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자살, 사회적 사건

2022. 8. 4.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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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조선대 교수·소설가)


초등학생 어린이를 포함한 한 가족의 실종 사건이 자살로 밝혀지면서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보도에 따르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가장이 초등학생 딸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아내와 함께 차를 몰아 바다로 들어갔다고 한다. 이와 유사한 사건이 심심찮게 일어났다. 개인의 자살도 그렇지만 자발적 선택을 할 수 없는 미성년 가족이 포함된 가족 구성원의 동반 자살은 특히 안타까운데, 그 행위 안에는 명백히 타살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인 행위에 대한 분노는 죽은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제대로 표현되지 못하곤 한다.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불가침 영역으로서의 생명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자녀가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는 말을 흔히 한다. 누가 이 말을 부정할 수 있을까. 아주 많이 양보해서 자녀를 부모의 소유라고 가정한다고 해도, 그 생명은 절대로 부모의 것이 아니다. 생명은 소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누구든 마찬가지다. 내가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오만이거나 난센스다. 실은 생명이 나를 가지고 있다. 생명이 나를 붙들고 나를 살게 한다. 생명이 내 소유인 것이 아니라 내가 생명의 소유다. 생명은 불가침의 영역이다.

한국은 2003년 이후 현재까지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20년 한 해에 인구 10만명당 25.7명이 자살을 했다. OECD 평균의 2.2배에 이른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해마다 1만3000명 내외다. 2000년대에 들어 10만명당 자살로 인한 사망자가 20명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있다.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나라의 위상이 높아지는데도 불행한 사람들이 늘고 있다면 이걸 사회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자살을 선택한다. 경제적 요인과 정신적 요인들이 주로 언급되는데, 그것이 자살을 개인의 특별한 사연으로 축소하게 하는 빌미를 제공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예컨대 사회 일반의 문제가 아니라 특이한 사정을 가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포르노 대하듯 은밀하고 조심스럽게 다루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는 실제보다 작게 보인다.

자살 사망자가 남긴 단서를 통해 자살의 원인을 찾아내는 심리부검 연구자들은 자살에는 아주 많은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알려준다. 사회는 개인의 모든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개인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자살만은 예외라고 한다면 그보다 이상한 말도 없을 것이다. 자살은 개인의 사적인 행동이 아니라 사회적 사건이다.

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는 다른 사망 원인과 비교할 때 압도적으로 많다. 예컨대 2020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3947명이었다. 작년 한 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코로나로 사망한 사람은 4708명이었다. 한 해 자살로 세상을 떠난 사람의 숫자는 이보다 세 배쯤 많다.

교통사고의 예방을 위한 각종 캠페인과 정책들, 그리고 코로나 방역을 위해 들인 국가적 조치들과 비교해 보면 우리 사회가 자살 문제를 얼마나 소홀히 다루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코로나 초기부터 나라는 거리두기와 자가격리 등 비상 체제로 대응했다. 그렇게 철저하게 방역을 했기 때문에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사망률을 이만큼 낮췄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우리 사회는 또 매우 적극적인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그만큼 위험성이 높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저 통계는 자살 문제가 교통사고나 코로나보다 더 심각하다는 걸 가리키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에는 더 엄하고 철저하게 대응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교통사고나 전염병과 달리 자살은 자살한 사람 개인의 문제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심리부검’의 저자인 법의학자 서종한은 ‘자살이라는 이름의 연쇄살인범’이라는 표현을 썼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사명이라면 국민의 생명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이 문제에 코로나 방역을 할 때와 같은 비상한 자세로 나서야 하는 게 아닐까. 예컨대 질병관리청 같은 국가적 기구라도 만들어서 이 ‘연쇄살인범’에 대처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이승우(조선대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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