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 선풍기는 더 비싸게 돌아간다 [빈부격,창④]

이소연 입력 2022. 8. 4. 06:02 수정 2022. 8. 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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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해영 디자이너 



중세 유럽에서는 창의 숫자로 세금을 매겼다. 창은 곧 부의 상징이었다. 그 후로 500여 년이 흐른 지금, 유럽에서 약 8900km 떨어진 한국은 어떨까. 어쩌면 여전히, 창이 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고 있지 않을까. “창 있는 방은 26만 원, 없는 방은 18만 원” 창은 곧 돈. 사람이 살아선 안 되는 공간에서조차 돈에 따라 삶의 등급이 나뉘고 있었다.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은 지난 6월부터 두 달간 서울·경기 지역의 고급주택과 아파트, 다세대 주택, 고시원, 쪽방을 돌며 이곳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를 통해 얻은 각종 데이터를 바탕으로 창에 비친 삶의 격차를 조명한다. 이번 기획을 통해 우리 사회가 창 없는 삶을 생각하고, 이들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편집자주]


쪽방촌 선풍기는 사계절 돌아간다. 여름을 버티기 위해, 그리고 환기를 위해. 창이 없거나, 있어도 기능을 하지 못하는 쪽방에서 선풍기는 공기 정화 시스템이다. 형광등도 마찬가지다. 불을 끄면 한낮에도 암흑이다. 잠자는 시간 외에는 불을 켤 수밖에 없다. 쪽방의 전기 계량기 숫자는 차곡차곡 올라간다. 창이 있다면 요금 오르는 속도는 느렸을까.

패시브하우스와 쪽방의 에너지 요금 고지서. 그래픽=정혜미 PD  

어떤 창을 쓰느냐에 따라 고지서 숫자가 달라진다. 부익부빈익빈 에너지 격차다.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은 두 가구의 4월 에너지 고지서를 확보해 살폈다. 도시가스와 전기 요금을 합친 에너지 비용은 A 가구 10만3440원, B 가구 2만3470원이다. 이를 가구당 1인으로 나눠 살펴보면, 각각 3만4480원과 2만3470원이 된다. B 가구가 지원 받은 기초생활수급자 할인(6600원)을 감안하면, 3만70원으로 폭이 더 좁아진다.

에너지 비용은 단 4410원 차이다. 그러나 두 가구의 상황은 다르다. A 가구는 경기 양평의 2층짜리 42평 단독주택(139㎡). B 가구는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2평(6.6㎡) 남짓한 쪽방이다. 주거 면적은 21배 차이지만, 도시가스 요금은 약 2배 차이에 불과하다.

경기 양평의 2층짜리 단독주택. 박성일 선아키텍처 소장 부부와 자녀의 보금자리다. 이재우 사진작가 

A 가구는 3.2ℓ(리터) ‘패시브하우스’다. 패시브하우스는 집안의 열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차단한 주택이다. 이 주택의 1㎡당 1년 동안 필요한 난방에너지는 등유 3.2리터라는 뜻이다. 폴리염화비닐(PVC) 시스템창호에 47㎜ 저방사(로이) 삼중 유리를 사용했다. 시스템창호는 단열 성능을 최대로 끌어올린 창이다. 로이유리는 외부 열을 막는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거주자 윤모씨의 도시가스 요금 고지서.    사진=민수미 기자

반면 B 가구는 40년 넘은 벽돌주택이다. 집의 연식이 오래될수록 창의 성능은 떨어진다. 창으로 내리쬐는 햇빛은 난방비를 절약하는 에너지원이 되지만, B 가구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 한여름 열기와 묵은 공기 등을 내보내기 위해 선풍기도 종일 돌려야 한다.

경기 광주의 한 고급주택 외부(왼쪽)와 내부(오른쪽) 창을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했다. 외부 온도 40도, 내부 온도는 26.3도다.    사진=이소연 기자   

에너지 격차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창은 에너지 소비에 영향을 준다. 내·외부 온도 차가 크다면 내부의 단열이 잘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형광등을 켤 필요 없이 조도가 높으면 전기요금을 아낄 수 있다. 따뜻한 햇살이 잘 들어올수록 난방에너지는 절약된다. 창을 열어 공기질이 쉽게 개선된다면 별다른 환기장치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고급주택과 빈곤 주거는 내·외부 온도 차, 조도, 공기질에서 차이를 보였다. 지난 6월 방문한 경기 광주의 4층짜리 고급 단독주택(300.82㎡). 커다란 창으로 햇살이 쏟아졌다. 불을 켜지 않아도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환했다. 창의 총면적은 99.15㎡. 가장 큰 창은 가로 3.8m, 세로 2.2m다. 조도는 1000lx 이상이다. 1000lx는 전자부품조립 등 정밀 작업이 가능한 밝기다. 냉방기기를 작동하지 않은 상태에서 측정한 내부 온도는 25.6도다. 이날 최고 기온보다 4.5도 낮았다. 환기는 손쉬웠다. 창을 열기 전 이산화탄소 농도는 784ppm이었으나, 5분 환기 후 434ppm으로 낮아졌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평균 농도는 400ppm이다. 또 다른 고급주택의 외부와 내부 열화상 온도 차이는 20도에 육박했다.

서울 영등포의 한 쪽방. 좁은 창으로는 열기가 빠져나가지 않아 선풍기 3대를 틀고 식사한다.    사진=이소연 기자


종로구 창신동의 한 쪽방(4.2㎡). 배모(62·여)씨의 집이다. 배씨의 창은 가로 0.6m, 세로 0.4m, 복도를 향해 난 내창이다. 햇살과 바람 한 점 들기 어렵다. 조명을 끄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방 내부 기온은 31.1도로 이날 최고기온(32.6도)보다 약간 낮았다. 인터뷰를 진행한 40여분간 창과 문을 모두 열어놓은 상태였지만, 공기질은 점점 탁해졌다. 712ppm으로 시작했던 이산화탄소 농도는 1174ppm까지 올라갔다.

서울 동작구·관악구 고시원의 내부 기온은 이날 최고 기온을 1~2도 이상 웃돌았다. 100㎜의 비가 내린 탓에 습도는 70~80%에 달했다. 천장에 환기 장치가 마련된 고시원만이 60%의 습도를 유지했다. 조명을 끄고 측정한 조도는 0~18lx. 창고등으로도 부족한 조도다. 창을 5분간 연 후 측정한 이산화탄소 농도는 767ppm~1318ppm이다. 이산화탄소 실내 농도 기준은 1000ppm 이하다. 창문 개폐 면적이 손바닥 한 뼘에 불과한 곳도 있었다.








도움 한국언론진흥재단-세명대 기획탐사 디플로마 과정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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