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직고용 쇼크..완성차업계도 '비상'

김경민 입력 2022. 8. 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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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고용 의무" 대법 판결에 떨고 있는 재계

대법원이 포스코에서 근무하는 협력업체 근로자를 포스코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재계가 시끌시끌하다. 포스코 하도급뿐 아니라 다른 제조업체 하도급 체제에 미치는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대법원이 포스코 협력업체 근로자 59명을 포스코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논란이 뜨겁다. 사진은 포스코 광양제철소. (포스코 제공)
▶대법원 “하청 직원 고용해야”

▷‘구속력 있는 업무상 지시’ 판단

대법원 3부는 최근 포스코 광양제철소 협력사 직원 59명이 포스코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원청이 직접 고용할 의무가 있다”며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하도급업체 근로자들이 도급 계약에서 허용하지 않는 원청(포스코)의 지휘, 명령 등을 직접 받은 것이 인정된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포스코 협력사 근로자 15명은 2011년, 44명은 2016년 포스코를 상대로 근로자로 인정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파견근로자보호법상 허용되지 않는 원청의 직접 지휘, 명령을 받았다는 이유로 직고용을 요구한 것. 이들은 포스코 협력사 소속으로 광양제철소의 열연, 냉연, 도금 공장에서 크레인과 지게차를 운전하며 운반 작업 등을 담당했다.

1심은 포스코 주장을 받아들여 원고 패소 판결했지만 2심에서 뒤집어졌다. 포스코 지휘, 명령 사실이 인정된다며 근로자 지위를 인정하라고 판결했다. 이들이 포스코로부터 사실상 구속력 있는 업무상 지시를 받았고, 다양한 업무에서 포스코 소속 노동자들과 광범위하게 협업한 데다 포스코가 작업량 등을 실질적으로 결정했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도 이 같은 원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원고들이 포스코 작업표준서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고, 제품 생산 조업 체계가 생산관리시스템(MES·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으로 관리되는 점에 비춰볼 때 원고와 피고 간 근로자 파견 관계가 성립된다고 판단했다. 파견법상 제조업은 파견 근로를 쓸 수 없는 만큼 이들을 포스코 근로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포스코는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번 판결로 포스코에서 근무하는 2만여명 하도급 근로자의 직고용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이는 포스코 직영 정규직과 무기 계약직 직원 수(1만7000여명)와 맞먹는 규모다. 포스코는 입장문을 통해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며 신속히 판결문을 검토해 취지에 따라 후속조치를 이행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내부적으로 상당히 답답해하는 분위기다.

판결 배경을 들여다보기 위해 도급, 파견 근로 차이점부터 살펴보자.

파견근로자보호법상 제조업체는 파견 근로를 쓸 수 없다. 총 파견 기간이 2년을 초과하면 안 되고, 2년을 초과해 계속 파견 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 때문에 철강, 조선, 자동차 등 제조업체들은 고용 유연성,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 파견 근로 대신 사내도급을 적극 활용해왔다.

또한 포스코 같은 원청업체는 협력사 근로자에게 구체적인 업무 지시를 할 수 없다. 이를 어기면 ‘불법 파견’이 되기 때문이다. 도급과 파견 근로의 가장 큰 차이점은 원청이 근로자에게 지휘, 명령을 내릴 수 있는지 여부다. 원청은 파견 근로자에 대해서는 지휘 또는 업무 지시를 할 수 있지만, 도급업체 근로자에게는 업무 지시를 하면 안 된다.

당초 철강업체는 공정 특성상 원청, 하청 업무가 분리돼 불법 파견 논란이 크지 않았다. 원청은 압연, 제강 등 철강 생산의 핵심 공정을 맡고 협력사는 원료 준비나 포장, 운송 등 부수적 업무나 자동화가 어려운 업무를 담당해왔다.

하지만 대법원이 하청 근로자에게 지휘, 명령을 내린 근거로 생산관리시스템을 제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MES는 원료 투입부터 완제품 생산까지 수백여 개의 복잡한 단위 공정을 제어, 관리하는 품질 관리 체계다. 2000년대 들어 일부 대기업에서 활용하다 자동차, 철강, 화학 등 다양한 산업군으로 확대됐다.

최근에는 대기업이 협력업체의 MES를 지원하며 원청과 생산 공정을 공유해왔다. 원청이 구축한 시스템을 통해 제조 과정이 관리되기 때문에 협력업체 작업 지시도 이 시스템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포스코는 “MES는 생산성 향상과 공정 관리를 위한 프로그램일 뿐 지시 체계가 아니다”라고 반박했지만 대법원은 “포스코가 MES를 통해 협력사 근로자에게 작업 정보를 전달한 것은 ‘구속력 있는 업무상 지시’ ”라고 간주했다.

자동차, 조선 등 불법 파견 소송을 진행 중인 업체마다 비슷한 판결이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자칫 기업마다 수만 명의 하도급 근로자를 직고용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 포스코가 2만여명의 하청 근로자를 직접 고용하고 임금을 올려주면 매년 인건비가 5000억원씩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글로벌 공급망 불안, 철강 경기 악화로 향후 실적 부진 우려가 큰 상황에서 하청 근로자 정규직화에 따른 부담까지 떠안아야 한다는 의미다.

▶재계 즉각 반발

▷경총 “기업 글로벌 경쟁력, 일자리 악영향”

포스코를 비롯한 주요 기업들이 하청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과정에서도 논란은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협력사 비정규직 전원을 자회사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충남 당진제철소와 인천, 포항공장에 자회사 3개를 설립해 협력사 직원을 직영 정규직 임금의 80% 수준으로 직접 고용했다. 하지만 정작 노조 반발로 난항을 겪었다. 협력사 노조가 자회사가 아닌 현대제철의 직고용을 주장하면서 50여일간 불법 파업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금속 노조는 자회사를 설립해 고용하는 방식을 ‘꼼수’라며 반발해온 만큼 포스코 역시 정규직 고용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재계에서는 제조업 근무 특성상 도급 체제를 인정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도급 계약 성질과 업무 특성, 산업 생태계 변화, 노동 시장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판결이다. 비슷한 판결이 이어지면 국내 기업 글로벌 경쟁력뿐 아니라 일자리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입장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이번 판결은 산업 현장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국제 기준에 어긋나는 파견 제도에 대해 합리적인 개선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제조업체들이 오랜 기간 사내 하도급 체제를 활용해왔는데 하청 근로자를 모두 직고용해야 한다면 고용 유연성이 떨어져 하도급 체제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 가뜩이나 인플레이션, 글로벌 공급망 불안으로 경영난을 겪는 상황에서 기업마다 대책 마련에 부심할 것이다.” 재계 관계자의 토로다.

[김경민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71호 (2022.08.10~2022.08.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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