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도 미달인데..이공계 대학원 늘린다는 정부, 학생은 외면

장윤서 2022. 8. 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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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포토마스크를 보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반도체 등 첨단분야 인재 양성을 지시한 가운데, 정부가 이공계 대학원 정원을 늘리는 정책을 내놨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대학원 진학이 외면받고 있는데다가 학생 수도 줄고 있어 양적 확대가 능사가 아니라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서 첨단 분야 대학원 석·박사 정원을 확대하기 위한 대학설립‧운영규정 개정안을 의결했다. 국정과제인 반도체 등 첨단산업 인재 양성 방안으로 첨단 분야에 대해서는 교원 확보율만 충족하면 정원을 늘릴 수 있도록 완화한 것이다. 기존에는 대학이 석‧박사 정원을 증원하려면 교사, 교지, 교원, 수익용 기본재산 등의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했다.


“서울대 공대도 미달…의미 없는 정책 될 수도”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현장과 괴리된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한국과총)는 지난달 29일 ‘이공계 대학원 다운사이징’ 주제로 포럼을 열고 학부뿐 아니라 대학원도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기범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21년 기준 대학원 충원율은 88%에 불과하다”며 “최근 정부가 반도체 학과를 늘린다고 하는데 나머지 분야는 어떻게 되겠나. 정원을 늘려도 채우지 못하면 의미 없는 정책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공계 학부생 규모 전망. 시나리오1은 최근 3년간 이공계 비중이 유지되는 경우, 시나리오 2는 최근 3년간 이공계 증가 추세가 당분간 지속되는 경우다. 자료 과학기술정책연구원


현실은 서울대조차 대학원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대 공과대학은 이미 2017년 첫 미달 사태를 겪은 후 2020년까지도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은 지난해부터 전체 대학 입학정원이 학생 수를 넘어서기 시작해 2024년에는 입학정원보다 학생 수가 10만명 부족해진다는 추계를 내놨다.

그나마 학생들이 수도권 일부 대학으로 몰리면서 지방대의 위기는 더욱 심각하다. 우수한 학생들이 취업이나 해외 유학으로 빠져나가 상위권 대학의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연쇄작용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최희규 창원대 미래융합대학장은 “지역 대학원은 수도권 집중, 학벌 업그레이드 현상으로 이미 고사상태”라고 말했다.


“대학원 분야 협소…비전 없어 취업 선택”


지난달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중견기업 일자리박람회가 진행되고 있다. 박람회 참가자들이 기업정보 게시판 앞에서 QR 코드를 이용해 채용공고 확인과 상담예약을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최근 이공계 학생들 사이에서 대기업 취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려져 대학원 경쟁력은 더욱 떨어지고 있다. 학생들은 대학원 진학을 기피하는 이유로 교수 개인 과제 중심의 연구 시스템, 대학원생에 대한 낮은 대우와 부정적인 인식 등을 들었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삼성전자 신입사원 김모(25)씨는 대학원 진학도 고려했지만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고 했다. 김씨는 “학교에 ‘반도체 전문’ 연구실은 하나뿐이었는데 원하던 연구주제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생명공학을 전공한 박모(26)씨는 석박사통합과정 중 대학원을 그만두고 한 기업에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박씨는 “지도 교수님이 개인 사업을 위한 연구만 시켜서 더 다닐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학부생이 대학원을 경험할 수 있는 학부연구생 제도가 있지만, 대기업 취업을 위한 ‘스펙’으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계공학 전공자 이모(25)씨는 “관심 있는 랩실에서 인턴을 했지만 졸업을 앞둔 박사 선배들이 갈 곳이 없다고 불평하는 모습을 자주 봤다”며 “높은 학비를 부담할 만큼의 비전이 없다고 생각해 취업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반면 기업들은 우수한 학부생을 선점하기 위해 산학장학생 제도, 학부생 인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카이스트, 포스텍 등 대학들과 계약학과를 운영하고 있다.

그래픽=전유진 yuki@joongang.co.kr

“인재 양적으로 찍어낼 일 아니다”


전문가들은 기술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대학원의 위기는 국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본부장은 “기업들의 해외투자가 늘어나면서 국내의 우수 인력이 해외로 유출되는 부작용도 있다”고 말했다.

이정민 벤처기업협회 사무국장은 정부 정책에 대해 “인재를 양적으로 10만명 찍어낼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대신 독일 자동차기업 다임러와 슈투트가르트 대학의 사례처럼 지역대학과 기업 간 산합 협력을 강화하는 등의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권준화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독일의 공대는 기업의 문제 해결 중심의 프로젝트를 수행해 산업계는 우수 인력을 조기에 확보하고 학생은 일찍 사회에 지출하는 윈-윈구조다”라고 말했다.

백정하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고등교육연구소장은 “대학원의 역할에 대해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며 “지역에서 공유대학원을 운영하는 방법도 있다”고 제안했다. 김유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미래인재정책과장은 “과거 대학이 기술 연구를 주도했지만 지금은 산업계가 주도하는 분야가 나오고 있다”며 “석박사 중심의 대학 연구 생태계를 포닥(박사후연구원) 중심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이번 개정안이 대학 내 학문 분야 간 정원 조정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석박사급 정원 확대와 더불어 반도체 특성화 대학원을 운영하는 등 대학 재정지원을 확충하겠다”며 “반도체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하는 등 내실 있는 교육과정 운영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윤서 기자 chang.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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