울 금싸라기 땅이 드디어 제대로 개발되겠다는 환영의 목소리가 나오는 한편, 잠잠해진 부동산 시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시각이 공존하는 모습이다.

용산구 한강로3가 일대에 있는 정비창 부지는 규모만 여의도공원의 2배, 서울광장의 40배에 달한다. 코레일이 전체 부지의 71%인 36만여㎡를 소유하고 있다. 나머지는 국·공유지와 사유지다. 서울에 마지막으로 남은 대규모 가용지인 만큼 서울의 금싸라기 땅으로 꼽혔고 그곳에 예정돼 있던 용산국제업무지구 도시개발사업은 한때 ‘단국 이래 최대 개발 사업’으로도 불렸다. 하지만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은 금융위기 여파로 지난 2013년 최종 무산됐고, 이후 10년 만에 글로벌 비즈니스 허브와 역사·문화·소통 공간으로 거듭나게 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7월 26일 서울시청에서 용산정비창 일대 개발 청사진인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구상’을 발표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

▶롯데타워보다 높은 마천루 들어서나

▷일자리·주거·문화 한곳에 ‘융복합도시’

이번 개발 구상의 핵심은 이 지역을 일자리, 주거, 여가, 문화 등 모든 활동이 한곳에서 이뤄지는, 직·주가 섞인 융복합국제도시다. 최첨단 기술 기업과 연구소, 글로벌 기업, 국제기구 등이 입주할 수 있는 업무시설과 MICE(기업 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시설, 숙박시설, 여가시설 등이 종합적으로 들어서야 가능한 구상이다.

서울시는 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규제 완화’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 지역을 서울시 최초의 ‘입지규제최소구역’으로 지정하겠다는 발표를 덧붙였다. 입지규제최소구역은 건축물 용도나 용적률, 건폐율, 높이도 서울시가 별도로 규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주거·상업·업무 등 토지 용도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모든 획지에 다양한 기능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개념이다.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에서 기존 토지 용도 규제를 없애겠다며 제시한 ‘비욘드 조닝(Beyond Zoning)’ 개념을 본격적으로 최초 적용하는 사례다. 서울시 관계자는 “주거·업무·상업 등 기능의 구분이 사라지는 미래 융·복합 시대에 맞는 새로운 용도지역 체계”라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또 올해 2월 문을 연 ‘서울투자청’을 본격 가동해 글로벌 기업과 해외 자본 유치에도 적극 나선다.

이에 따라 용산정비창 부지 내에서는 법정 상한 용적률인 1500%보다도 높은 용적률을 적용해 국내 최고층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현재 국내 최고층 빌딩인 서울 송파구 신천동의 롯데월드타워는 123층으로 용적률 573%, 높이는 555m다. 시는 용산정비창 일대를 초고층 건물이 들어선 ‘아시아의 실리콘밸리’로 만들겠다는 포부다.

녹지 구역을 50% 이상 확보하기로 한 것도 이번 계획의 특징이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용산국제업무지구에서 용산공원과 한강으로 뻗어나가는 방사형 녹지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부지 중앙에 대규모 중앙공원을 조성하고, 철도부지에는 선형공원이 들어선다. 용산국제업무지구 내부를 지상과 지하, 공중으로 연결하면 녹지와 보행 공간이 용산역과 용산공원, 한강까지 이어지는 점도 눈여겨볼 만한 지점이다.

지상을 녹지와 보행자 위주 공간으로 조성하는 대신 차량은 지하로 달릴 수 있도록 지하도로교통 체계가 만들어진다. 도시 지하를 여러 층으로 설계해 2개 층에 도로가 들어선다. 지하도로는 강변북로와 한강대로, 청파로 등 주요 간선도로와 직접 연결된다. 또 용산역 주변에는 지하철과 도로교통뿐 아니라 에어택시 같은 미래항공교통(UAM) 간 편리한 환승이 가능하도록 1호 모빌리티 허브를 조성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2025년부터는 인천과 김포국제공항, 용산 구간에서 UAM을 시범 운영한다. 향후에는 인천공항, 잠실, 수서 등 서울 곳곳을 연결하는 UAM 노선 거점으로 용산을 완성한다는 그림을 그린다. 말하자면 비행기를 타고 인천·김포공항에서 내려, UAM을 타고 용산을 거쳐 KTX나 GTX, 지하철을 갈아타면 수도권은 물론 전국으로 환승 이동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철도 노선은 현재 5개 노선(경부선, 호남선, 1호선, 4호선, 경의중앙선)에 GTX-B노선, 수색~광명 고속철도, 신분당선이 추가돼 총 8개 철도 노선 환승 체계가 구축된다. 오 시장은 “용산이 서울 교통계획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택 규모는 6000가구 수준

▷“두 번 실패 없다” 공공이 시행 맡는다

부지 내에 공급될 주택은 약 6000가구 규모로 정해졌다. 문재인정부 당시 계획됐던 1만가구보다는 줄었다. 5000가구는 순수 주거지로, 1000가구는 오피스텔로 조성한다. 30평대의 민간 분양주택과 20평대의 임대주택을 적절하게 섞으면 주택 6000여가구가 확보된다는 게 서울시 구상이다. 공공주택은 관련법에서 정한 대로 25%인 1250가구가 임대주택 형식으로 들어설 예정이다. 외국 기업과 인재의 유지·정착을 위해 국제교육시설과 같은 외국인 생활 인프라도 들어선다. 보상금 논란이 불거졌던 ‘대림’ ‘성원’ 아파트는 개발에서 제외됐다.

사업 방식에도 변화를 줬다. 공공기관인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와 코레일이 공동사업시행자로 나서는 방식이다. 과거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주체로 민간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를 선택했다 금융위기 직격탄을 맞아 좌초된 경험이 반영된 결과다.

사업은 코레일과 SH공사가 각각 70%, 30% 지분율을 설정하고, 공공이 약 5조원의 재원을 투입해 부지 기반시설과 녹지 등 인프라를 먼저 구축해놓고 이후 구역을 나눠 민간에 개별적으로 매각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사업 기간은 착공 후 10~15년가량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가 추산한 총 사업비는 토지비를 포함해 약 12조5000억원이다.

서울시는 내년 상반기까지 도시개발구역 지정과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2024년 하반기 기반시설 착공, 2025년 앵커부지 착공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환골탈태를 앞둔 서울 용산정비창 부지. (한주형 기자)

▶초대형 겹호재 터진 용산구

▷용산 집값, 3주 만에 하락 → 보합 전환

서울시가 용산정비창 부지에 국제업무지구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일대 부동산은 술렁인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용산공원 조성 같은 호재에도 주춤했던 집값이 다시 뛸 것이라는 기대와 집값 안정기에 투기 수요가 다시 붙을까 부담스럽다는 분위기가 상존하는 모양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8월 첫째 주 기준 주간아파트 매매 가격은 3주 연속 이어지던 하락세를 멈추고 보합세(-0.05%→0%)로 돌아섰다. 재건축을 추진 중이던 원효로 ‘산호 아파트’ 전용 103㎡의 경우 지난 5월에 15억원에 거래됐지만 최근 집주인들이 이보다 8억원 이상 높은 23억5000만원에 매물을 내놓고 있다. 직전 최고가보다 1억원 높은 가격이다. 다만 계획 발표 이후 실질적인 매매 거래로 이어진 것은 현재까지 없다는 게 일대 부동산 중계 업계 전언이다.

이촌동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이미 대통령실 이전 호재로 일대 집값이 한번 뛴 상태다 보니 매수자는 집값 떨어질까 덜컥 투자하지 못하는 분위기”라면서도 “집주인이 급매물을 회수하는 걸 보면 매도자 입장에서는 호재에 집값이 급등할 것이라는 기대 심리는 확실히 있다”고 전한다. 이어 “용산정비창 정비계획은 나왔지만 최소 10~15년을 내다봐야 하는 사업인 만큼 현재는 현금 부자들만 매수 의사를 내비치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어쨌든 부동산 업계에서는 이번 서울시 결정으로 용산이 향후 중심업무지구로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대통령 집무실이 이전하고 용산공원을 새롭게 조성하는 것에 더해 국제업무지구 개발계획까지 나오면서 중장기적으로는 용산이 강남권과 어깨를 나란히 할 확률이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반면 한 부동산 전문가는 “개발이 용산 집값에 중장기 호재로 작용하는 것은 맞고 꾸준히 우상향곡선을 그리는 데 일조할 것”이라면서도 “용산은 아직 주변 지역 교육 환경이 강남과 견주기 부족한 데다 도심복합개발사업은 최소 10~15년 이상 소요되는 만큼 반짝 늘어나는 투기는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가 본 용산정비창 개발

서울의 글로벌 도시 경쟁력 높일 마중물 돼야

용산은 청나라, 일본 등 외국군이 주둔한 군사기지로 ‘수난의 역사’를 겪은 지역이다. 한강과 접해 있고 남산과도 멀지 않은 군사적 요충지기 때문이다. 그만큼 용산의 입지 가치는 우수하다. 광화문 등 도심 접근성은 말할 것도 없고 서울발 KTX 노선이 용산역을 지난다는 점에서 지방 접근성도 우수하다.

최근 서울시가 발표한 용산정비창 개발 청사진은 오랜 기간 방치돼왔던 핵심지 개발을 다시 재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서울시 개발계획은 흥미로운 요소를 여럿 담았는데 도시 경쟁력을 높이려는 시도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올 상반기 발표된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안)’에서 제시된 ‘비욘드조닝(beyond zoning)’을 보다 구체화했다는 점부터 그렇다.

또 종전에 없던 ‘입지규제최소구역’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기존 상업지역의 최대 용적률, 건폐율 제한을 넘어설 방안을 제도적으로 제시한 것도 의미 있다. 높이 제한이 완화된 덕에 고밀 개발이 이뤄지면 그만큼 공간 효율성과 수익성은 높아진다. 미국 뉴욕시도 용적률 규제를 대폭 푼 덕분에 평균 용적률 1800%, 최고 용적률은 3300%에 이르는 맨해튼 허드슨야드를 탄생시켰다. 허드슨야드 프로젝트는 맨해튼 서쪽 허드슨강과 펜실베이니아역 사이 철도기지 등 대규모 부지를 대형 오피스, 쇼핑몰, 아파트, 호텔 등으로 탈바꿈한 사업으로 뉴욕 마천루 건설 붐을 불러왔다.

다음으로 전체 부지 대비 도로, 공원, 학교 등 기반시설률을 40%로 잡아 공공성을 확보하기로 한 것도 새로운 접근이다. 공공 기여를 높이는 대신 용적률을 대폭 완화해 민간 사업자와 공공이 함께 ‘윈윈’하겠다는 취지라서다. 특히 서울시는 과거 사업이 무산된 원인 중 하나였던 민간 주도 ‘통개발’ 대신 공공기관이 참여하는 ‘순차 개발’ 방식을 택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와 코레일이 부지 조성과 인프라 구축에 먼저 나서고, 민간이 개별 부지를 하나씩 완성해가는 방식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용산에 들어설 고층 건축물은 단숨에 랜드마크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용산정비창 개발 같은 시도가 개별 건물이 아닌 더 넓은 사업지에 적용되면 도시 전체 스카이라인과 경관이 확 달라진다. 여기에 공공 기여로 확보되는 녹지생태 공간이 더해지면 도심에 빌딩, 녹지가 혼합된 숲이 조성될 수 있다. 적절한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하고 지하 교통 흐름을 구축해 혼잡도를 낮춘다는 구상은 ‘스마트도시’ 조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이상적이다.

물론 용산국제업무지구 구상안이 실현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금리 인상 속도가 가파른 상황에서 12조5000억원에 달하는 사업비 조달 과정부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하지만 과거 실패를 교훈 삼아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개발계획을 실행하면 서울 도시 경쟁력은 얼마든지 뛰어오를 수 있다. 대규모 개발계획은 집값 불안 등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지만 늘 새로운 시도들이 계속돼야만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정다운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71호 (2022.08.10~2022.08.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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