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행복하게 10대 마지막을 보내는 아이들도 있다

안사을 2022. 8. 7.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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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그밥' 산악회 결성에서부터 첫 번째 산행까지의 이야기

'대안'이라는 표현 하에 경쟁과 입시몰입교육을 지양하고, 자치와 상생을 위한 교육을 하며, 학생들이 현재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한 삶의 터전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곳에서 여러 존재들과 좌충우돌하며 교육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전하고자 합니다. <기자말>

[안사을 기자]

우리 학교는 대안학교이다. 공립 고등학교로서는 전국에서 5개 중 하나이고 일반계 학교에서 대안학교로 전환한 사례로서는 유일하다. 선례가 없었기에 말 그대로 좌충우돌하며 4년째를 열심히 달리고 있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상처를 입거나 지치거나, 하지만 다시 힘을 내서 하루하루를 새롭게 살아가며 눈물겨운 동료애를 쌓고 있다.

연재기사의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 가장 큰 원인은 코로나였다. 활동 중심의 수업을 하고, 방역지침을 지키면서 어떻게든 아이들과 함께 외부 활동을 해왔다. 코로나19로 인해 이 아이들이 교육 활동의 사각지대에 갇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4인씩 조를 짜서 소규모로 교육여행을 기획하고, 학부모들과 노심초사 상황을 공유하며 안전과 행복을 동시에 만족하려 애썼다.
 
▲ 노을을 보여주고 싶어서 떠난 여행 (필름/Portra160)보기만 해도 눈물이 날 것같은 가슴 저미는 노을을 보여주겠다고 호언장담하고 다녀왔던 곳
ⓒ 안사을
 
그 결과 오히려 코로나의 덕을 본 것은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심도 있고 내실 있는 외부 활동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졌다. 교사와 학생이 1대 1의 비율로 구성되어 진하고 깊은 상담을 하며 여행을 하는 '1대 1 상담여행'이 만들어졌다. 또한 단체로 식당을 방문하지 않을 수 있도록 소규모로 모둠을 짜서 활동을 하다 보니 학생들에게 자연스럽게 적응력과 자치능력 등 실질적인 사회생활 경험치가 쌓이기도 했다.
그 과정은 너무도 생생한 감동의 순간들이었다. 아이들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 한 마디의 말들이 어쩌면 그렇게 아름답고 기특하던지, 이곳 지면을 빌려 전국적으로 소문을 내고 싶었다. 하지만 꽤 긴 시간 동안 그 마음을 우리 학교 내에서만 꽁꽁 숨겨둘 수밖에 없었다. 기사를 몇 번이고 썼다가 지웠다. 나의 의도가 아무리 거룩하고 아름답다 해도 이러한 내용의 기사가 과연 공익적이고 덕이 될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 43 유적지 방문 세계유산본부에 어렵게 허락을 득하고 43사건 당시 피난처로 사용되었던 큰넓궤를 탐방하였다.
ⓒ 안사을
 
긴 생각을 끝내고 연재를 시작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청소년들과 그들의 보호자들, 또한 그들을 가르치고 있는 많은 동료 교사들에게 '이러한 모습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이렇게 행복하게 10대의 마지막을 보내는 아이들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앞으로의 기사들을 통해 우리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교육 활동들을 조명해볼 것이다. 통합기행이라는 수업, 그 수업을 중심으로 뮤지컬과 한국사 등 많은 과목들이 어떻게 융합하여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지를 차근차근 써 나갈 것이다.

또한 작은 여행들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아이들이 무엇 때문에 웃고 성장하는지, 각자 다른 모습을 가진 아이들이 어떻게 적응하면서 서로를 참아내고 안아주는지, '교육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질 수밖에 없는 야생의 교육현장 속에서 교사와 학생이 얼마나 처절하게 서로의 존재를 알아가는지에 대해 담담하게 적어보려 한다.
 
▲ 안개 속을 헤치며 악천후를 뚫고 남벽 분기점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대견한 뒷모습을 멀리서 담았다.
ⓒ 안사을
 
산악회를 결성하다

'여행은 가장 훌륭한 교육 수단'이라는 믿음 하에 최선을 다해 학생들과 함께 나가서 놀고 있다. 당연히 보호자의 동의 및 관리자의 승인을 정식으로 받고 학교 예산을 사용하여 안전하게 다녀온다. 그중에서도 적절히 즐거우면서 난이도가 있고, 그래서 교육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좋은 콘텐츠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등산이다.

산에 가자고 하면 뛸 듯이 기뻐하며 따라나서는 학생이 몇이나 되겠는가. 제발 같이 가자며, 이번에는 정말 보람차고 재미있는 산행이 될 거라며 매번 졸라야 한다. 그러다가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선 아이들은 단 한 번의 산행으로도 꽤나 눈에 띄는 성장을 보이곤 한다.

지난해 11월께부터 많은 외부 활동이 있었다. 통일교육의 일환으로 고성을 방문했고, 자치활동을 겸해서 강원도에 다녀왔으며, 평화교육과 함께 4.3사건을 공부하며 제주도에 다녀오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활동에 의욕적으로 참여하는 학생들이 항상 반복되어 겹친다는 것이었다.

"뭐야. 이번에도 이 조합이네? 그 나물에 그 밥들이구만?"
"그러게요. 진짜 그러네요? 하하하하."

어차피 겹치게 될 것, 차라리 모임을 구성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자율동아리 제도를 활용하여 산악회를 결성하기로 마음먹었고 그 당시 가장 열성을 보였던 한 학생에게 접근했다.

"우리 이왕 이렇게 된 거 산악회를 만들어보자."
"산악회요? 우와. 좋아요!"

반신반의하며 던진 말이었는데 너무도 흔쾌히 받아들여서 조금 놀랐다. 이 학생은 평소 등산을 다닌 적도 없고 첫 번째 강원도 여행을 기숙사 여자 대표라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다녀왔던 녀석이다. 등산로도 딱히 없는 꽤나 힘든 곳을 다녀왔는데, 오히려 꾸며지지 않는 자연 속에서 모험심이 발휘되었는지 갑자기 험한 등산에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 얼음나라 광대곡 시쳇말로 풀템을 장착하고 얼어붙은 계곡을 거슬러 올라갔다.
ⓒ 안사을
  
▲ 광대곡 아이들은 얼음 위로 찍히는 아이젠의 느낌이 좋다고 했다.
ⓒ 안사을
 
신학기가 시작되자마자 해당 학생을 회장으로, 나를 지도교사로 하여 자율동아리원을 모집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머뭇거렸다. 아무래도 산악회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이 주는 중압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의 주특기인 감언이설로 아이들을 꼬드겼다.

"생각을 해봐. 우리가 사실 그냥 놀러 다닐 거거든. 그런데 놀러만 간다고 동아리를 짜면 눈치가 보일 거 아냐? 그래서 산악회라고 일단 이름을 붙여놓고, 우리는 신나게 맛있는 것도 먹고 놀러 다니면 되는거야. 대신 산은 딱 두 시간 정도만 구색을 갖춰서 다녀오는거지. 어때?"
"음... 진짜죠? 등산만 하러 가는 것 아니죠?"
"당연하지. 나도 힘들기만 한 여정을 너희들 데리고 다니려면 얼마나 기운 빠지겠니? 우리 함께 즐겁게 다니자는 거야!"

130명 남짓 되는 전교생 중 현재 14명의 아이들이 우리 산악회에 가입되어 있다. 이름은 '그나그밥'이다. 애초에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어구를 떠올렸던 느낌을 그대로 줄여 본 것이다. 아이들에게 그 속 뜻은, 그 나물에 그 밥처럼 우리가 계속해서 꾸준히 만나자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이 산악회는 아이들이 졸업을 해도 계속해서 회원자격을 유지하도록 하는 내규가 있다. 대안학교로 전환한 지 4년, 앞으로 배출할 졸업생들 중 일부라도 그 명맥을 이어가고 꾸준히 후배들 및 지역사회와 교류할 수 있도록 하려는 거창한 뜻을 가지고서 만든 규칙이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3년에 한 번씩은 제주도에서 정모를 하고, 10년이 흐른 뒤에는 꼭 백두산을 오르자고 하기도 했다.

첫 번째 산행, 운장산

산악회 결성 후 첫 등산은 진안 운장산으로 정했다. 4월의 마지막 날, 녹음이 짙어지고 산 위에는 아직 봄의 기운이 남아있을 때였다. 공원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진안고원의 가장 높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산의 면적이 꽤 넓어 숨은 매력이 있는 산이다. 하지만 산세가 제법 험하여 섣불리 갔다가는 체력이 고갈되거나 부상을 당할 수도 있다.

처음부터 험한 산을 선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한번 힘든 산행을 하고서 어떻게든 보람과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면 앞으로의 여정을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로 시간을 내서 안전교육을 철저히 시키고 장비 점검 또한 마쳤다. 
 
▲ 운장산 (필름/Ilford.XP2)"쌤. 이거 암벽등반이에요?"라고 누군가가 호들갑을 떨었다.
ⓒ 안사을
 
재미있는 광경이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20분이 채 되지 않을 때였는데, 산의 경사 때문에 언덕이 딱 하나만 남아있는 듯 보이는 곳에서 한 학생이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외쳤다.

"저희 이제 다 왔나요?"

너무나도 천연덕스럽고 확신에 찬 목소리였기에 우리는 모두 웃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초입부의 경사가 상당히 심했고 그 아이의 심적 시계는 이미 한 시간을 훌쩍 넘겼기 때문이었을까. 장난이 전혀 섞이지 않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그 말 한마디가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무슨 소리야. 그게. 우리 지금 5분의 1도 못 왔어."
"뭐라고요? 앞으로 이만큼을 다섯 번을 넘게 가야 한다고요?"

옆에 있던 다른 학생은 그 모습을 보고 신나게 웃다가, 남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지기도 했다. 재미있었던 두 번째 사건은 바로 그 학생으로 인해 일어났다.

정상에 이르기 30분 전쯤이었을까. 다들 지쳐가는 가운데 다른 등산객을 만났다. 밑에서부터 빠르게 올라오셨는지 얼굴에서 땀이 뚝뚝 떨어지는 중이었다. 산에서 다른 이를 만나면 인사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니 나와 내 옆에 있던 학생이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그분의 안색이 창백해지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어? 어..? 방금 봤는데. 아까 방금 봤는데..?"

마치 귀신에 홀린 표정이었다. 나는 상황을 금세 알아차리고 안심을 시켜드리며 말했다. 

"아, 쌍둥이입니다. 쌍둥이. 놀라지 마십시오."

웃을 힘도 없어 보이던 쌍둥이 당사자 학생이 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그분은 정말 놀라셨는지 한동안 맥이 풀린 표정을 감추지 못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똑같이 생긴 두 여인이 똑같은 표정으로 똑같은 말을 했을 테니(이 자매는 목소리와 말투도 똑같다) 얼마나 놀라셨을까.

나는 정상으로 올라가면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마치 대단한 무용담을 하듯이 방금 목격한 이 장면을 떠들어댔다. 금세라도 주저앉을 것같던 아이들은 한바탕 웃어젖히더니 또다시 힘든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운장산의 제일 포토존 (필름/Ilford.XP2)최고봉은 아니지만 서봉(칠성대) 옆의 이 암봉은 사람들이 가장 사진을 즐겨 찍는 곳.
ⓒ 안사을
  
▲ 운장산 서봉 (필름/Ilford.XP2)정상보다 조망이 더 좋은 서봉에서 단체사진.
ⓒ 안사을
 
"쌤. 역시 산은 올라갈 때는 진짜 짜증 나는데 딱 정상에 올라오면 좋긴 좋은 것 같아요."
"그렇지? 바로 그 맛에 산에 오는 사람들이 많지. 그런데 나는 너희들이 정상에 오른 그 느낌말고, 오르막을 지긋지긋하게 올라가는 그 순간을 오히려 즐기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 그러면 등산을 정말 좋아하게 될 거고, 인생에서 힘든 순간이 오면 그 자체를 즐기게 될 거야."
 
▲ 안개 낀 운장산 (필름/ProImage100)
ⓒ 안사을
 
첫 번째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내려오자마자 나는 아이들에게 두 번째 산행의 계획을 말했다. 아이들은 괴성을 지르며 손사래를 쳤다. 나는 확신과 장난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그때 되면, 또 가게 될 걸?"

* 그나그밥 산악회의 덕유산 산행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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