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 대체복무 심사, 거짓말로 병역 못 빠지게 꼼꼼히 따진다
[대체복무 리포트] 심사부터 복무까지 어떻게
2018년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무죄 취지 판결을 내리자 온라인에서는 여호와의증인 가입 문의 글이 이어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법원 판결을 악용하려는 목적으로 특정 종교 신도가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대체복무제가 시행 중인 현재 이런 우려는 현실이 됐을까.
여호와의증인에 따르면 대체역법이 통과된 2020년 이후 증가한 신도 수는 3340명. 이 중 만19세 이상 미필 남성은 95명으로 전체 증가 인원의 2.8%에 해당한다. 여호와의증인 관계자는 “20대 미필 남성 신도의 증가 수는 인구 비율과 유사하거나 이에 못 미친다. 유의미한 신도 수 증가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교리 교육과 수혈 거부 각서 등이 필요해 단순 병역 기피를 위해 교인이 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신도 됐다고 인정 못받아
단순히 신도가 됐다고 해서 ‘양심’을 인정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대체역 심사위원회(국방부·법무부 등 추천 29명 구성)의 검증을 통과해야 한다. ①사실조사 ②사전심사 ③전원회의 3단계 심사다.
조사를 거친 신청인은 사전 심사위원회 면접을 거친 뒤 전원회의에서 29명 중 과반 출석, 과반 찬성을 거쳐야 대체복무 대상자로 편입된다.
올해 심사를 받은 백민우(21)씨는 “SNS 구독 목록까지 확인하더라. 추가 질문이 계속되고 위원들에게 믿음을 소명하다 보니 긴장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대체역 신청자 수는 2021년 상반기 211명, 하반기 363명, 2022년 상반기 142명으로 증가세를 보이지 않아 ‘대체복무 쏠림’ 현상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심사위원 오재창 변호사(법무부 추천)는 “현 제도는 징벌적 수준으로, 기피자가 나오기 어렵다. 서류·면담을 통해 여러 번 조사해 말로 속여 심사를 통과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평가했다. 고등군사법원장 출신 최재석 변호사(국방부 추천)는 “시행 초기 엄격한 심사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면서 “헌재 결정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쪽과 유연하게 해석하는 쪽이 맞선다”고 했다.
제도 시행 이후 지난 5월까지 심사 결과에 따르면, 인용 2311건, 기각 3건, 각하 3건이었다. 인용된 2311건 중 종교적 사유는 2300건, 개인적 신념은 11건이다. 심사위원간 이견이 있었지만 인용된 사례로는 ①평화주의 신념 ②동물해방 신념 ③학교폭력을 가한 여호와증인 신도 등이 있었다. 기각 사례는 ①디지털 성범죄 형사재판에 연루된 여호와의증인 신도 ②사회주의 신념 등이다.
대체역 편입 이후에는 현역병보다 긴 복무 대기를 견뎌야 한다. 제도 초기 대기자가 많고 합숙 시설이 부족해 적체 현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말 기준(병무청) 대체역 편입 인원 2271명 중 1407명이 복무 대기자다. 이 중 28세 이상은 404명이다.
학원 강사 송민(27)씨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연속 3번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그는 “이렇게 대기가 길어질 줄 몰랐다. 가족 부양 부담이 있어 얼른 복무를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 송씨에 따르면 하반기 지원은 올해 7·10·11월 입소자 106명을 뽑았는데 600명가량 지원했다고 한다.
지난 모집에서 탈락한 기혼자 박경찬(27)씨도 “7년간 재판과 심사를 거친 뒤 복무를 시작하나 싶었는데 떨어졌다. 병무청이 직권 소집할 때까지 2년은 더 기다릴 것 같다”고 했다.
병무청 관계자는 “올해 전체 경쟁률은 2.3 대 1이 맞지만, 입소일을 병무청이 정하는 ‘직권 소집’과 신청인이 정하는 ‘본인선택 소집’ 수치를 합한 결과로 본인선택 소집 경쟁률은 더 높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이어 “2024년 이후에는 입소 지연이 점차 해소될 것으로 예측한다”고 했다.
법무부 “2025년까지 1680명 복무 추진”
법무부에 따르면 전국 18개 교도소에서 총 887명이 복무 중이고 기관별 복무 인원은 50명 내외다. 법무부는 2025년까지 34개 기관에 합숙시설을 만들어 1680명이 복무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박문언 국방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합숙을 고집할 필요 없이 복지 시설 등 복무지 확대를 고민해야 한다”면서 “병역 자원 감소로 장기적으로 사회복무요원 등이 속한 보충역제 축소는 피할 수 없다. 이런 인력 감소를 대체복무자가 보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체역 심사위 초대 위원장을 맡았던 진석용 대전대 교수는 “현 제도의 부작용이 없다면 징벌적 요소는 줄여야 한다. 기간을 육군 대비 1.5배(현재는 2배)로 줄이거나 2년 합숙, 1년 출퇴근 등 탄력적인 복무 방식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현역병 처우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체복무제를 악용하는 등 일부의 ‘가짜 양심’ 우려에 대해 진 교수는 “누군가 신앙과 신념이 있으면 그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세례·봉사 등 행적을 심사한다. 각종 증빙 서류를 포함해 70쪽 내외를 29명이 심사할 정도로 꼼꼼하고 가혹하게 심사한다”고 말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영근·여성국 기자 lee.you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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