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엉뚱하게 해석했지만 그런대로 재미있네 [시를 읽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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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제목이 왜 '정치'일까라고 오래 생각했습니다.
이 시의 제목 '정치'는 중의적입니다.
다른 방식으로 읽어버려 완전히 다른 시가, 서정시에서 정치적인 시가 되어 버렸지만, 이렇게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습니까.
정치가 사람들을 아프고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情致 : 좋은 감정을 자아내는 흥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 시를 읽으며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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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헌 기자]
정치
- 최은묵
쪽길에 버려진
거울 하나
동네가 두 배로 가난해졌다
- <내일은 덜컥 일요일>, 34쪽(시인의일요일, 2022년)
이 시의 제목이 왜 '정치'일까라고 오래 생각했습니다. 내가 잘 아는 단어 '정치'는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의미합니다. 그것과 거울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2연에서 그 궁금증이 풀립니다. 정치가 그 역할을 제대로 못 하는 오늘 '동네가 두 배로 가난해졌다'는 문장은 어떤 꾸밈도 없이 제 가슴에 다가옵니다.
이 시의 제목 '정치'는 중의적입니다. 시어에서 중의적이라는 말은 하나의 단어가 여러 의미를 가진다는 뜻입니다. 시에서는 시적인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일부러 중의적인 단어나 문장을 사용합니다.
▲ 최은묵 시인의 시집 |
ⓒ 시인의일요일 |
이 시에서 정치를 저는 '정치(政治)'로 읽었지만, 시인의 의도는 그것보다 '정치(定置)'에 가까울 것입니다. 후자가 말하는 정치는 '일정한 곳에 놓아둠'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쪽길에 버려진 거울 하나'라는 문장에서 일정한 곳에 놓인 거울이라는 '정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저는 후자가 아니라 전자인 '정치(政治)'로 읽었던 것일까요.
시는 읽는 사람의 마음을 담습니다. '시가 쓰이는 순간'의 시는 시인의 것이겠지만, 시가 쓰여 발표되면, 그것은 시인의 것이 아니라 오로지 독자의 것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 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전적으로 독자의 몫입니다. 시인의 관여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죠.
시를 읽고 나눌 때 '너는 저 시를 잘못 읽었어'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은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시를 읽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주체가 다르기 때문에, 읽은 시를 재해석하는 표현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저처럼 '정치(定置)'를 '정치(政治)'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읽어버려 완전히 다른 시가, 서정시에서 정치적인 시가 되어 버렸지만, 이렇게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습니까.
시의 문장으로 되돌아가 보겠습니다. 쪽길에 버려진 거울과 동네가 두 배로 가난해진 것과 어떤 의미의 연관성이 있을까요. 생각해보면, 아주 간단합니다. 가난한 마을을 버려진 거울이 비추고 있기 때문에 두 배로 가난해 보이는 것입니다. '정치(政治)'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인플레이션과 코로나로 이중고를 겪고 있는 오늘 정치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라는 거울이 밝은 부분을 비춰도 모자라는데, 세상의 힘들고 괴로운 부분들을 비추고 있습니다. 정치가 제대로 역할을 했어도 여전히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 그 역할을 못 하고 있으니 미래까지 암담하게 느껴집니다.
어떤 정치이든 사람들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정치가 사람들을 아프고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情致 : 좋은 감정을 자아내는 흥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 시를 읽으며 생각해봅니다.
시 쓰는 주영헌 드림
최은묵 시인은...
대전에서 태어났습니다. 2007년 《월간문학》, 201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시집으로 『괜찮아』, 『키워드』 등이 있으며, 수주문학상, 천강문학상, 제주4·3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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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오늘을 '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불리는 까닭, 시를 읽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나마 익숙함을 만들어 드리기 위하여 일주일에 한 편씩 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편집자말] 시와 산문은 오마이뉴스 연재 후, 네이버 블로그 <시를 읽는 아침>(blog.naver.com/yhjoo1)에 공개됩니다. 알라딘 시집 구매 링크 :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843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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