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美전투기 아닌 한국 택했나..폴란드는 '나치 악몽' 기억했다 [Focus 인사이드]

남도현 2022. 8. 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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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구할 수 있는 전투기

1938년 9월 29일, 독일 뮌헨에 모인 영국ㆍ프랑스ㆍ이탈리아의 수뇌들은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를 차지하는 대신 아돌프 히틀러로부터 더 이상 영토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냈다. 약소국 주권을 무시한 이른바 뮌헨 협정이었다. 하지만 1939년 3월, 독일이 보헤미아-모라바를 직할 보호령으로, 슬로바키아를 독립시켜 괴뢰국으로 삼으면서 체코슬로바키아는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약속은 6개월 만에 깨졌다.

불과 6개월 만에 뮌헨 협정을 깨고 1939년 3월 15일 체코 프라하에 입성하는 독일군. 교전만 없었다 뿐이지 군대가 동원된 명백한 침략이었다. 이제 독일의 다음 목표는 폴란드가 되었다. 라디오 프라하


이제 독일의 다음 목표가 폴란드라는 사실은 명백해졌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폴란드는 영국,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군비 증강에 나섰다. 침략에 150만명을 투입할 예정인 독일군에게는 열세였어도 폴란드군 또한 100만명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강군이었다. 야포의 질과 양도 부족하지 않았다. 기갑전력은 격차가 컸으나, 당시 독일군의 주력인 1호, 2호 전차는 방어력이 빈약해서 무조건 두려워할 상대가 아니었다.

문제는 항공 전력이었다. 당시 세계 최강을 자부하던 독일 공군은 2300대의 각종 최신 작전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폴란드 공군도 600대의 전투기ㆍ폭격기를 포함해서 1400대를 보유했지만, 문제는 대부분이 구식이라는 점이었다. 모두 국내 제작사인 PLZ에서 개발하고 생산한 것은 긍정적이었지만, 성능이 떨어졌다. 특히 제공권을 놓고 싸워야 할 P.11 전투기로 독일의 Bf-109 전투기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폴란드 공군의 주력인 PLZ P.11 전투기. 하지만 캐노피가 없는 구식 구조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독일의 주력인 메셔슈미트 Bf 109 전투기를 상대하기에는 성능이 부족했다. 위키피디아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잡은 이후 서서히 위기가 고조하고 있었음에도 위정자들이 권력 다툼에 매몰돼 군비 투자를 게을리한 결과였다. 당장 폴란드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해외에서 전투기ㆍ폭격기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당시 Bf-109와 대등하게 상대할 수 있는 전투기라면 1938년 8월부터 배치에 들어간 영국의 스핏파이어가 유일했다. 폴란드는 다급히 구매를 타진했으나 영국은 자국 물량이 우선이어서 1941년 이후에야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고심 끝에 폴란드는 스핏파이어보다 성능이 떨어져도 당장 공급이 가능한 전투기 확보에 나섰다. 그렇게 해서 1939년 8월 초에 프랑스와 M.S.406 전투기 120대 도입 계약을 맺었다. Bf-109에게는 열세지만, P.11보다는 좋기에 택한 차선책이었다. 그리고 계약을 맺은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8월 29일, 1차분 40대의 선적이 이루어졌는데 노르웨이 국적 화물선이 무기라는 이유로 수송을 거부하며 출항이 차일피일 미루어졌다.

그러던 9월 1일, 마침내 전쟁이 발발했다. 고군분투하던 폴란드군을 가장 괴롭게 만든 것은 예상대로 독일 공군이었다. P.11이 열심히 출격해서 저지에 나섰으나, 결국 제공권을 빼앗겼고 이후 하늘에서 쏟아지는 폭탄을 피할 수 없었다. 특히 폴란드의 항전 의지를 꺾기 위해 실시한 바르샤바 공습으로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 화물선은 9월 15일이 돼서야 우여곡절 끝에 출항했으나 폴란드로 직접 갈 방법이 없었다.

프랑스의 모랑솔니에 M.S.406 전투기는 한창 개발 중인 드와탱 D.520 전투기가 배치되면 2선으로 물러날 예정이었다. 물량에 여유가 있어 당장 급한 폴란드가 120기를 구매했지만 인도받지 못했다. 위키피디아


그래서 관계가 좋았던 루마니아를 통해서 보내려고 도착항을 콘스탄차로 바꾸어 향하던 중 폴란드가 항복하며 전쟁이 끝났다. 물론 40대의 M.S.406이 제때 도착했어도 전쟁의 판도를 바꾸기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한 것이 못내 아쉬울 수밖에 없었던 폴란드 조종사들은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폴란드에서는 도착하지 못했던 M.S.406이 두고두고 아쉬움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오래된 아쉬움을 달래 줄 희망이 되기를

지난달 27일 K2 전차,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를 생산하는 국내 업체들과 폴란드 정부 간에 무기 거래에 관한 기본협정이 체결되었다. 구체적인 세부 계약이 남아 있고 향후 변동 가능성도 충분하기에 우리 정부와 기업들은 공식 반응을 삼가며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는 중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도 당황했을 만큼 규모가 큰 데다 폴란드의 적극적인 대시에 힘입어 번갯불에 콩 볶듯이 일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2022년 7월 27일, 폴란드 현지에서 이루어진 국산 방산물자의 구매에 관한 기본협정식. 실제 도입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이 남아 있고 규모도 크다 보니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 중이다. 국방부 공동취재단


급하게 추진한 만큼 폴란드뿐 아니라 주변국에서도 여러 이야기가 나오는 중이다. 특히 48대를 구매하기로 한 FA-50에 대해서 말이 많은데, 부정적 반응도 상당하다. 이들의 주장을 크게 요약하자면 F-35나 F-16, 라팔, 유로파이터, 그리펜 같은 전투기가 있는데 어째서 FA-50인가라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전투기들의 작전 능력이 FA-50보다 뛰어난 것은 명백한 사실이어서 이런 반응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현재 서방 전투기의 수급 상황을 모르기에 나온 발언이다. 일단 거론된 전투기들은 원하는 시일 내에 도입이 불가능하다. 폴란드가 지난 2019년에 32대를 주문한 F-35만 해도 납품은 2025년 이후부터 5년 동안 순차적으로 이루어질 예정이다. F-16, 유로파이터는 생산라인이 닫히기 직전이고 라팔, 그리펜의 도입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 때문에 쓸만한 중고기를 획득하기도 전보다 어려워졌다.

그래서 옛 소련제 전투기의 퇴출과 F-35의 배치 전까지의 공백을 시급히 메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FA-50이다. 경공격기여서 작전 능력이 앞서 언급한 전투기에는 미치지 못하나, 만일 러시아의 침공이 있으면 본토 방어나 지상군 저지 같은 임무는 충분히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주력인 F-16과 향후 도입될 F-35의 조종사 양성에 상당히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점도 매력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마치 당장 스핏파이어를 도입할 수 없어 M.S.406으로 전력을 향상하려 했던 과거 사례의 데자뷔라 할 수 있다. 실제로 FA-50 도입을 찬성 의견 중에는 구해 놓고도 도착이 늦어 사용하지 못했던 M.S.406을 거론하며 최대한 빨리 FA-50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아무리 좋은 무기라도 필요할 때 사용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런 점에서 FA-50은 현재 폴란드에게 시의적절한 무기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폴란드는 물론 우리도 불과 6개월 전까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면서 벌어진 결과다. 그만큼 폴란드가 러시아에 대해 느끼는 위기의식은 대단하다.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라는 동맹체가 있음에도 폴란드가 불안해하는 이유는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지난 1939년에도 영국과 프랑스는 동맹이었지만 정작 독일이 침략했을 때 자를란트로 제한적인 진군을 했던 정도를 제외하면 도움을 준 것이 없었다.

폴란드가 구매할 예정인 FA-50 경공격기. 제때 공급이 이루어져서 M.S.406에 대한 폴란드의 오래된 아쉬움까지 함께 풀어주기를 바란다. KAI


그래서 폴란드는 현재도 나토와 별개로 스스로 지킬 힘을 최대한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뒤에서 백업해주어야 할 독일의 태도가 신뢰를 주지 못하는 데다 불과 80여 년 전에 비참한 망국을 경험했기에 조바심이 큰 것은 당연하다. 갑자기 이루어진 거래지만 FA-50이 원하는 시일 안에 공급이 이루어져서 폴란드에게 도움이 되고 M.S.406에 대해 간직해 온 오래된 아쉬움까지 함께 풀어주기를 바란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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