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걸렸을 '가능성' 높다.. 의사가 애매하게 말하는 이유
불확실성 불가피.. 확률 수치 제시 어려울 때 많아
백분율 '범위'라도 알려달라 해야
환자는 '불안'.. 의사 적극적으로 답해야
병원 진료를 받으며 한 번쯤은 의사에게서 들어봤을 표현이다. 모호한 표현을 듣는 순간 환자들은 되묻고 싶어진다. ‘그래서 걸렸다는 거야, 안 걸렸다는 거야?’ 그러나 우린 모든 것이 ‘OX’로 갈리는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 무엇이 옳은지, 어떻게 될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사 역시 환자가 특정 질병에 걸렸는지를 확률적으로 판단한다. 확률과 가능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서 건강한 삶이 시작되는 이유다.
◇다양한 근거 고려하는 탓에 확률 ‘수치화’ 불가능할 때도
환자가 어떤 질환에 걸렸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지, 어떤 치료법을 택하는 게 최선인지는 다양한 근거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된다. 첫째가 ‘국내 암 발병률’, ‘폐암 사망률’ 같은 통계치다. 수많은 사람을 수년간 관찰해 얻어낸 연구 결과도 활용된다.
8772명의 2형 당뇨병 환자를 5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 인지장애가 없는 당뇨병 환자의 10%, 인지장애가 있는 당뇨병 환자의 16%에게서 심혈관계 이상 증상이 관찰됐단 식이다. 의학적 이론과 ▲환자의 증상 ▲의료진 소견 ▲진단검사 결과도 참고된다. ‘지금껏 이런 증상을 보인 환자들은 보통 이런 질병을 진단받았다’는 의사의 경험과 직관도 중요한 근거다.
문제는 환자가 특정 질병에 걸렸을 가능성에 관해, 각각의 정보가 말해주는 확률의 크기가 모두 다르다는 데 있다. 가령, 당뇨병이 생길 가능성은 하루에 두 시간 앉아서 TV를 시청하는 경우 약 14%, 부모가 모두 당뇨병 환자일 때 약 50% 증가한다고 알려졌다. 그렇다면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사람의 당뇨병 발병 소지는 얼마일까? 크다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구체적인 백분율을 제시할 순 없다. 당뇨병 발병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 다양한데다, 요인마다 당뇨병 발병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중앙대 광명병원 응급의학과 김찬웅 교수는 “수집한 정보들이 나타내는 서로 다른 확률적 가능성을 모두 고려하다 보면, 환자가 특정 질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50%’ 처럼 구체적인 수치로 계산되지 않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가능성 높다·낮다 → ‘백분율 범위’를 알려달라고 요청
의사가 ‘가능성이 높다·낮다’ ‘빈도가 잦다·드물다’ 같은 표현을 사용하는 나름의 사정은 있다. 그러나 환자로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의사는 ‘가능성이 크다’는 말로 70~80% 정도를 의미했는데, 환자는 이를 90~100% 정도로 오해할 소지도 있다. 일상적 표현이 전문 영역에서 사용될 땐 의미가 엄밀하게 재정의돼야 한다. 예를 들어, ‘일(work)’이란 단어는 물리학에서 ‘물체에 힘을 가했을 때 힘과 힘이 가해진 방향으로 움직인 거리를 곱한 물리량’이란 뜻으로 쓰인다. 그러나 ‘크다’ ‘작다’ ‘잦다’ ‘드물다’는 학술적 의미가 고정돼있지 않다. 같은 표현을 듣고도 사람마다 떠올리는 확률의 크기가 제각각인 이유다.
구어체 확률표현을 듣고서 가능성의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우면, 의사에게 추정되는 백분율(%) 범위를 대강이나마 알려달라고 요청하는 게 좋다. ‘O에 걸렸을 가능성이 꽤 높습니다. 대략 60~79%정도 됩니다’ 같은 식이다. 추상적인 표현을 사용한다고 무조건 ‘나쁜 설명’이 아니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다년간 환자를 대면해온 김찬웅 교수는 "’가능성이 높다’ 같은 질적 확률표현을 더 잘 이해하는 환자가 있는가 하면, 백분율(%) 같은 양적 확률표현을 선호하는 환자도 있다"며 “둘 다 적절히 사용해 환자의 이해를 돕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결국 중요한 건 환자와 의료진 간 소통이다. 환자는 잘 의사의 설명에서 모호하게 느껴지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되물어야 한다. 그래야 의사도 더 쉽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다시 설명할 수 있다.
◇의학의 ‘불확실성’은 환자에게 ‘불안’…의사와 환자 간 의사소통이 중요
확률표현은 진실이 무엇이다 단정할 수 없을 때 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은 분명 아니다. 가능한 선택지들을 꼽아볼 순 있지만, 그 중 무엇이 ‘실제’ 일지 확실치 않을 때다. 과학도 의학도 인간이 하는 일인 이상 불확실성(uncertainty)이 존재하는 건 불가피하다. 문제는 이 불확실성이 환자에겐 ‘불안’으로 다가온다는 데 있다.
환자를 객관적으로 진찰하는 의사는 불확실성도 객관적으로 대한다. 진단 검사 결과가 나와야 병에 걸렸는지 판단할 수 있으니, 환자더러 마음 편히 기다리라는 식이다. 치료 결과를 알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하니 그동안은 굳이 결과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기도 한다. 틀린 말은 없다. 검사 결과가 음성이든 양성이든, 치료 효과가 있든 없든, 미리 걱정하는 게 환자에게 득이 되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삶이 검사 결과나 치료 경과에 따라 좌우될 환자로선 태연하기 어렵다. 시간이 지나 결과가 판정될 때까지 불안함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실제로는 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도, 치료 효과가 있었더라도 공포 탓에 삶의 질이 떨어진다. 김찬웅 교수는 “의사가 제3자의 시각에서만 불확실성을 바라보지 말고,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동안 환자가 감당해야 할 고통까지도 이해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환자가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려 던지는 질문에 의사가 적극적으로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확실성은 ‘확신’과 ‘단정’이 아니라 ‘불안감에 대한 의사소통’으로 다뤄져야 한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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