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 취소 100% 환불..무모한 '쿠팡 트래블'

나건웅 2022. 8. 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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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숙박'..또 논란에 빠진 쿠팡식 출혈 경쟁

쿠팡이 커머스와 배달에 이어 ‘여행·숙박’까지 공격적인 영토 확장에 나섰다. 최근 파격적인 환불 보장 정책을 선보이며 여행·숙박 시장점유율 확대에 고삐를 죄고 있다. 업계 반응은 달갑지 않다. 과도한 프로모션으로 배달 생태계 전체를 교란했다고 평가받는 ‘쿠팡이츠’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애초에 이번 환불 정책 자체에 허점이 많다는 점도 논란이다. 펜션 운영자와 소비자가 정책을 악용할 수 있는 여지가 너무 많다는 지적이다. 여행·숙박 업계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쿠팡 트래블 환불 정책’은 무엇일까.

▶하루 전 취소해도 100% 환불

▷고객 물론 펜션 주인에도 전액 지급

지난 7월 쿠팡 내 여행 상품 전문관인 ‘쿠팡 트래블’은 펜션 상품을 대상으로 새로운 환불 보장 정책을 선보였다. ‘고객이 펜션 예약을 하루 전에 취소할 때도 100% 환불을 보장한다’는 내용이다. 기존에는 하루 전 취소할 경우 결제금액의 30% 정도만 돌려줬다. 환불 보장 상품은 쿠팡 트래블에서 판매 중인 펜션 숙박 상품 총 6000여개를 대상으로 적용된다. 해당 상품은 판매 페이지에 ‘하루 전 100% 환불’이라는 별도의 태그가 달린다. 현재 국내 운영 중인 펜션은 약 6만개로 추산된다. 전국 펜션 약 10%에 하루 전 100% 환불 정책이 적용되는 셈이다.

예를 들어보자. 8월 1일 30만원짜리 펜션을 예약한 A씨가 7월 31일 예약을 취소한다고 하면 이전에는 약 9만원을 환불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30만원 모두 돌려받을 수 있다.

쿠팡 트래블 환불 보장은 고객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쿠팡 트래블을 통해 펜션 상품을 판매하는 ‘펜션 운영자’도 판매 예정 금액을 보장받는다. 고객이 하루 전 급작스럽게 상품을 취소하는 경우 판매자 역시 쿠팡 트래블로부터 해당 금액을 100% 지급받을 수 있다. 원래대로라면 고객이 냈어야 할 위약금을 쿠팡이 대신 내주는 셈이다. 단, 이번 할인 정책을 적용한 판매자는 쿠팡 플랫폼에 내야 하는 기본 수수료율이 2%포인트 오른다.

쿠팡은 이 같은 환불 보장 정책으로 고객과 판매자 모두 ‘윈윈’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약 취소 시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리스크 없이, 기존의 경쟁력 있는 가격 그대로 유동적인 여행 스케줄 조정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다. 이철웅 쿠팡 트래블 총괄 디렉터는 “여행에서 고객의 가장 큰 불만은 취소·환불에 대한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여행 스케줄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고객이 마음 편히 여행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환불 보장 서비스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당장 점유율 확대, 도움 되겠지만

▷30만원 방 취소하면 쿠팡 적자 20만원

이번 쿠팡 트래블 100% 환불 정책을 놓고 기존 여행·숙박 플랫폼 업계는 달갑지 않다는 반응이다. 초기 손실을 감내하더라도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점유율 경쟁에 나서는 ‘쿠팡식 출혈 경쟁’이 펜션 시장에도 본격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무엇보다 지속 가능성에 의구심을 표하는 이가 많다. 당장 소비자 이목은 끌 수 있겠지만, 정책을 유지하기 위해 쿠팡이 부담해야 하는 돈이 만만치 않다는 의견이다.

앞서 A씨 사례로 돌아가보자. 8월 1일 예약한 30만원짜리 펜션을 7월 31일 취소한 A씨는 전혀 손해가 없다. 원래대로라면 결제금액의 70%인 21만원을 위약금으로 내고 9만원만 돌려받지만 이제는 쿠팡에서 30만원을 전부 돌려주기 때문이다.

펜션 운영자 B씨는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B씨는 쿠팡으로부터 약 25만원을 받는다. 펜션 요금 전액인 30만원에서 플랫폼 수수료 17%(수수료는 펜션마다 다름)를 제외한 금액이다. 실제로 방은 비어 있는 상태지만 B씨는 25만원을 버는 셈이다.

그뿐인가. 과거와 비교하면 B씨가 받을 수 있는 금액은 오히려 커졌다. 이번 환불 정책 이전에 B씨가 받는 돈은 17만8500원이었다. 소비자가 낸 위약금 21만원 중 플랫폼 중개 수수료 약 15%를 제외한 액수다. 그런데 이제 25만원을 받으니 7만원 넘게 수입이 늘어난다. 결과적으로 쿠팡 입장에서는 과거였다면 내지 않아도 됐을 돈 25만원이 ‘생으로’ 나간다는 얘기다. 고객이 내야 할 위약금을 쿠팡에서 대신 내주는 꼴이다.

방이 비싸다면 쿠팡이 낼 돈은 더 늘어난다. 펜션은 그 특성상 객단가가 크다. 하루 숙박에 100만원 넘는 상품도 수두룩하다. 8월 4일 기준 쿠팡 트래블 ‘100% 환불 보장 정책’이 적용된 펜션 중에서는 1박에 350만원(30명 투숙 기준)에 달하는 상품도 있다. 예약 한 건이 하루 전 취소됐을 뿐인데 300만원 넘는 돈이 날아가는 셈이다. 극단적인 가정이기는 하지만 이 같은 방이 한 달에 100건만 취소돼도 쿠팡이 입는 손해는 연 30억원이 넘는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호텔 업계 관계자는 “쿠팡 입장에서 당장 숙박 예약 점유율을 올리는 데 매력적인 정책이 될 수 있다. 펜션 특성상 하루 전 취소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에 적자폭이 크지 않을 거라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인 만큼 변수가 워낙 많다. 계속 유지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정책이 ‘펜션판 쿠팡이츠 사태’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쿠팡이츠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 과도한 프로모션으로 시장 전체 배달비를 끌어올리고 생태계 혼란을 야기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한 여행·숙박 플랫폼 업계 관계자 역시 “이번 환불 정책은 과거 수천억원 적자를 감수하고 진행한 ‘로켓배송’이나 라이더에게 엄청난 웃돈을 얹어주며 ‘한집배송’ 서비스를 시작한 ‘쿠팡이츠’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일단 점유율을 확보하고 나중에 수수료를 인상하는 식으로 수익 개선을 시도할 테다. 결국 소비자나 업계에 종사하는 생계형 펜션업자들, 나아가 플랫폼 업계 전체가 손해를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가족·지인 통한 ‘꼼수 환불’ 논란

▷취소 후 다른 손님 받는 ‘이중 계약’ 가능

쿠팡 트래블 환불 정책과 관련해 대두되는 또 다른 문제는 ‘도덕적 해이’다. 펜션 판매자가 고객과 ‘작당’하고 하루 전 취소를 남발할 경우 이를 제지할 만한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예를 들면 이렇다. 빈 방이 너무 많아 걱정인 펜션 주인 C씨가 지인 D씨에게 펜션 예약을 요청한다. 그리고 하루 전 취소를 부탁한다. D씨는 아무 위약금 없이 전액을 환불받는다. 이때 C씨는 방을 찾는 고객 없이도 쿠팡으로부터 돈을 받을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C씨 입장에서는 추가 수익도 노릴 수 있다. D씨가 취소한 해당 객실을 쿠팡이 아닌 다른 채널에서 다른 사람에게 특가로 판매하는 것이다. 요즘은 숙박 예약 플랫폼이 워낙 다양하다. 쿠팡 입장에서는 C씨의 이런 ‘이중 예약’을 막을 길이 없다.

경기 가평에서 7년째 펜션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민수 씨(가명)는 “처음 쿠팡 정책을 듣자마자 허점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가족이나 지인을 통해 ‘공짜 매출’을 올리려고 하는 시도가 판을 칠 것이다. 숙박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벌써 이런 ‘꼼수 환불’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제주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김영민 씨(가명)는 “진짜로 펜션을 이용하고 싶은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펜션 주인 입장에서는 실제로 고객을 받든, 가짜 고객이 하루 전 취소를 하든 매출에 큰 차이가 없다. 생태계에 큰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쿠팡은 지속적인 모니터링으로 ‘꼼수 환불’을 막겠다는 입장이다. 쿠팡 관계자는 “숙소를 이용하려는 선의의 소비자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비정상적인 예약에 대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나건웅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71호 (2022.08.10~2022.08.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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