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펠로시 피한 이유..바이든 눈치 보기?
바이든-펠로시, 윤석열-이준석 관계라는 의견도
전문가 "정치권서 협조 미흡한 듯" 비판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미·중 갈등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은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일각에선 대통령실 내부 안보·실리(안보라인과 실용라인)의 의견 차이로 주저한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있다.
대통령실은 3일 윤 대통령이 휴가 때문에 다음날 한국을 방문할 펠로시 의장을 만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펠로시 측과의 추가 일정 조율도 없었다며 깜짝 만남 성사도 부정했다.
그러면서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에 따라 격화되는 미·중 갈등에 대해 “대화와 협력을 통한 지역 내 평화와 안정이 가장 중요하다는 기조 아래 관련 제반 현안에 대해 역내 당사국들과 긴밀한 소통을 유지한다”는 기본적 입장을 견지했다.
윤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의 만남이 성사되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언급되지만 그 중 설득력을 얻고 있는 해석은 바이든 행정부와의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지 않기 위해 자처한 것이란 의견이 있다. 미·중 갈등 속 중국 눈치를 봤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바이든 행정부가 우리 정부에 펠로시를 만나지 말아 달라는 요구가 있었을 것이란 조심스러운 추측도 가능하다.
이에 대해 외교통상 전문가들은 그런 추측도 할 수 있으나 실제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답했다. 오히려 윤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 간 만남이 번복되는 경우로 볼 때 대통령실 내 안보 세력과 실리 세력이 힘겨루기했을 거란 분석을 내놨다.
김홍규 아주대학교 미·중관계 연구소장은 4일 쿠키뉴스와 만나 “대통령실 내 안보라인과 실용라인의 힘겨루기”라며 “아무리 바이든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이 사이가 좋지 않더라도 자국 인사를 만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설명했다.
박휘락 전 국민대학교 정책대학원장도 이에 동의했다. 박 전 원장은 이날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바이든 행정부와 불편한 관계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는 주장은 엉터리”라며 “한미동맹과 한중 관계는 엄연히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아마 (대통령실) 안보팀이나 외교팀에서 나름대로 분석을 했을 때 중국이 워낙 강경히 나오니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건의한 것 같다”며 “이를 대통령이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바이든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의 관계가 우리나라의 윤 대통령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관계와 비슷하다는 의견에 대해 박 전 원장은 “그건 잘 모르겠다”고 선을 그었다.
또 박 전 원장은 바이든 행정부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해 사실상 반대했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그걸로 윤석열 정부가 눈치 봤다는 식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며 “펠로시 의장이 방문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펠로시 의장에 대해 바이든 행정부가 대만 방문을 하지 말라는 식의 요구를 한 적은 없었다.
박 전 원장은 이어 “윤 대통령은 접견해야 하지 않느냐는 입장이었을 거다”라며 “그런데 안보팀이나 외교팀서 나름대로 분석했을 때 중국이 너무 강경하게 나오니 불필요한 자극을 안 했으면 좋겠다는 건의를 했을 것이고 윤 대통령은 이를 수용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4일 펠로시 의장을 접견한 데에는 김 의장이 야당 소속이기에 이를 의식하지 않고 국회의장 자격으로 만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치권에서는 이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미국 의전서열 3위의 권력자를 윤 대통령이 만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4일 페이스북을 통해 “동맹국 미국의 의회 일인자가 방한했는데 대통령이 만나지 않는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며 “미국 국무장관 등이 방한하면 역대 우리 대통령들은 대부분 이들을 만났다. 휴가 중이라는 건 이유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윤 대통령을 향해 “아시아 순방 중인 미국 하원 의장이 다른 나라에서는 정상들을 만났는데 대통령실은 ‘휴가 중이라 안 만난다’고 했다가 ‘만남 조율 중’이라고 했다가 ‘최종 만남은 없다’고 입장을 번복했다”며 “외교 관계에서 있을 수 없는 아마추어들의 창피한 국정 운영”이라고 거세게 비난했다.
주한 미국 대사관 관계자도 이날 언론을 통해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관계자는 “펠로시 의장은 한국 측 의전 관계자가 아무도 안 나온 것에 매우 불쾌하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앞서 펠로시 의장은 2일(현지시각) 대만을 방문해 강경한 대중국 메시지를 발산했다. 평소 그는 대중강경파가 많은 미국 의회에서도 독보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대만 방문 자체로도 미·중 관계 긴장을 끌어올렸지만 여기에 더해 팽팽한 신경전을 이루게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사실상 만류한다는 뜻을 밝혔다.
펠로시 의장은 대만 도착 직후(2일·현지시각) “대만의 활기찬 민주주의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방문 성격을 규정했다.
이날 워싱턴포스트에 실은 기고에서도 “중국공산당의 가속하는 공격에 직면한 대만에 대한 수호 의지”를 강조하며 홍콩의 정치적 자유, 인권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잔혹한 탄압과 위구르족·티베트족 억압의 현실을 비난했다.
지난 3일(현지시각) 미국 백악관은 펠로시 의장에게 대만 방문을 연기하도록 요청했지만 펠로시 의장이 “임기 중 마지막 기회”라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말 “군에서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하지 않는다”며 사실상 만류의 뜻을 밝혔다. 외교 사안의 주도권은 대통령에게 있지만 펠로시 의장은 의회의 독립성을 이유로 자신의 주장을 고수했다.
시진핑 주석은 직접 지난달 28일 바이든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불장난하면 불에 타 죽는다”며 펠로시 의장의 대만행을 겨냥하는 발언을 했다.
시 주석은 오는 10월 중국공산당 제20차 당 대회를 앞두고 강경한 리더십을 보여주기 위해 이같이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보인다.
한편 비판이 거세게 일자 이날 오전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방한 중인 펠로시 의장과 전화 통화를 할 예정”이라고 일정을 수정했다. 또 펠로시 의장 측에서 공항 영접이 없던 것에 불쾌함을 드러내자 이날 오후 대통령실은 미국 측이 공항 영접을 사양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안소현 기자 ashright@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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