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이 죽으라고 등 떠민다" 공군 성추행 피해자 메모장엔
최근 드러난 공군 제15특수임무비행단(이하 15비)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가 다른 상급자에게서도 성희롱을 당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시민단체 군인권센터 부설 군 성폭력상담소는 15비 소속 A 원사가 지난해 상반기 피해 부사관 B 하사에게 성희롱 발언을 했다고 4일 주장했다.
A 원사가 B 하사에게 40대인 자신의 동기와 사귀라며 ‘너는 영계라서 괜찮다’고 했다는 것이다. 센터는 A 원사가 다른 여군들에게도 평소 부적절한 행동을 해왔다고 주장했다.
A 원사는 B 하사가 성추행 피해 신고를 한 사실을 가해자에게 알려줬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B 하사가 올해 4월 같은 반 근무자인 C 준위(44)로부터 지속해서 성추행·성희롱당한 사실을 성고충상담관에게 신고했는데, A 원사가 이 사실을 C 준위에게 알려줘 C 준위가 B 하사를 회유·협박했다고 군인권센터는 주장했다.
B 하사는 이에 A 원사가 2차 피해를 줬다며 공군 수사단 제1광역수사대에 신고했고, 이후 A 원사는 불기소 의견으로 군검찰에 송치됐다.
군 성폭력상담소는 B 하사가 성추행 사건 수사를 담당한 군검찰로부터도 조롱을 당했다고도 주장했다.
C 준위의 강압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격리 숙소에 갔다가 주거침입 혐의 등으로 송치된 B 하사가 검찰 조사 과정에서 “성범죄 피해자로 호소할 거면 변호사를 써서 정리된 내용으로 답변해라. 진심으로 조언해주는 것이다”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해당 검사는 B 하사의 성추행 사건을 맡은 검사이기도 하다.
군인권센터는 당시 B 하사의 심경을 담은 메모도 공개했다. B 하사가 쓴 메모장에는 지난 6월30일 군 검찰 피의자 신문을 마친 뒤 담당 군 검사의 부적절한 발언과 태도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B 하사는 성추행 피해자인 자신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는 것에 대해 “군이 나에게 죽으라고 등을 떠민다. 제대로 된 보호도 해주지 않으면서 모든 걸 온전히 나에게 버티라고 내버려 둔다”며 억울한 심경을 드러냈다.
B 하사는 또 “검사가 금전적인 문제로 변호사를 안 쓰는 게 지금 상황에선 좋지 않다고 비아냥대는 게 너무 화났다. 모든 조사를 울면서 했다”고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냥 죽고 싶다. 더러운 상황 속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답답함이 날 옥죄여 온다”고 고통을 토로했다.
앞서 군인권센터는 지난 2일 기자회견을 열고 15비에서 발생한 성추행 사건을 폭로했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지난 1월 시작된 성폭력은 B 하사가 4월 피해 신고를 할 때까지 이어졌다.
C 준위는 안마를 해준다는 핑계로 B 하사의 어깨와 발을 만지거나 B 하사가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윗옷을 들쳐 부항을 놓는 등 성추행을 저질렀다.
지난 4월에는 코로나19에 확진된 남자 하사와 입을 맞추고 혀에 손가락을 갖다 대라고 지시했으며, B 하사가 거부하자 자신의 손등에 남자 하사의 침을 묻힌 뒤 피해자에게 이를 핥으라고 강요했다.
B 하사는 C 준위의 강압에 못 이겨 남자 하자가 마시던 음료수를 마셨고 3일 후 코로나19에 감염됐다.
B 하사는 이 과정에서 군 수사기관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도 했다. 코로나19에 확진돼 격리 중이던 남자 하사가 B 하사와 C 준위를 성폭력 및 주거침입 혐의로 신고했기 때문이다.
15비는 선임에게서 성추행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이예람 중사가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곳이다.
군 내 불상사가 연달아 터지자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공군 병영혁신자문위원회 위원직을 사퇴하기로 했다.
임 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고(故) 이예람 중사 사망 이후 대체 우리 군의 무엇이 달라졌는지, 1년 동안 저는 위원회에서 무엇을 했던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며 “함께 책임지는 마음으로 자문위원직을 사퇴한다”고 썼다.
장구슬 기자 jang.gus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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