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대 내홍 격화..총장·이사회 샅바싸움
호남 최대 사학 조선대가 3년여 만에 다시 내홍을 겪고 있다. 사립대학에서는 유례가 드문 직선 총장과 실질적 지배주주가 없는 이사회가 지루한 샅바 싸움을 벌이고 있다.
4일 조선대에 따르면 최고 의결기구인 이사회가 단과대학장·대학원장 징계안을 제출하지 않은 민영돈 총장에 대한 징계를 의결했다.
이사회는 지난달 27일 지시사항 불이행 등의 이유로 민 총장 징계 결정을 내렸다. 학사운영을 총괄하는 대학 총장에 대한 이사회 징계 추진은 매우 이례적이다.
애초 이사회는 특정 교수의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단과대학장 2명과 대학원장의 징계안을 민 총장이 작성해 올리도록 통보했다.
6학기 동안 수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공과대학 A교수와 지난해 중간평가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아 국책 사업에 차질을 빚은 미래사회융합대학 B교수가 논란의 불씨가 됐다.
이사회는 학생 학습권과 학교 재정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 교수 2명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은 책임까지 물어야 한다며 해당 단과대학장과 A교수가 일부 강의를 맡은 대학원장 징계안을 내라고 민 총장에게 요청했다.
하지만 민 총장은 교무처장이 위원장인 교원인사위원회가 자체적으로 논의한 결과 징계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징계안을 이사회에 올리지 않았다. 총장으로서 독립기구인 인사위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사위는 공과대학장의 경우 100명이 넘는 교수 개인별 수업을 현실적으로 일일이 관여하거나 확인하기 힘들어 문책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래사회융합대학장은 해당 교수가 정교수 신분 상승을 노리고 제때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은 정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를 이룬 것으로 파악됐다.
그런데 이사회는 이 같은 인사위 결정과 별개로 ‘총장 직권’ 방식의 징계안을 내도록 에둘러 민 총장에게 요구했다.
하지만 고심을 거듭하던 민 총장이 이를 따르지 않자 이사회가 지시사항 불이행·직무태만을 이유로 내세워 총장에 대한 징계에 나선 것이다.
현행 사립학교법은 총장이 교원 징계·상신 등 교원 임용 제청권을 갖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사회는 총장 제청을 받아 형식적으로 임용권을 행사한다.
이사회는 자산 매각·통폐합 등 대학 운영 전반에 관한 최고 의사결정을 내리게 돼 있지만 실제 학사운영에 관한 모든 권한과 책임은 총장에게 주어져 있다.
이사회는 “총장이 이사회 지시를 거부한 것은 명백한 사립학교법 위반”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교원 징계안 제청 요구를 묵살한 민 총장 징계 의결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사회는 금명간 징계위원회를 열고 민 총장의 징계 양형을 구체적으로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이사회 징계 추진에 침묵을 지키던 민 총장은 “인사위에서 자체적으로 징계 대상이 아니라고 결론이 난 사안을 두고 이사회가 부당하게 학사운영에 개입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민 총장은 인사위 고유 권한을 침해하면서 ‘총장 직권’으로 징계안을 이사회에 무작정 올릴 수는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는 문제가 된 A·B교수는 이미 인사위 개최 등 합당한 절차에 따라 징계를 받았거나 징계위에 회부돼 있다고 덧붙였다.
민 총장은 지난 2일 담화문을 내고 “교수평의회와 교원노동조합, 총학생회, 총동창회 등이 주축이 된 조선대 학사개입 저지 및 교육자주권 회복을 위한 범대책위원회 뜻을 받들 것”이라고 밝혔다.
이사회와 총장 간의 대립이 격화되는 가운데 기획조정실장 등 주요 보직교수 6명이 총장에게 보직사퇴서를 일괄 제출해 조선대는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
앞서 조선대 이사회는 2018년 6월에도 교육부 대학 기본역량 진단에서 저조한 평가를 받은 책임을 물어 강동원 당시 총장을 전격 해임한 바 있다.
이사회에 반기를 든 강 총장이 이후 교육부 소청심사위원회에 해임이 부당하다며 소청심사를 제기하고 법정 소송에 나서면서 조선대는 민영돈 총장이 취임한 2019년 11월까지 극심한 혼란과 갈등을 겪었다.
조선대 구성원들은 “수시모집을 앞두고 대학 운영의 쌍두마차인 총장과 이사회가 격돌하는 것은 자멸하는 길”이라며 “이사회가 우격다짐으로 총장을 흔드는 소모적 결정을 철회해야 마땅하다”는 반응이다.
광주지역 시민단체 관계자는 “인사 원칙을 고수하려는 대학 총장의 상투를 이사회가 잡고 흔드는 격”이라며 “총장과 이사회가 격의없이 소통해 서둘러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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