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기독교 역사는 악당인가, 성자인가

우성규 2022. 8. 5.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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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기독교 역사
존 딕슨 지음/홍종락 옮김/두란노
제3차 십자군 원정(1189~1192년)을 이끈 잉글랜드 왕 리처드 1세는 예루살렘을 점령한 살라딘의 군대를 패퇴시키지 못했고, 휴전을 통해 순례자들의 안전 통행 조처만 얻어냈다. 그림 속 깃발을 들고 있는 이가 리처드 1세. 게티이미지뱅크


역사의 많은 부분이 그렇다. 이야기는 복잡하고 때로는 모순적이다. 2000년 기독교 역사 또한 악당과 성자의 모습이 공존한다. 극단을 오가는 이 역사를 균형 있게 이해하는 것이 지성을 겸비한 신앙인의 첫째 요건이다.

‘벌거벗은 기독교 역사’(두란노)는 이 지점에 도움을 주는 책이다. 책은 “폭력은 인류사에서 보편적 요소였지만, (기독교가 주장한) 원수를 사랑하라는 요구는 아니었다”며 “군대 탐욕 권력정치는 역사와 늘 함께했지만, (교회가 세운) 만인을 위한 병원 학교 구호단체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악당은 널렸다. 그러나 성자는 찾기 쉽지 않다”고 말한다. 500쪽 두툼한 책의 결론이다. 폭력이 본질인 인류사 속에서 교회는 많은 부분 악당의 모습에 동조했지만, 교회가 없었다면 오늘날 보편적 인권과 교육과 복지의 역사도 없었을 것이다.

책의 원제는 ‘Bullies and Saints’(악당과 성자)이다. 부제는 ‘악당인가 성자인가, 회복을 위해 마주해야 할 역사 속 기독교’이다. 호주의 저명한 역사학자 존 딕슨이 10년을 공들여 기독교의 역사를 진솔하게 저술했다.


테레사 모건 영국 옥스퍼드대 그리스·로마사 교수는 이 책에 대해 “진귀하다. 기독교인과 회의론자 모두에게 말을 건다”고 평했다. 모건 교수는 “존 딕슨은 흡인력 있는 역사 서술과 현대의 논쟁에 대한 예리한 비판을 결합해 더없이 정직하고 도전적이고 설득력 있는 기독교 옹호론을 만들어냈다”고 밝혔다. 정직한 역사 서술이 최선의 방책이다.

책은 종교사에서 끔찍한 악행의 순간인 1099년 십자군 원정에서 시작한다. 그해 7월 15일 1만명가량의 유럽 십자군이 예루살렘의 방어벽을 뚫고 들어갔고, 프랑스에서 이곳까지 2년여에 걸쳐 행군해온 이들은 광기에 사로잡혀 남자와 여자와 아이 가릴 것 없이 살육을 저질렀다. 이슬람 모스크 사이 큰길에는 피가 가득했다고 묘사한다. 대학살을 있는 그대로 전달한 저자는 1299년까지 5차에 걸쳐 이뤄진 십자군 원정이 전반적으로 실패했으며 진실은 이슬람 군대의 승리라고 전한다. 증오와 폭력에 사로잡히기 쉬운 교회의 모습, 이걸 인정하는 것이 먼저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의 원 곡조는 더없이 온전하고 아름다웠다고 저자는 말한다. 2000년 교회사를 숙고하면 예수님은 더없이 아름다운 작품을 작곡하셨는데, 기독교인들이 항상 그걸 잘 연주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다행히 가끔은 곡조가 제대로 연주될 때가 있었다.

저자는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은 모든 남자와 여자와 아이가 ‘이마고 데이’(Imago Dei), 즉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고 처음부터 주장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헤아릴 수 없이 귀중한 가치가 있다고 전한다”고 밝힌다.

1776년 7월 4일, 미국은 대륙간회의를 소집해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창조주는 양도할 수 없는 일정한 권리를 모든 인간에게 부여했다”고 선언한다. 1948년 12월 10일 유엔이 인준한 세계인권선언 역시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누구에게나 동등한 존엄성과 권리가 있다”고 규정한다. 기원은 바로 이마고 데이다.

책은 신약성경이 기록되던 시점의 로마 네로 황제가 기독교인들을 개들에게 내주어 찢겨 죽이고 해가 지면 등불 대신 기독인들을 산채로 불태워 길거리를 밝혔던 기록들을 찾아간다. 이런 상황에서 사도 바울이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당부했던 역사를 떠올린다. 고대 사회에 없던 가난한 이들을 돕는 ‘자선’의 개념이 예수님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확산됐고, 3세기 중엽 지중해 전역을 덮친 키프리아누스 역병 당시 가족들마저 내친 바이러스 감염자를 헌신적으로 돌본 기독인들의 모습을 반추한다. 수도원의 개혁 운동이 있었는가 하면 종교재판이 횡행했고, 종교개혁으로 인한 30년 전쟁이 있었지만, 북아일랜드에선 신·구교 갈등이 평화협정으로 마무리된 점을 지적한다. 역사 속에서 뒤얽힌 수치와 영광, 이 모두를 정직하게 들여다볼 기독교인의 용기가 필요하다고 책은 말한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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