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못잡겠다" 이 신청서 하나면 대체복무 할수 있는 나라 [대체복무리포트③]
■ ◇러시아 위협 맞선 핀란드의 대체복무제
「 핀란드는 과거 100여 년간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고 1939년 11월부터 105일간 소련과 ‘겨울전쟁’을 치르며 영토의 10%를 빼앗겼다. 제2차 세계대전 뒤 중립 정책을 펼치며 러시아의 눈치를 살펴 ‘핀란드화’(Finlandization, 약소국이 강대국의 눈치를 보면서 소극적 외교 정책을 펴는 것을 뜻하는 용어)라는 말까지 생겼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안보 긴장감이 높아진 핀란드는 징병제를 유지하며 오랜 기간 대체복무제도를 이어가고 있다. 중앙일보는 지난 6월 27일부터 5일간 핀란드의 대체복무 현장을 찾아 복무자와 관리자를 만났다. 또 핀란드 국방부 국방정책 담당자, 대체복무자 출신이자 지난 대선 후보였던 헬싱키 부시장을 만나 대체복무제를 둘러싼 핀란드의 국방부와 정치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목차〉
1화 "아빠는 교도소에서 산다"
2화 머나먼 길 - 대체복무자 심사에서 입소까지
3화 러시아 위협에 놓인 핀란드의 대체복무제는?
4화 핀란드 보수·진보가 바라보는 대체복무제
5화 대체복무제 이대로 좋은가
」
하지제(해가 가장 긴 하지를 기념하는 핀란드의 공휴일)가 끝난 지난 6월 27일 핀란드 수도 헬싱키역과 건물 곳곳에는 우크라이나 국기가 펄럭였다. 핀란드 국민의 나토 가입 찬성 비율은 최근 몇 년간 20~30% 수준이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76% 까지(공영방송 윌레·Yle 조사) 올랐다.
핀란드는 전쟁의 역사만큼 대체복무 역사도 길다. 1931년 대체복무법에 의해 처음으로 양심적 병역거부가 인정됐다. 헬싱키에는 당시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투옥됐던 안트 페쿠리넨의 이름을 딴 공원이 있다. 핀란드 헌법 127조는 “모든 핀란드 시민은 법에 따라 국방에 참여하거나 지원할 의무가 있다. 양심에 근거한 군사적 국방 참여를 면제 받을 권리에 관한 규정은 법률로 정한다”고 명시한다.
신청서 내면 대체복무, 올해 전쟁 이후 신청 증가
핀란드의 대체복무제는 우리나라 병역법상 사회복무요원과 대체복무요원이 통합된 제도로 볼 수 있다. 누구나 신청만 하면 군 복무 대신 비영리 기관에서 대체복무를 할 수 있다. 전문연구요원, 산업기능요원과 같은 제도는 아예 없다. 대체복무 기간은 347일로 일반 군 복무(최소 165일)의 약 2배로 합숙이 아닌 출·퇴근 근무한다.
핀란드 민간대체복무센터에 따르면 징집 대상 남성의 7%인 2000명 가량이 매년 대체복무제를 신청하고 약 1300명이 복무한다. 지난해 신청자는 2022명이었다. 하지만 올해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며 상반기 신청자만 1200명 가량으로 지난해 대비 20% 증가했다. 대체역 편입을 신청하는 예비군 수도 급증해 핀란드 정부와 언론도 이런 현상을 주목하고 있다고 한다.
취재진이 지난 6월 27일 헬싱키에서 약 95㎞ 떨어진 라핀야르비의 민간대체복무센터에 도착했을 때 핀란드 예비군에서 대체복무 편입을 신청한 이들의 교육이 진행되고 있었다. 알토대에서 영화를 전공하는 베이코 티모넨(27)도 교육 참석자 중 한 명이다. 그는 해외 파병 평화유지군으로 1년간 군 복무를 마쳤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티모넨은 “평화유지군의 경우 복무 기간이 1년이었다. 복무 기간 레바논에 파병되진 않았지만, 라트비아에서 에스토니아와 연합 훈련을 한 적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예비군에서 빠지고 싶어서 대체복무 교육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이 나도 집총 대신 다른 방식으로 나라를 위해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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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 훈련 뒤 각자 복무지로
민간대체복무센터는 대체복무자들을 위한 모든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대체복무 신청자는 복무지로 가기 전 4주 동안 군사 훈련 대신 총 5개의 교육과정(①화재구조·민간보호 ②폭력예방 ③환경과사회 ④일상안전 ⑤시민참여)중 하나를 선택해 이수해야 한다. 응급 상황 대처 등 필수 과목도 있다. 대체복무 신청자의 절반 정도는 사전에 복무지를 확정한 뒤 입소하고 나머지 절반은 4주 훈련 기간 복무지를 구한다.
코로나 확산이 한창이던 지난해 2월부터 1년간 사물리 사이니오(29)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집총을 거부하고, 핀란드 북부 이발로 지역에 위치한 노인 요양시설에서 대체복무를 했다. 그는 직업계 고교를 다니면서 핀란드에서 돌봄 교사, 간호조무사 등으로 일할 수 있는 돌봄노동전문자격증을 취득한 뒤 민간대체복무센터에서 일상안전 교육과정을 이수했다.
코로나 기간 기여한 대체복무자
사이니오는 코로나 기간 요양시설에서 복무하며 “타인을 돕는 법을 배우고 사회에 기여하는 존재가 되는 효능감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30명의 노인을 관리하기 위해 9명의 간호사가 3교대로 일했지만 일손이 부족했다. 대체복무자 1~2명이 그들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노력했다.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병원 동행, 이동 보조 등 수발 일도 했다. 복무 기간 노인 6명이 코로나에 감염됐고, 일부는 사망했다. 그런 상황에서 현장의 간호사가 ‘네 덕분에 난 더 중요하고 응급한 상황에 집중할 수 있어 고맙다’고 한 게 잊히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대체복무를 시작한 칼레 라팔라이넨(19)도 복무지인 탐페레 종합병원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한다. 지난 6월 30일 오후, 파란색 근무복을 입은 그는 탐페레 종합병원 소화기·비뇨기 입원 병동에서 환자들이 사용한 병실과 휠체어를 정리하고 있었다.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3시까지 환자와 방문객 이동을 보조하고, 병동과 병실을 관리한다.
라팔라이넨은 “러시아와 전쟁을 경험한 할아버지가 내게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대에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병원 휴식 시간에서도 비슷한 말이 나온 적 있다”면서 “그때 내가 왜 대체복무를 선택했고,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려고 노력하는지 설명하니 다들 존중해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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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같은 존재” 교육·의료·보건 공백 채워
함께 일하는 아리아 발리바라(60) 수간호사는 그를 “의료진과 환자에게 선물 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발리바라 수간호사는 “지금껏 5명이 대체복무자와 함께 일했다. 의료진이 응급한 업무에 집중할 때 신경 쓰지 못하는 모든 잡무를 처리해 모든 의료진이 코로나 기간 칼레의 연락처를 갖게 됐다”면서 “그가 곧 4주간 여름 휴가를 떠나는 것에 대비해 아르바이트생을 이미 뽑아둔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교도소 대체복무도 무언가 배울 수 있겠지만, 사회가 더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일한다면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일이 건설 현장이나 시설 관리 분야 취업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개인이 지망한 곳 중 한 곳에 배치되기 때문에 복무자들 사이 기피 장소가 따로 있지 않아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진 않는다”고 했다.
라씨의 복무관리자인 알토대 교직원 안니까 오옐마(30)는 “알토대에는 IT를 담당하는 2명의 대체복무자가 더 있다. 핀란드의 대체복무제도는 징벌이 아닌 기회다. 복무자가 왜 군대 대신 대체복무를 선택했는지 아무도 묻지 않고 중요하지 않다”면서 “핀란드 사회는 개인과 공동체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을 고민하고 일을 맡긴다”고 말했다.
(핀란드어 통역 = 한희영)
■ 미코 레이요넨 핀란드 민간대체복무센터장 인터뷰
「
Q : 민간대체복무센터의 역할은 무엇인가.
A : 13년째 핀란드 민간대체복무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고용경제부가 대체복무제를 운영하고 센터는 그 산하에 있다. 매년 약 1300명의 대체복무 훈련생을 교육한다. 고용경제부는 연산 500만 유로(한화 65억6100만원)을 지원한다. 2015년 한국 병무청이 사회복무요원 제도 개선과 관련해 우리 센터를 방문한 적이 있다. 대체복무자는 5개 교육 과정 중 한 가지를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4주 교육을 마치면 이수증을 제공한다. 코로나 기간에는 7일 대면, 나머지는 원격 수업을 했다.
Q : 대체복무 분야와 복무 신청자 수는.
A : 비영리기관에서만 복무할 수 있다. 복무 분야는 33%가 교육으로 가장 많고, 비영리 종교단체 26%, 의료·보건 23%, 문화예술 13% 등 순이다. 대체복무 신청자는 2018년 1815명, 2019년 2383명, 2020년 2079명, 2021년 2022명이었다. 2019년은 법 개정에 따라 병역이 면제되던 여호와의증인 신도들에게 복무 의무가 생겨 400명 정도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는 대부분 개인적 신념에 의한 대체복무자로 추정한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1200명 정도가 신청해서 지난해 대비 신청자가 20% 증가했다. 대체복무 마저 거부하는 인원은 매년 30~40명 정도로 이들은 형사처벌된다.
Q : 예비군의 대체역 편입 신청도 급증한 것 아닌가.
A : 지난해 435건이었는데 올해 상반기만 3170건이 접수됐다. 10배 이상 늘어난 건데 전쟁 영향으로 보인다. 최근 핀란드 언론도 이런 현상을 주목해 보도했다. 핀란드에서는 50세까지(장교 60세) 예비군을 해야한다. 집총 이외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고 아직까지는 제도적으로 개인의 선택을 막지는 않고 있다.
Q : 대체복무자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은 어떤가
A : 과거 핀란드도 군복무가 중요했지만, 대체복무도 사회에서 중요한 일을 한다는 인식을 모두가 공유한다. 이들의 존재가 사회적으로도 이익이다. 1년에 일반인을 고용할 경우 4만 유로다. 비영리 기관에서 대체복무자는 1만 유로면 고용이 가능하다. 대체복무자들은 개인의 직업적 기회로 복무 의무를 다할 수 있다. 」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헬싱키=여성국·이영근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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