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더 먹으려면 돈 더 낼판"..'칩4' 동맹에 이런 우려, 왜
“앞으로 식당에서 김치를 더 먹으려면 추가로 돈을 내야 할 수 있습니다.”
요식업계 관계자 A씨는 최근 미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인 이른바 ‘칩4 동맹’에 한국이 참여할 가능성이 커진 것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반도체와 김치가 무슨 상관이냐 싶겠지만, 중국이 식품·유통·원자재 등 다른 분야에서 보복하는 ‘돌려치기’를 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은 D램 등에서 한국 반도체 의존도가 절대적이어서 직접 보복이 간단치 않아서다.
경제계와 중국 전문가들은 2017년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이후 한국 기업이 입었던 피해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당시 중국에 진출했던 롯데·신세계 등 유통업체가 철퇴를 맞고, 현대차·기아의 자동차 판매량이 급감하는 등 국내 기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
8일 무역협회에 따르면 국내 먹거리·입을거리에서 중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지난해 9월 말 현재 조기(생선)의 전체 수입액 가운데 중국산 비중은 99.9%다. 수입 조기는 거의 대부분 중국산이란 뜻이다. 순견(실크)직물 수입의 97.5%, 버섯류 수입의 91.8%가 중국산이다. 수입 가죽제품도 중국산이 85.8%를 차지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5월까지 김치 수입액은 7185만 달러(약 94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21.1%나 늘었다. 수입 김치의 99.9%는 중국산이다. 중국이 식품 수출과 관련해 간접 보복에 나서면 요식업계와 중소 식품기업의 타격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식당에서 돈 내고 먹는 김치’ 우려는 현실이 될 수 있다.
이런 우려는 대만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중국은 이달 초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맞춰 대만 식품기업 100여 곳에 대해 수입금지 조치를 내렸다. 겉으론 수입 규정 위반을 이유로 들고 있지만 사실상 양안(兩岸) 긴장 고조에 따른 보복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대만은 2020~2021년 2년 연속 한국을 제치고 대중 수출 1위를 기록했다. 대체할 수 없는 품목의 수입은 허용하되, 다른 분야에서 보복하는 패턴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공급망과 시장 구조에서 중국 의존도가 높 은중소기업의 피해를 막을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중국을 통해 제3자 교역을 하는 기업은 새로운 수출기지를 찾고, 중국산 식품·농수산물의 수입 의존도 역시 줄여야 한다는 의미다.
박한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중국경제관측연구소장은 “지난해 문제가 불거진 요소수 같은 화학제품이나 희토류 같은 광물소재뿐 아니라 김치·농수산물·거위털 같은 기본 원자재도 중국에 크게 의존한다”고 말했다. 박 소장은 “일반 시민이 공급망 위기를 체감하고, 물가에도 영향을 미치는 데다 중기의 생존과 직결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대기업의 경우 미국과 갈등을 피하면서 거대한 중국 시장을 놓치지 않을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소장은 “공급망 구조는 글로벌 밸류체인(GVC·Global Value chain)에서 대륙별 밸류체인(CVC·Continental Value chain)으로 변화하는 ‘다극화 시대’를 맞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중국도 첨단·선진시장 지향에서 범용·아세안·내수시장 중심으로 경제구조를 재편하는 만큼, 미국을 자극하지 않는 범용기술·중저가 제품으로 중국 시장을 공략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미·중 무역 갈등을 피해의 관점에서만 볼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홍대순 글로벌전략정책연구원장은 “한국이 칩4에 가입하더라도 중국에 좋은 제품을 공급할 수 있다는 점을 외교적으로 잘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원장은 “특히 전략적 포인트를 짚어 당당하게 중국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이 칩4에 가입해 안정적인 생산 체제를 갖추는 것이 중국에도 이득이라는 점을 알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도 이날 ‘한국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 구조와 리스크 분석’ 보고서에서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공급망 재편 전략에 부응해 적극적으로 미국 시장 진출을 도모하고, 중장기적으로는 특정 국가에 편중된 공급망을 분산시키기 위해서 현재의 공급망 재편을 기획해야 한다”고 밝혔다. 즉 중국 의존도가 높은 반도체 후공정 등에선 공급선을 다변화하고, 노광장비 같이 취약 분야에서는 원천 기술을 가진 미국·유럽·일본 등과의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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