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은 구겼지만 세 가지는 얻었다"..'하나의 중국' 재확인, 대만 압박 빌미, 달라진 위상 과시
3연임 앞둔 시진핑, 대만 문제 강경론 기울 듯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은 중국에 적잖은 굴욕을 안겼다. 중국 공산당을 비롯해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국무원, 외교부, 국방부 등 각종 권력기관 및 정부 부처가 총출동해 으름장을 놨지만 펠로시 의장의 대만행을 막지 못했다. “불장난을 하면 불에 타 죽을 것”이란 시진핑 국가주석의 경고는 결과적으로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 됐다.
그렇다고 중국이 손해만 본 건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요 외신들은 중국이 세 가지를 얻었다고 평가했다. 대만을 포위하는 전방위 군사 훈련으로 대만해협 긴장을 고조시킴으로써 국제사회에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재확인시켰다. 대만을 군사적 경제적으로 압박할 구실이 생겨 대만 정책을 펼 공간이 넓어졌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두고 표출된 미 행정부와 의회 내 이견은 중국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줬다는 게 그것이다.
펠로시 의장은 대만에 약 19시간 머물다 떠났지만 중국의 보복성 움직임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약 두 달 후 3연임을 확정하며 장기집권에 들어설 시 주석은 대만 문제에서 보다 강경한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11월 치러지는 미 중간선거에서 최근 여론조사 추세대로 연방 하원의 다수당 지위가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넘어가면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리더십이 약화되고 미·중 관계도 한바탕 출렁일 수 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중국군의 대만 포위 훈련 이틀째인 지난 5일 사진 한 장을 공개했다. 인민해방군 동부전구 해군 소속 한 병사가 군함에서 망원경으로 대만 군함을 지켜보는 장면이다. 대만 호위함 란양호와 그 너머 대만의 해안선 및 산맥 윤곽이 식별될 정도로 가깝다. 같은 날 동부전구 공군은 폭격기, 조기경보기, 전기정찰기 등 전투기를 투입해 장거리 실사격 훈련을 벌였다. 중국군의 대만 포위 군사훈련이 실시된 지난 4~7일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은 군용기는 100대가 넘는다. 중국 관영 매체는 이번 훈련의 의미 중 하나로 중국과 대만 사이 실질적 경계선 역할을 해온 대만해협 중간선을 허물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중국군이 중간선을 마음대로 넘나든다는 건 60년 넘게 유지돼온 대만해협의 현상을 바꾸는 행위다.
중국군은 또 훈련 첫날 11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는데 그 중 일부는 대만 상공을 넘어 일본이 설정한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쪽에 떨어졌다. 중국이 대만 상공을 지나도록 미사일을 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이 그간 본토 해역 주변에서 실시하던 군사훈련을 대만 쪽으로 더 가깝게, 대만을 사방에서 포위하는 형태로 실시하고 대만 상공으로 미사일을 날릴 수 있는 표면적 명분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에 반격한다는 것이다.
대만군도 오는 9~11일 남부 핑둥현 인근에서 대규모 포사격 훈련을 한다고 밝혔다. 또 중국 내 전략 표적을 겨눈 슝펑-2 지대함 미사일 부대 사진을 공개하며 군사적 압박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슝펑-2 미사일은 최대 사거리가 1200㎞로 싼샤댐 같은 표적을 공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 구축함이 대만 인근 해역을 항해 중인 중국 구축함에 바짝 붙어 감시하는 영상도 공개했다.
이렇듯 대만해협 긴장이 고조될수록 중국은 훈련 강도를 더욱 높일 것으로 보인다. 중국군은 연일 “도발하면 반격한다”거나 “조국 통일은 대세”라며 강공 태세를 보이고 있다. 동시에 대만해협의 긴장 고조를 불러온 건 미국의 도발이라는 선전전도 펴고 있다.
친강 주미 중국대사는 지난 5일(현지시간) “중국의 반복적이고 강력한 사전 경고에도 미국은 펠로시 의장이 대만을 방문하도록 뒀다”며 “중국의 군사훈련은 필요하고 적법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중국식 전랑외교의 원조 격인 그는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관계자가 자신을 초치해 중국의 군사훈련을 규탄했다고 밝힌 데 대해 단호하게 거부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중국은 미국과의 군사 협력 채널 및 불법 이민자 송환, 마약 퇴치 협력 등 각종 채널을 취소 또는 중단하는 8개항 조치를 발표했다. 대만에 대해서도 군사적 위협은 물론이고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놓고 미국에선 논쟁이 벌어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군의 우려를 내세워 사실상 반대 의견을 냈고 시기상 적절하지 않다거나 개인의 정치적 이력을 위한 행동이라는 언론의 비판적 지적도 제기됐다. 미 백악관은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권리를 강조하면서도 그것이 중국의 주권을 침해한 것은 아니며 하나의 중국 원칙에 위배되는 것도 아니라고 갈등을 수습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베이징 소식통은 “미국 내 이견과 백악관의 대응은 중국의 위협을 어느 정도 의식했다는 의미”라며 “이는 국제사회와 동맹에 미국이 예전만 못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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