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시 떠나고..中 전례없는 근접 군사훈련, 4차 대만해협위기 오나
[아시아경제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김현정 기자]중국의 경고 속에 대만 땅을 밟았던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은 모든 일정을 마치고 떠났다. 하지만 대만해협을 둘러싼 위기는 한층 고조되고 있다. 펠로시 의장이 떠나자마자 중국은 대만을 포위한 채 전례 없는 72시간 군사 훈련에 돌입했다.
과거 세 차례의 대만해협 위기 당시 압도적인 미국의 무력 앞에 무릎을 꿇어야만 했던 중국은 이제 막강해진 경제·군사력을 앞세워 ‘대국굴기’의 노골적 야심조차 숨기지 않고 있다. 이전과 차원이 다른 4차 위기로 번질 것이란 우려가 쏟아지는 배경이다.
◆대만 전면 포위한 中, 통일 시나리오?
4일 낮 12시부터 본격화하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대규모 군사훈련은 대만을 에워싼 형태로 6개 구역에서 진행된다. 공개된 지도를 살펴보면 6개 구역 중 3개 구역은 대만이 영해라고 주장하는 지역이다. 또한 1개 구역은 대만 가오슝 해안과의 거리가 20㎞ 이내로 매우 가깝다. 과거 1995~1996년 3차 대만해협 위기 당시보다 지리적 위협 수위를 바짝 끌어올린 것이다.
중국은 펠로시 의장이 대만에 체류하던 3일 J-11 전투기 등 군용기 27대를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어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 진입시키기도 했다. 중국 전투기가 이 선을 넘으면 불과 수분 만에 대만 땅에 닿는다. 뉴욕타임스(NYT)는 "군사대결의 가능성은 펠로시 의장이 떠난 지금부터"라며 "중국의 군사훈련은 3차 대만해협 위기를 연상시킨다"고 전했다. 일간 가디언은 "펠로시 의장이 떠나면서 대만은 4차 대만해협 위기로 확산할 위험에 처했다"고 진단했다.
일각에선 중국이 사실상 대만 통일 군사작전 시나리오를 시행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대만군 예비역 중장인 솨이화민씨는 중국 환구시보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인민해방군이 설정한 훈련구역 6곳이 대만 지역의 주요 항구와 주요 항로를 위협해 대만을 전면 봉쇄하려는 포석이라며 "이런 봉쇄 패턴은 향후 무력 통일을 위한 행동 옵션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펠로시 방문, 중국 상처에 소금 뿌린 격" 평가도
이러한 상황은 대만뿐 아니라 미국과 동맹국들에도 난제가 될 수밖에 없다. NYT는 "중국에 맞서 과거 대만해협 위기와 유사한 대응에 나설지 결정해야 한다"면서 "하지만 (3차 위기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중국의 군사력은 시진핑 국가주석 치하에서 더 강력하고 대담해졌다"고 짚었다.
펠로시 의장이 자신의 정치적 유산을 남기는 데 급급해 미·중 갈등만 고조시킨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적지 않게 나오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현 상황은 과거 미·중 간 압도적인 국력 차이가 존재했던 1~3차 대만해협 위기와 다르다. 더 이상 미국이 힘으로 중국을 굴복시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폴 반데르 푸덴 네덜란드 국제관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펠로시 의장의 방문이 오히려 중국에 득이 됐다고 진단했다. 스티븐 로치 미국 예일대 교수는 "중국의 드러난 상처에 소금을 뿌린 꼴"이라며 "미·중 긴장을 고조시키고 두 나라 사이를 더욱 갈라놓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행정부 관계자는 워싱턴포스트(WP)에 "중국은 대만을 해할 수 있는 매우 광범위한 수단을 갖고 있다"며 "과거 사례를 봤을 때 중국은 상대에게 구실을 발견했을 때 공격적으로 나서서 이점을 취하려 하곤 했다. 이번에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코로나19 재확진으로 격리 중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3일 오전 국가안보팀을 소집해 후속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트위터를 통해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에 대한 우리의 계속되는 지원"을 강조한 점을 고려할 때,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기본 입장에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지속하며 정면 돌파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미국은 위기를 추구하지도, 원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같은 날 미국을 비롯한 주요7개국(G7)은 외무장관 공동성명을 통해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구실로 대만해협에서 공격적 군사 활동을 벌이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며 "중국의 확대 대응은 지역 내 긴장을 고조시키고, 불안정하게 할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대만 정치적 분열 가능성 제기돼
대만에 대한 중국의 군사·경제적 압박은 대만 내부 정치적 분열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중국 상무부는 3일부터 건축자재용 등으로 쓰이는 천연 모래의 대만 수출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같은날 세관 당국인 해관총서도 대만산 감귤류 과일, 냉장 갈치 등의 수입을 차단하기로 했다.
문제는 대만 민주진보당(DDP)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남부에 대만의 어업과 농업지역이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수출길이 갑자기 막히며 관련 지역 어민과 농민들의 생계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민진당이 정치적 저항을 받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의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양안(兩岸·중국과 대만)무역은 대만분리주의자들의 현금창고 역할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칼럼을 게재해 대만에 대한 경제 보복을 인정했다. 지난해 기준 대만의 대중 수출액은 2500억달러(약 327조1250억원), 무역 흑자는 1716억달러에 달했다. 지난해 대중국 최대 무역흑자국(지역 포함)은 대만이었다.
글로벌타임스는 "일부 국가가 대만과의 관계 강화를 위해 소위 무역 개선 카드를 들고 나올 수 있다"면서 "그러나 그들이 진정 대만 사람들의 이익에 관심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한 "대만 민진당은 국민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외부 세력의 손에 섬을 팔아넘기는 정치적 이익에만 관심이 있다"며 "국민들은 분리주의 세력을 지지하는 것이 섬을 막다른 골목으로 이끌 것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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