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원 축소에..지역화폐 '계륵' 신세로

김경민 2022. 8. 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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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덩치만 키우더니..

지역화폐를 두고 정부, 지자체 간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새 정부가 지역화폐를 ‘현금 살포성 사업’으로 간주해 국비 지원을 점차 줄이는 가운데 지자체들은 재정 부담을 줄이려 지역화폐 혜택을 축소하고 있다. 10% 할인, 캐시백 혜택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은 “가뜩이나 물가도 오르는데 지역화폐 혜택을 왜 줄이냐”며 반발해 정부, 지자체 고민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지자체가 재정 부담을 이유로 지역화폐 혜택을 줄이면서 소비자 불만이 커지는 모습이다. 사진은 경기도 한 전 통시장. (매경DB)
▶지자체, 지역화폐 혜택 줄여

▷부산, 인천 등 할인율 5%로 하향

부산광역시는 최근 지역화폐인 ‘동백전’의 1인당 충전 한도를 월 50만원에서 30만원으로 줄였다. 충전 시 할인율(캐시백)도 10%에서 5%로 낮추기로 했다. 올해 동백전 발행 규모를 1조6000억원으로 책정했지만 상반기에 이미 83%를 발행해 발행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인천광역시도 지역화폐인 ‘인천e음’ 캐시백 혜택을 축소했다. 당초 월 결제액 기준으로 ‘50만원 한도 10%’였는데 7월부터는 ‘30만원 한도 5%’로 바뀌었다. 경남도 역시 올해부터 지역화폐 ‘경남사랑상품권’ 할인율을 5%로 낮췄다.

광주광역시는 예산 문제로 지역화폐 ‘광주상생카드’ 운영을 일시적으로 중단했다. 광주상생카드 발행을 위한 국비 261억원을 포함, 예산 653억원이 바닥난 데 따른 고육지책이다. 충북 청주시도 올해 확보한 예산 300억원이 모두 소진되면서 지역화폐 ‘청주페이’의 10% 인센티브 혜택을 중단했다. 수원, 용인, 성남 등 경기도 주요 지자체들도 지역화폐 인센티브를 대폭 줄이는 모습이다.

대전광역시는 지역화폐를 아예 없애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지역화폐 ‘온통대전’을 운영 중인데 최근 예산 소진을 이유로 캐시백을 중단했다. 이장우 대전시장은 “지역화폐 예산 1조원이면 대전의 미래를 좌우하는 큰 사업을 벌일 수 있다. 존폐를 두고 연말까지 고민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자체가 할인 혜택을 줄이지만 지역화폐는 여전히 인기다. 서울시가 발행하는 지역화폐 ‘서울사랑상품권’은 할인 혜택을 10%에서 7%로 줄였는데도 없어서 못 살 정도다. 지난 7월 14일 발행된 1차 상품권(250억원 규모)은 판매 시작 1시간여 만에 ‘완판’됐다. 1차 상품권을 구매한 소비자만 6만4650명이고, 평균 구매금액도 38만7000원에 달했다.

예상보다 큰 인기에 놀란 서울시는 한도를 500억원으로 늘려 2차 상품권을 발행했다. 오전, 오후로 나눠 판매했는데 각각 30여분 만에 완판됐다. 서울사랑상품권은 1인당 월 40만원까지 구매할 수 있고 보유 한도는 100만원이다.

지자체마다 지역화폐 발행 한도, 혜택을 줄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전국 지역화폐 발행 규모가 급증하면서 재정 투입 부담이 커져 정부가 국비 투입 규모를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화폐는 종이 형태로 발행하던 ‘지역사랑상품권’이 원조 격이다. 이후 카드, 모바일 앱을 통한 QR결제, 간편결제 등의 방식으로 진화하면서 사용층이 넓어졌다. 유형도 다양하다. 현금을 충전할 때 인센티브를 얹어주는 ‘추가형’, 충전액보다 낼 현금을 깎아주는 ‘할인형’, 상점 물건값을 계산할 때 깎아주는 ‘결제 할인형’ 등으로 나뉜다.

전국 지역화폐 발행 규모는 2018년까지만 해도 3714억원에 불과했지만 2019년 3조2000억원, 2020년 9조원, 지난해 22조원으로 매년 급증했다. 올해 발행 규모는 3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지역화폐 발행 규모가 늘면서 정부의 국비 투입 규모도 덩달아 증가했다. 정부 국비 투입 규모는 2018년 100억원에서 지난해 1조2522억원으로 치솟았다. 국비 외에 시도비, 시군구비 등 지방비를 감안하면 올해 지역화폐에 투입될 세금만 최대 4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지역화폐 해법은

▷무작정 축소 대신 효율적인 활용법 고민을

재정 부담을 우려한 정부는 최근 지역화폐 예산 축소에 나섰다. 정부는 올해 국비 투입액을 지난해보다 5000억원 이상 적은 7053억원으로 편성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전국 지역화폐를 중앙정부 예산으로 대대적으로 지원한 데 대해 학계 등 전문가의 많은 지적이 있었고, 예산 편성 과정에서 원점에서 실효성을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추 부총리는 “각 지자체가 실효성 점검을 자체적으로 해야 한다. 중앙정부 예산으로 광범위하게 지원하는 형태는 재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역화폐 규모가 커지지만 정작 소비 활성화 효과는 미미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세재정연구원은 ‘지역화폐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 보고서를 통해 “특정 지역 소비가 늘어나도 국가 전체적으로는 소비 증대 효과가 없다. 지역화폐는 소비자가 원래 쓰려고 한 현금을 대체하는 것에 불과하다. 지역화폐를 쓸 수 있는 업종에만 소비가 몰리게 하는 문제를 불러온다”고 분석했다.

지자체가 지역화폐 혜택을 줄이고 정부도 지역화폐 지원에 주저하면서 소비자 불만은 점차 커지는 분위기다. 물가가 치솟은 상황에서 ‘10% 할인’ 혜택이 쏠쏠했지만 더 이상 혜택을 누리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인천시가 지역화폐 ‘인천e음’ 캐시백 혜택을 10%에서 5%로 줄이자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물가가 올라서 힘든데 이거라도 유지해주지” “부자들은 감세해주는데 정작 서민 혜택은 다 없애네” 등 불만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정부 지원이 줄었다고 해서 무작정 지역화폐를 없앨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소비자들이 지역화폐를 선호하는 만큼 지자체 스스로 활성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도록 효율적인 지역화폐 활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다.

경기 용인시 사례를 눈여겨볼 만하다. 용인시는 최근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과 손잡고 ‘슬기로운 와이페이’ 시스템을 개발해 블록체인 기술 기반 지역화폐 플랫폼을 구축했다. 신용카드나 통신, 항공, 철도 등 여러 분야에서 적립된 마일리지 포인트를 지역화폐로 전환해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용인 지역화폐 플랫폼은 지난해 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하는 ‘2022년 디지털 공공서비스 혁신 프로젝트’ 공모에 선정돼 국비 18억원 지원을 받았다. 용인시 관계자는 “곳곳에 흩어진 마일리지는 사용기한이 지나면 사용할 수 없거나, 사용처가 정해져 있어 이용이 불편한 경우가 많다. 이런 마일리지를 지역화폐로 소비하면 시민뿐 아니라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자체들이 예산 부담을 줄이면서 소비자 혜택을 늘리는 방식으로 다양한 지역화폐 사업을 발굴할 필요가 있다. 다만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들이 포퓰리즘으로 무리하게 지역화폐 사업을 강행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A대 경영학과 교수 주장이다.

[김경민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71호 (2022.08.10~2022.08.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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