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드는 한국, 최악은 이태원.."24시간 전화벨 울리는 셈"

강찬수 2022. 8. 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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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등 대도시에서는 심야 시간대에도 차량 통행이 많아 야간 소음이 기준치를 초과하는 경우가 많다. 강찬수 기자

요즘 열대야 탓에 밤잠 이루기 힘드시죠. 전기 요금 걱정에 매일 밤새도록 에어컨을 틀어 놓을 수도 없어서 대신 창문을 활짝 열고 선풍기 바람에 의존해 잠을 청하게 됩니다.

문제는 소음입니다. 낮에는 말할 것도 없고 한밤에도, 새벽에도 창문을 통해 시끄러운 소리까지 쏟아져 들어옵니다. 자동차 달리는 소리에 시도 때도 없이 우는 매미 울음소리, 새벽 상품 배송 차량 엔진 소음, 새벽 재활용 분리수거 때 들려오는 유리병·깡통 부딪히는 소리…. 잠이 들었다가도 깨기 일쑤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우는 매미. 여름철 소음을 심하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강찬수 기자

환경부는 비(非)도로 일반 주거지역 기준으로 전국 주요 도시의 소음도가 낮에는 52~57 데시벨(㏈), 밤에는 48~50㏈이라고 발표하고 있습니다. 이 수치만 보면 일반 주거지역 기준치 낮(오전 6시~오후 10시) 55㏈, 밤(오후 10시~오전 6시) 45㏈을 초과했지만, 소음이 그리 심하지 않아 보입니다. 실제로 그럴까요?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환경부 환경백서에서 제시한 전국 주요도시 소음도. 비도로 일반지역 '나'지역의 야간 소음 기준인 45dB과 비교한 수치다.

환경부에서 운영하는 국가 소음 정보시스템이란 게 있습니다. 여기서는 전국 70여 곳의 실시간 소음 측정치를 1시간 단위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중앙일보는 지난 1일 오전 11시부터 2일 오전 10시까지 서울·인천·수원 등 수도권 17곳의 실시간 데이터를 확인했습니다.


수도권 16곳 수면장애 우려 수준


지난달 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압구정 로데오거리에서 경찰이 음주운전 단속을 하고 있다. 늦은 시간에도 사람과 차량 통행이 많다. 연합뉴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C 호텔 인근 측정 지점에서는 2일 오전 9시 최고치인 76.64㏈을 기록했고, 최저치는 이날 오전 3시에 측정된 71.63㏈이었습니다. 새벽 시간에도 70㏈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루 전체 평균은 75㏈, 밤 평균이 73.8㏈이나 됐습니다. 온종일 옆에서 전화벨이 울리는 것과 같은 수준의 소음입니다. 이태원동 지점은 도로변 '가' 지역으로 기준치가 낮 65㏈, 밤 55㏈인데, 이를 크게 초과한 것입니다.

서초구 반포본동(63.33~75.67㏈), 강남구 압구정동(69.79~72.05㏈)·도곡동(68.73~73㏈), 서대문구 북아현동(69.33~74.52㏈), 성북구 종암동(67.72~74.87㏈) 등도 새벽 시간 최저치가 70㏈ 아래로 내려가는 것만 제외하면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이들 측정지점은 24시간 평균도 70㏈ 이상이었고, 밤 평균도 67.7~71.3㏈을 기록했습니다.

동대문구 회기동(64.3~70.79㏈)이나 은평구 불광동(63.22~66.89㏈)은 조금 나았지만, 밤 평균이 65㏈ 안팎이었습니다. 불광동은 비도로 일반 '나' 지역으로 분류되는데, 기준치(낮 55㏈, 밤 45㏈)를 크게 초과했습니다.

인천 지역은 서울보다 상황이 조금 나아 보입니다. 만수동·용현동·연수동은 하루 평균치가 66.4~68.7㏈로 나타났는데, 역시 기준치(낮 65㏈, 밤 55㏈)를 초과했습니다.
인천 남구 학익2동은 밤 소음이 평균 62.4㏈로 기준치보다 높았습니다. 인천 남동구 논현동의 경우 일반 '가' 지역으로 분류되는데, 평균값 65.9㏈은 기준치(낮 50㏈, 밤 40㏈)를 훨씬 웃돌았습니다.

경기도 수원시는 화서·영화·권선·영통동 4개 지점은 24시간 평균이 63.7~69.8㏈, 밤 평균은 56.7~67.2㏈이었습니다. 기준치(낮 65㏈, 밤 55㏈)를 초과했습니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결국 실시간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는 수도권 17곳 가운데 밤에 소음 기준치(55㏈)를 만족하는 곳은 없었습니다.

수원 영통동을 빼면 나머지 16곳은 밤 평균치가 60㏈, 즉 수면 장애가 시작되는 수준보다 높았습니다.
실제 집안 침대 위에서 느끼는 소음도는 이 수준보다는 낮겠지만, 수도권 밤 소음이 심각한 것은 분명합니다.


지방 대도시도 밤 소음 심해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촬영한 한반도 밤 사진. 서울 등 수도권은 물론 지방의 대도시도 밤에 야간조명이 환하다. 대도시는 사람 활동으로 인해 빛공해는 물론 야간 소음도 심한 편이다. 중앙포토
물론 이런 측정치는 국립환경과학원 등 전문가 검토를 거쳐야 확정이 됩니다. 기기 이상 등 잘못 측정될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확정된 자료는 어떨까요? 서울 이태원동과 불광동의 지난해 8월 한 달 자료를 시간대별로 분석했습니다.

지난해 8월 이태원동의 24시간 평균 소음도는 74.7㏈, 밤 평균 소음도는 72.6㏈이었습니다. 오전 4시에 69.7㏈로 잠깐 70㏈ 아래로 내려가는 것 외에는 지난 1~2일 측정한 것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불광동의 경우 24시간 평균 65㏈, 밤 평균 61.8㏈이었습니다. 지난 1~2일보다 소음이 약간 덜했지만, 기준치를 크게 초과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수도권의 시끄러운 밤은 특정한 하루가 아니라 여름 내내, 일 년 내내 이어진다고 봐야 할 겁니다.

수도권을 벗어나면 사정은 조금 나아지지만, 소음 피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2일 오전 1~2시 부산 수영구 광안동 등 3개 측정지점에서는 55.5~64.7㏈이 측정됐습니다. 낮에도 70㏈을 오르내립니다.
대구도 2일 오전 1~2시 동산동에서는 66.6~67.8㏈을 기록했고, 오전 10시에는 75.5㏈을 기록했습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지난해 8월 소음도 측정 데이터를 시간대별로 재구성해서 24시간 주기의 도시 환경소음 발생 패턴을 살펴봤다. 서울 이태원동 도로는 거의 24시간 내내 소음이 심하고, 세종 조치원읍 신흥리 아파트 단지는 낮에는 소음이 심했지만 밤에는 소음이 크게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다. 학교 지역인 서울 불광동은 이태원동보다는 소음이 덜하지만 하루종일 소음이 심한 편이다. 울산 동구 동부동의 한 아파트 단지는 낮과 밤 모두 소음이 덜한 지역이다.

경남 창원 성산구 중앙동 C병원 앞은 낮 소음도가 80㏈에 육박합니다. 1일 오전 11시 77.89㏈, 2일 오전 10시 79.73㏈을 기록한 데 이어 3일 오전 10시에도 79.17㏈로 측정됐습니다. 거의 지하철 소음 수준입니다. 이곳은 일반 '가' 지역으로 기준치가 낮 50㏈입니다.


밤에는 소리가 옆으로 퍼져


지난달 6일 오후 열대야를 피해 서울 서초구 반포 한강공원으로 나왔던 시민들이 버스를 타고 귀가하고 있다. 뉴스1
전문가들은 밤에는 소음이 더 심하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밤에는 지표면이 공기보다 빨리 식기 때문에 소리가 위로 상승하기보다는 옆으로 멀리 퍼집니다. 밤에는 소리가 직진하지 않고 회절(꺾임)하기 때문입니다. 도로와 아파트 사이 거리가 30m라고 했을 때, 낮에는 아파트 12층 정도가 가장 시끄러운 층이지만, 밤에는 그보다 낮은 층에서 더 큰 소음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소음 분야 전문가 강대준 박사(전 국립환경과학원 연구원)는 "밤에도 소음이 줄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 교통량이 많기 때문이고, 서울 등 대도시는 인구밀도가 높고 물동량도 많아 소음 피해가 크다"고 말합니다.
강 박사는 "소음 피해를 줄이려면 도로와 나란히 아파트를 짓지 말아야 하고, 도로와 아파트 사이 거리를 50m 이상 두는 것이 필요하다"며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도로에 접한 쪽은 주거용이 아닌 상업용 건물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저소음 타이어 [자료: 환경부]

환경부 생활환경과 관계자는 "교통 소음으로 피해가 우려되는 지역은 지자체에서 교통 소음 관리지역으로 지정하고, 속도 제한과 우회 명령, 방음벽 설치 등 필요한 조처를 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자동차 고속 운행 시 타이어로부터 발생하는 소음을 근본적으로 줄이기 위해 자동차용 타이어에 대해 소음도를 표시하고 소음 허용기준을 준수하도록 하는 제도를 2020년 1월부터 도입했습니다.

서울시립대 환경공학과 장서일 교수는 "저소음 타이어가 전면 도입되면 2㏈가량 소음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는데, 결코 작은 게 아니다"며 "자동차·오토바이가 전기화하고 여기에 저소음 타이어까지 사용하면 소음이 어느 정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유럽, 소음으로 年 1만2000명 조기 사망


세계 주요 도시별 소음도 비교. [자료: 유엔환경계획(UNEP), 2022]
지난 2월 유엔 산하 환경 전문 기구인 유엔 환경계획(UNEP)은 '2022 프런티어 보고서'를 통해 인류를 위협하는 환경 위협으로 심한 도시 소음과 늘어나는 산불, 기후변화 등 세 가지를 지목했습니다.

소음 피해에는 만성적인 스트레스, 수면장애가 포함되고, 심각한 심장 질환과 당뇨병 등 대사 장애, 청력 손상, 정신 건강 악화 등으로 이어집니다.
소음 공해는 유럽연합(EU) 시민 5명 중 1명에게 영향을 주고 있고, EU 내에서만 매년 1만2000명의 조기 사망을 초래하고 있다고 합니다.

경희대 산업경영공학과 신정우 교수팀이 2018년 '종합 환경 과학(Science of the Total Environment)' 국제 저널 발표한 논문을 보면, 국내에서도 소음이 1㏈ 증가하면 입원 건수는 뇌혈관질환이 0.66%, 고혈압 0.17%, 심장질환 0.38%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소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소음을 줄이는 데 노력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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