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쇼어링으로 성장한 中, 프렌드쇼어링에 위기 맞나 [글로벌포커스]

박병희 2022. 8. 7.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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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코로나 탓에 생산 차질·서방과 갈등 탓 지정학적 불확실성 커져
EU 상공회의소 "中 진출 서방기업 23%, 다른 지역으로 이전 검토"
[사진 제공= AFP연합뉴스]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애플이 올해 말 출시할 것으로 예상되는 ‘에어팟 프로2’는 중국이 아닌 베트남에서 생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애플이 제품 생산의 지나친 중국 의존도를 줄이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은 올해 중국의 고강도 코로나19 방역 조치 때문에 생산 차질을 빚었다. 게다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강하게 견제하면서 정치적 측면에서 중국 사업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애플은 최근 위탁생산 업체들에 중국 외 지역에서 제품 생산을 늘릴 것을 요청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애플 제품의 95.3%가 중국에서 생산됐다.

1990년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물결 속에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했다. 당시 값싼 노동력과 원자재 확보를 목표로 생산 거점을 해외로 이전하는 오프쇼어링(off shoring)이 주도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았고 값싼 노동력뿐 아니라 거대한 시장도 제공하는 중국에 투자가 집중됐다. 중국은 고성장을 거듭하며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신냉전 시대가 도래하고 미국의 중국 견제가 강화되면서 오프쇼어링이 퇴조하고 프렌드쇼어링(friend shoring)이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프렌드쇼어링은 지정학적 위험을 피하기 위해 좀 더 우호적인 국가들로 생산 거점을 옮기는 것을 뜻한다.

◆中 떠나는 글로벌 기업들= 최근 미국 외교 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프렌드쇼어링이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으면서 기업들이 중국을 떠나고 있다고 전했다.

삼성은 2010년대부터 꾸준히 중국 생산설비를 베트남, 인도 등으로 옮겼다. 삼성전자는 2020년 6월 디스플레이 생산설비 상당 부분을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옮기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삼성전자는 2018년 4월과 12월 선전·톈진에 있는 스마트폰 공장을 철수했고, 2019년 10월에는 중국 내 유일한 스마트폰 생산 라인인 광둥성 후이저우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미국 완구업체 하스브로는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을 벌이던 2019년 중국 판매 비중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당시 브라이언 골드너 하스브로 최고경영자(CEO)는 2018년 기준 67%인 중국 생산 비중을 2020년 말까지 50%로, 2023년까지 33% 이하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아디다스도 생산 거점을 베트남으로 옮겼다.

볼보는 중국 자동차업체 지리자동차가 대주주지만 지난달 슬로바키아에 생산 공장을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볼보가 유럽에 생산 공장을 설립하는 것은 60년 만에 처음이다.

유럽연합(EU) 상공회의소 중국 지사의 지난 6월 설문조사에서 서방 기업 중 23%는 중국 외 다른 지역으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기업 중 50%는 중국에서의 사업이 과거보다 더 정치화됐다고 답했다.

이는 2~3년 전과는 분위기가 확 바뀐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전이었던 2019년 EU 상공회의소는 유럽 기업들이 중국이 더 성숙하고 역동적인 시장으로 발전하는 데 확고하게 기여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영국산업연맹(CBI)의 토니 댄커 사무총장은 지난달 한 인터뷰에서 "모든 기업들이 중국 위주의 공급망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말한다"며 "정치적으로 중국과 세계의 탈동조화가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보험 중개업체 윌리스타워스왓슨의 올해 초 설문 조사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사업 위험을 우려하고 있다고 답한 서구 기업의 비율은 95%에 달했다. 2년 전 조사에서는 걱정스럽다고 답한 비율이 62%였다.

윌리스타워스왓슨은 "압도적인 다수가 중국과 서방 사이의 지정학적 경쟁과 경제적 탈동조화 흐름이 강해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민간 기업들이 외교 분쟁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결론내렸다.

◆불매 운동 타깃, 中 리스크도 커져= 서방과 중국 간 갈등이 커지면서 서방 기업들이 불매 운동으로 중국에서 피해를 입는 사례도 늘고 있다. 스웨덴국립중국센터가 지난달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이후 중국에서 월평균 1회 이상 외국 제품 불매운동이 발생했으며 이 중 3분의 1 이상은 중국 정부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신장·위구르, 티베트, 홍콩 등의 인권 문제 등을 제기할 때마다 중국 정부는 이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으며 이러한 충돌이 계기가 돼 불매 운동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스웨덴국립중국센터 집계에 따르면 2016~2021년 6년 동안 중국에서는 최소 78건의 외국 기업 제품 불매운동이 발생했으며 이는 2016년 이전 8년간 발생한 불매운동 건수보다 6배나 많았다. 중국 정부가 공식적인 발표나 법적 근거 없이 외국 기업들에 규제를 가하는 사례도 늘고 있어 외국 기업들의 불만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 제공= AP연합뉴스]

◆"쿼드가 프렌드 쇼어링 중추될 것"= 바이든 대통령은 ‘더 나은 재건’을 경제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이 오프쇼어링으로 급성장한 1993~2011년 사이 미국 제조업 일자리는 1600만개에서 1000만개로 줄었다. 다른 서구 국가들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도 있었지만 셀 수 없이 많은 일자리가 저임금 국가로 옮겨갔다.

1982년 미국 다국적 기업의 해외 노동력 비중은 30%였지만 2014년에는 그 비율이 두 배로 늘어 60%로 확대됐다. 오프쇼어링에 의한 서방 국가의 일자리 감소는 사회적 문제로 비화하기도 했다.

포린폴리시는 오프쇼어링은 생산비용 감소 효과로 이득을 본 계층과 일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 사이의 계층 간 분열을 촉발한 근본 원인일 수 있으며 이러한 분열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포린폴리시는 향후 쿼드(Quad, 미국·인도·일본·호주의 안보 협의체)가 프렌드쇼어링의 중추적인 기능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했다. 아울러 지난달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과 지나 러몬도 상무부 장관 주최로 열린 공급망 회의에서 미국이 유럽은 물론 호주,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 싱가포르, 한국 등 다양한 국가의 관계자들을 초청한 점을 강조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공장을 특정 국가가 대체하기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우방국과 연대해야 하며 이 때문에 프렌드쇼어링이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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