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택시의 배신

태원준 2022. 8. 5.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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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적 경쟁자 모두 제거하며
택시 독점 영업권 지켜준 정부
택시기사들이 업계 떠나면서
뒤통수 맞은 꼴이 돼버렸다

택시대란 피해 뒤집어쓴 시민
우버부터 타다까지 모빌리티
판을 바꿀 세 차례 기회 날린
정치에 무거운 책임 물어야

정치의 수준이 낮으면
택시도 잘 잡히지 않는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는 언덕이 많다. 자전거로 다니기에 너무 힘들고 차를 몰고 나서면 주차가 고역이었다. 2008년 이 도시에 살던 개릿 캠프는 택시를 자주 불러 탔는데, 배차 시스템이 엉망이라 온다던 택시도 나타나지 않을 때가 많았다. 택시의 노쇼(no show)에 당하던 그는 역공을 택했다. 모든 택시회사에 전화해 배차를 요구한 뒤 가장 먼저 온 택시를 타고 나머지는 바람을 맞히곤 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블랙리스트에 올라 택시 호출이 불가능해졌을 때, 실리콘밸리 거주민답게 창업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우버는 그렇게 태어났다. 택시 잡기가 너무 짜증 나서.

캠프와 함께 우버를 창업한 트래비스 캘러닉은 아주 독한 친구였다. 좋게 말하면 열정이 넘쳤고, 나쁘게 말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도시 교통의 촘촘한 규제를 다 무시한 채 진출하는 곳마다 일단 영업부터 시작했다. 택시업계 반발이나 당국의 제동에 부닥치면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당신이 원하던 서비스 아니냐”고. 여론전과 소송전과 로비전을 벌이면서, 단속 피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기사들에게 나눠주면서 전쟁하듯 영역을 넓혔다. 그에게 규제는 둘러가는 것이 아니라 돌파하는 것이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우버의 전략을 비즈니스 백병전이라 불렀다.

“규제는 혁신을 이기지 못한다.” 이렇게 자신하던 캘러닉은 2013년 한국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1년 반 만에 철수했다. 택시업계의 반발→서울시의 불법 콜택시 규정→검찰의 캘러닉 기소로 이어진 규제 장벽은 세계 1만여 도시에 진출한 우버의 돌파력도 먹히지 않을 만큼 견고했다. 한국의 규제는 혁신을 가볍게 이겼다. 대놓고 규정을 어기던 우버가 실패하자 몇 년 뒤 규정을 살짝 우회한 카카오 카풀이 등장했다. 일반 운전자와 탑승자를 이어주는 승차공유서비스였는데, 택시업계의 거센 저항에 좌초했다. 그다음 나온 타다는 법률의 예외 조항에 근거해 렌터카라는 기발한 형태를 택했지만, ‘타다 금지법’이 만들어지면서 역시 사업을 접어야 했다.

지난 10년간 정부와 국회는 택시의 독점적 영업권을 지켜주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택시업계가 불법이라 지목하면 수사에 나섰고, 법원이 합법이라 판결하면 금지법을 새로 만들었다. 잠재적 경쟁자들을 깔끔히 제거하며 택시를 향해 애정과 친절을 쏟아냈다. 배경에는 택시가 그만큼 이동수단 공급자 역할을 해주리란 믿음이 있었을 텐데, 허무하게 뒤통수를 맞았다. 지금 우리는 극심한 택시대란을 넉 달째 겪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진입장벽을 높이 쌓아 보장해준 택시의 기득권을 택시기사들이 스스로 내려놓으면서 벌어진 일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전국 택시기사 3만명이 업계를 떠났다. 법인택시는 기사가 없어 가동률이 30%로 떨어졌고, 개인택시는 신규 유입이 없어 고령자 직종이 됐다. 택시회사마다 노는 택시를 중고차로 내다 팔고 있다. 떠난 기사들이 곧 돌아올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피해는 오롯이 소비자가 감내할 몫이 됐다. 귀갓길은 갈수록 전쟁이 돼가고, 해결책이라면서 탄력요금제니 기본요금 현실화니 하는 요금 인상안부터 거론되고 있다. 챙겨준 기득권을 내려놓은 택시의 배신, 택시만 믿었다가 뒤통수 맞은 정치, 난데없이 피해자가 돼버린 시민. 이 삼각관계에서 가해자는 누구인가.

택시기사를 나무랄 수는 없다. 직업 선택의 자유를 가진 사람이, 생계를 꾸려야 하는 가장이 코로나 상황에서 더 나은 벌이를 위해 배달로, 택배로 직업을 바꿨다. 그들에게 지극히 합리적이었을 선택을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나. 여기서 나쁜 놈은 배신당한 쪽이다.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책임이 그들에게 있었다. 정치인들은 사회적 합의를 이해당사자 간의 밥그릇 조율로만 여겼다. 문제가 생기면 피해를 뒤집어쓰는 소비자, 시민의 의견은 너무 쉽게 배제해 왔다. 타다를 이용하던 170만 소비자와 시민 여론은 아랑곳하지 않고 금지법을 만들었듯이.

우버부터 타다까지 택시와 갈등을 빚었을 때, 그것을 조율하는 정치가 더 넓게 보고 큰 그림을 그렸다면 지금 상황은 많이 달랐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 차례 주어진 기회를 한 번도 살리지 못했다. 조율의 범위는 매번 밥그릇으로 축소됐고, 항상 표 계산이 끼어들었다. 정치의 수준이 낮으면 이렇게 택시도 잡히지 않는다.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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