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 가격 상승으로 글로벌 소비 위축.."밀 대신 쌀·타피오카"
세계 밀 소비가 수십 년 만에 가장 큰 감소세를 보인다고 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식품·사료 기업과 소비자가 밀을 덜 소비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선 쌀이나 타피오카(카사바 뿌리에서 채취한 녹말)가 밀을 대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제빵사 얀 아이사 알라만다는 최근 밀가루 가격이 올라 빵 가격을 소폭 인상했지만, 계속되는 원재료 가격 상승으로 압박받고 있다. 그는 올해 초 8200루피아(약 720원)에 밀가루 1㎏을 살 수 있었지만, 최근엔 1만 루피아(약 880원)를 내야 했다. 알라만다는 "소비자 가격을 더 높일 수는 없어 고민"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제빵사와 식품업계가 쌀을 쓰는 쪽을 택할 것이라고 전했다. 프란시스쿠스 웰리앙 인도네시아제분업협회 회장은 "밀가루 가격은 쌀과 비슷해졌다. 자연스럽게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가격이 크게 올랐을 때 밀가루 소비가 4.5% 감소했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밀 가격은 지난 3~5월 부셸(36L)당 13달러를 웃돌았다. 이달 초 8달러까지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예년보다 높은 수준이다. 반면 글로벌 벤치마크(투자지표 지수)인 베트남 쌀 가격은 1t당 404달러 수준으로 지난해 말과 큰 변동이 없다.
미국산 밀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브라질의 경우 밀가루 소비가 3%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로베르토 산돌리 헤지포인트 글로벌마켓 매니저는 "브라질 북동부에선 타피오카와 같은 지역 산물이 밀을 대체할 것"이라고 말했다.
밀 가격 상승은 축산농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프랑스 농림축산사무국은 향후 1년간 사료용 밀 수요는 390만t으로 지난 1년보다 13% 감소할 것으로 관측했다. 헬렌 듀플로트 스트래티지 그레인즈 분석가는 "유럽연합(EU) 지역의 사료용 밀 소비 감소는 저렴한 옥수수 가격이 한몫한다"고 말했다.
로이터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하반기 세계 밀 소비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8%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미국 농무부의 전망치 1%보다 훨씬 빠른 속도다. 최근 10년 이래 최고치에 달했던 지난 5월께 사들인 밀이 하반기 시장에 풀릴 때, 소비자가에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밀 소비 감소로 이어질 전망이다.
에린 콜리어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연구원은 "유럽과 중국에서 사료용 밀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며 "전 세계 주요 수입국에서도 밀 수요가 둔화했다"고 말했다. 또 "높은 물가는 국제 시장으로부터 충분한 공급을 확보할 수 없는 아프리카·아시아 일부 지역에서 식량 안보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같은 현상은 국내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고 업계와 전문가들은 말했다. 제분업계 관계자는 "밀 가격은 우크라이나 전쟁 전에도 오르고 있었다. 지금은 비료 등 원자재뿐만 아니라 에너지, 운송비 등 제반 물가가 모두 올라 향후 밀가루 가격은 계속 상승할 수밖에 없다"며 "업계가 이를 소비자에 부담하고 있어 가격이 계속 오르면 밀가루 제품에 대한 소비가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실질 소득 감소로 인해 소비자가 느끼는 체감 물가는 정부 발표보다 더하기 때문에 필수 소비재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 소비가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일 흑해에 묶인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이 재개됐지만, 여전히 밀 공급은 불안정할 것으로 관측됐다. 시드니 소재 상품중개기업 IKON 코모디티의 올레 하우에는 "밀 공급은 여전히 빠듯하다"며 "흑해에서 얼마나 많은 밀이 나올지 모르지만, 다른 수출국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흑해 지역의 밀 수출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인플레이션 등으로 인해 운송비가 크게 늘었다. 이 지역의 밀은 t당 400~410달러에 거래되고 있는데, 이는 지난해 평균(300달러)보다 30% 이상 높은 가격이다.
밀 가격이 내려가도 문제다. 인플레이션으로 생산비가 오른 상태에서 밀 가격이 내려가면 주요 생산국의 농부들이 파종을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지난 1일 보도했다. 농업분석기업 애그리소소의 댄 바세 사장은 "농가 입장에선 파종 시즌을 앞두고 세계 밀 가격이 상승해야 한다"고 말했다. NYT는 인플레이션 등 밀 수급 불균형을 초래한 근본 요인이 해결되지 않으면 밀 가격은 재차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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