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보다 2쇄 찍는 책 더 늘어났으면"

서믿음 2022. 8. 5.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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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근 위즈덤하우스 본부장 인터뷰
편집자→온라인서점MD→출판사 관리자
출판 마케팅 어려워.. 독자와의 직접 만남 커뮤니티 구축 추세
영상화 인기 높아져..영상화 전문 출판사도 등장
출판사 통하지 않는 출판도 늘어..출판사 역할 고민해야
저자 발굴은 출판사 사명..베스트셀러보다 2쇄 찍는 책 늘리는 게 중요

[아시아경제 서믿음 기자] 어릴 적부터 자주 서점에 스며든 인물이 있다. 문학 작품의 ‘감동’보다는 책의 ‘효용’에 끌려 독서에 매료됐다. 그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시절, 책으로 나온 ‘반갑다 논리야’ 시리즈를 독파한 뒤로 동네 아이들과의 말싸움에서 두각(?)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러다 중학교 때 진짜 책을 좋아하는 문학 친구들을 만나면서 깨달음을 얻었다. 익숙했던 혀의 자극이 책의 참맛이 아니었음을….

박태근(40·사진) 위즈덤하우스 본부장은 그렇게 애서가가 됐다. 애서가들이 흔히 그렇듯 그는 "다독가는 아니었다"고 하지만 책을 야무지게 파고든 건 분명하다. 청소년기에는 ‘나의문화유산답사기’를 읽고 친구들과 부석사 무량수전을 찾았다. 대학 때는 학교 앞 풀무질, 논장 서점을 바삐 오가며 책매경에 빠졌다. 일정 기간 책을 자유롭게 읽게 한 다음 특정 구절이 적힌 책을 찾아오면 상품을 주는 서점 이벤트의 낭만을 즐겼다.

고민을 많이 하는 성격은 아니다. 대학 졸업 후 진로 결정을 앞둔 상황. 잘 아는 책을 팔기로 했다. 책 ‘서양과 동양이 127일간 E-MAIL을 주고받다’(휴머니스트)를 감명 깊게 읽고 2006년 휴머니스트에 편집자로 취직했다. 2010년 온라인 서점 붐이 일었을 때는 도서 교류의 장에 흥미를 느껴 알라딘 상품기획자(MD)로 이직해 10년을 일했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종합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본부장으로 적을 옮겼다. 책을 지었다가, 팔았다가, 관리하고 있는 박 본부장. 책과 출판계에 관해 이보다 더 잘 아는 이가 있을까. 현재 지상파 3사 라디오 방송에서 책 코너를 맡고 있기도 했다. "감히 출판계를 대변할 수 없다"며 난색을 표했지만, 경험한 것만 솔직하게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성사된 인터뷰를 지난달 22일 위즈덤하우스 본사에서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지난해 위즈덤하우스로 적을 옮겼다.

▲한국소설, 인문교양, 경제·경영 분야를 맡고 있다. 에세이 등이 강점인 위즈덤하우스로서는 새로운 시도였고, 재밌게 느껴져 이직 제안을 받아들였다. 위즈덤하우스는 오너가 있는 대다수 출판사와 다르게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된다. 편집본부장에게도 많은 권한이 주어진다. 기획부터 마케팅 전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팀원은 20여명으로 중형 규모 출판사를 운영한다고 보면 된다.

-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5~6월 출판계에 한파가 불어 닥쳤다는 얘기가 있다.

▲많은 출판사가 2분기 매출이 좋지 않다고 한다. 거리두기 해제와 연계가 된 것 같긴 하다. 코로나 상황에서 어린이 도서 분야가 성장했다가 떨어진 것도 있고, 납품 시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도 있다. 다만 잘 되는 곳은 또 잘 된다. 예측 가능한 일이었기에 그것만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

- 사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말이 매년 나오고 있다. 동영상 시대로 접어들면서 책이 위기에 처했다는 말이 나온다.

▲업계 사람들이 위안 삼는 말로는 유의미하지만 딱 그 정도라고 본다. 출간 종수는 오히려 늘고 있다. 더 많은 시도가 이뤄지는 거다. 망해가는 시장에 그런 상황이 벌어지겠나.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란 워딩은 상황을 풀어가는 데 도움이 안 된다. 보다 구체적인 당면과제를 얘기하는 게 현실적이다. 우선 책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요즘은 책을 영상으로도 보고 웹소설, 웹툰으로도 소비한다. 근데 그게 위기인가. 최근에는 영상을 제작하는 업체와 출판사가 협업하기도 한다. 실례로 ‘삼프로 TV'와 협업해서 포레스트북스, 페이지2북스가 책을 내고 단기간에 중형출판사 매출을 냈다. 위기라고 말하는 건 온당치 못하다.

- 출판 마케터들의 한탄이 여기저기 들려온다. 해 볼 수 있는 건 다 해봤다는 푸념이 나오기도 한다. 편집자, 온라인서점MD, 출판사 관리직을 모두 거친 경험자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마케터 분들의 어려움에 공감이 간다. 기존에 소통하고 협업하던 채널이 서점인데 10여 년 전보다 서점의 영향력이 많이 변했다. 언론사 북섹션도 마찬가지다. 온라인 서점의 잘 보이는 곳에 책 광고가 걸리는 게 중요했는데 이제는 인플루언서 채널이 더 중요해졌다. 실제로 출판사가 그곳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 홍보 채널이 다변화되어 SNS와 (아동 도서의 경우) 맘카페 등도 관리해야 한다. 다만 다변화된 채널은 안정성이 떨어져 새로운 시도를 계속 해야 한다. 좋은 채널이 다음번에도 먹힌다는 보장이 없고, 그때까지 존재한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니 힘들 수밖에... 참고로 저희 팀 올해 캐치프레이즈가 ’최대 다수의 시도‘다. 다양한 시도를 해보려 한다.

- 출판사가 독자와 직접 소통하는 추세가 엿보이는 듯하다.

▲ 규모가 큰 출판사가 자체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다. 민음사가 유튜브 ‘민음사TV’, 문학동네 가 완독 챌린지 플랫폼 ‘독파’, 창비가 독서 체험 플랫폼 ‘스위치’를 운영하고 있다. 인력과 자본을 투자해 독자와 직접 만날 공간을 확보하는 거다. 독자풀이 많을수록 훨씬 안정적으로 주도할 수 있다. 위즈덤하우스도 ‘스토리독자팀’이 있다. 책 출간 전에 지역서점 열 곳에서 독자 열명씩을 모아 가제본을 전달하고 그들의 의견을 정식 출간본에 반영한다. 요즘 1쇄를 2000부 정도 찍는데. 100명이면 적은 수가 아니다. 참여하는 분은 ‘해비리더(열혈독자)’고 그들의 피드백은 큰 도움이 된다. 작은 출판사 경우 자기만의 색깔을 넣은 ‘뉴스레터’를 발행해 독자풀을 넓히고 있다. 마티, 오월의봄, 유유 등이 그렇다.

- 요즘 작은 출판사의 마케팅 협업도 빈번한 것 같다.

▲협업 모델은 오래가기가 쉽지 않다. 출판 행위는 자기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욕망에서 출발한다. 아이덴티티(정체성)가 중요하기에 일시적으로 힘을 합칠 수는 있어도 오래가기는 힘들 다. 몇몇 성공사례는 독특한 경우다. 시장의 성공이 뒷받침 됐기에 가능했지만, 대개 일시적이다.

- 영상 업체와의 협업도 눈에 띈다.

▲최근 동아시아 출판사의 (임프린트 브랜드) 허블이 CJ ENM과 협업했다. 안전가옥이나 고즈넉이엔티 같이 영상제작사가 출판사를 만들기도 한다. 작가들의 영상화 욕망과 기대가 크다. 영상화는 수익뿐 아니라 텍스트가 여러 방식으로 표현되고 전달될 수 있는 기회 요소이기도 하니 당연한 관심이라 생각한다.

- 출판사를 통하지 않는 출판도 늘고 있다. 출판사의 역할과 정체성의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그간 출판사가 잘 해왔던 부분이 텍스트를 깊이 이해하고 독자에게 매력적으로 전달하는 물성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독자의 기대와 출판사의 공급이 맞닿아 있지 않는 느낌을 받는다. 교정교열이 잘 됐든지. 본문 레이아웃이 잘 됐든, (학술서의 경우) 각주가 탄탄하든지, 사실 이런 건 업계 내에서도 저평가 돼왔다. 판매가 되는 책 출간에만 열중했고, 그럴수록 독자들의 기대수준은 낮아졌다. 출판사의 경쟁력도 상실됐다. 독자에게 어떤 ‘안목’을 만들어 주지 못한다면 작가도 굳이 출판사에서 책을 낼 필요를 못 느끼고, 독자도 굳이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살 필요를 못 느끼게 된다.

- 그럼에도 도서전과 같은 행사에 사람이 몰린다. 책이 지닌 기본적 매력을 무시하기도 어려운 듯한 모습이다. 책이, 편집자가, 출판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베스트셀러 제작도 중요하지만, 절대 다수보다 해당 책을 확실하게 만나야 할 2000~3000명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예상독자도 막연히 2030여성이 아니라 훨씬 니치(세세)해야 한다. 책의 평균값을 높여, 2쇄를 못 찍는 책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 하한선을 높이는 거다. 예전보다 상한선 수준이 많이 낮아졌다. 과거 기대치가 30만부였다면 이제는 10만부다. 작가에 대한 세대별 관심의 편차, 작품에서 다루는 주제에 대한 관심도와 수용도 등에 따라서 수요가 세분화된 상황이고, 이런 경향은 더 강해지지 않을까 예상한다.

- 보통 출판사가 잘 팔릴 것 같은 책에 마케팅 역량을 집중하지 않나.

▲위즈덤하우스의 경우 전략 도서와 비전략 도서로 나누기보다는 해당 도서에 맞는 적합한 시도를 찾는 방향으로 고민하고 있다. 각 책마다 나름의 목적이 있다. 그걸 독자에게 전하는데 충실하고자 한다. 관심과 판매가 몰리는 사례는 필요하고 도움도 되지만 모든 책은 나름의 역할이 있다. 실용서, 학술서도 마찬가지다. 설민석 작가나 채사장 같은 분이 지식을 교양의 언어로 풀어낼 때도 1차 문헌이 있어야 하지 않나. 그게 너무 과소평가 받고 있다. 출판 업계 내에서라도 ‘존중’ 내지 ‘존재감의 인지’가 필요하다고 본다. 정부 지원이 아니더라도 각 출판사가 일정부분을 지원하는 등의 자구책이 필요해 보인다.

- 작가 발굴도 중요한 것 같은데.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

▲저자 발굴은 출판사의 사명이자 숙명이다. 출판사의 주도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존의 시장에서 발굴되지 않은 저자들이 많다. 그런 저자들의 이야기를 알리려면 누군가가 판단을 해야 한다. 그걸 출판사가 하는 거다.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 역할을 주도적으로 설정하고 도전하는 자세가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과거 출판사가 많고 저자가 적었다면, 이제는 반대다. 유명 저자 ‘경쟁’보다 신인 저자 ‘발굴’에 힘쓰고 있다.

- 저자를 발굴할 때 중요하게 보는 덕목은.

▲여러 덕목이 있겠지만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을 가장 중시한다. 지금 시대에 가장 매력을 느끼는 건 이야기다. 에세이가 흥하는 것도 그런 이유 아니겠나. 베스트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곰출판)도 과학서라기보다 이야기책이다. 지식영역에서의 스토리텔링은 저자의 필수 덕목이다. 많이, 깊이 아는 것만큼이나 얼마나 재밌고 매력적으로 풀어내느냐가 중요하다. 독자가 책을 추천할 때 하는 이야기도 대개 ‘이 책 정말 재밌다’이다.

- 사회보다 개인, 교훈보다 공감이 주목받는 것 같다. 출판계는 이런 변화를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크게 보면 경향성이 있는 건 맞다. 여러 시도가 있다. 오히려 이걸 긍정적으로 봤으면 좋겠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우리끼리 잘 하고 있다고 격려해도 좋을 것 같다. 민음사는 ‘한편’ 시리즈를 내고, 오월의봄은 규모와 무관하게 한국 사회의 쟁점이나 쟁점으로 다뤄야할 부분을 책으로 내고 있다. 놀라운 도전이라고 본다. 1인 출판사 봄날의책도 이제는 표지만 봐도 ‘아 그 출판사 책’이라는 인장을 만들어낸 것이 대단하다고 본다. 또 요즘 주식책이 많이 나온다고 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다. 시장 기대에 기민하게 움직여 부응하는 거다. 많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한다면.

▲책을 더 사달라는 말씀은 못 드리겠다. 다만 읽은 책에 관해 좋은 평이든 나쁜 평이든 감상을 적극적으로 나눠주시면 좋겠다. 서점의 리뷰 채널일수도 있고, 주변 사람과의 대화일수도 있다. 아주 개인적인 경험과 활동을 나눠주시는 게 출판사에 아주 큰 힘이 된다.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본부장 소개

자타공인 국내 대표 책이야기 꾼이다. 2006년 휴머니스트에 편집자로 입사하면서 출판계에 입문했고, 2010년부터는 서점 알라딘 MD(상품기획자)로 일했다. 지난해엔 종합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본부장으로 적을 옮겼다. KBS FM대행진 '북스타그램‘, MBC 표준FM ’김겨울 북클럽입니다‘, SBS 러브FM ’김선재의 책하고 놀자‘ 등 다수의 책 관련 방송에 출연하고 있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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