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유최안이 건넨 오만 원권.. 파바 노동자 울린 그 돈
[김성욱 기자]
▲ 지난 7월 28일 밤, 유최안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부지회장이 같은 병원에서 만난 나은경 파리바게뜨 서울분회장에게 건넨 오만원짜리 두장. |
ⓒ 나은경 |
"퇴원하기 전날 늦은 밤에... 갑자기 간호사 선생님이 오시더니 '유최안님 아세요? 잠깐 밖에서 보자시네요' 하시는 거예요. 무슨 일인가 싶어 병실 문 앞에 나갔더니 유최안 동지가 있었어요. 파리바게뜨도 힘든데 꼭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내일 퇴원하신다는데 드릴 게 이것밖에 없다면서... 투쟁기금으로라도 쓰라고 오만 원짜리 두 장을 건네주시더라고요."
나은경 파리바게뜨 노조 서울분회장은 7월 28일 병원에서의 마지막 밤을 회상하며 울었다. 파리바게뜨에 ▲제빵기사 휴식권 보장 ▲민주노조 파괴 중단 ▲임금차별 폐지 사회적 합의 이행 등을 촉구하며 7월 4일부터 23일간 단식 농성을 벌인 나 분회장은 건강 악화로 결국 7월 26일 녹색병원에 실려 가 치료를 받고 있었다.
사흘째 치료를 받고 퇴원을 앞둔 그날 저녁, 나 분회장은 녹색병원 6층에서 유최안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과 우연히 마주쳤다. 유 부지회장은 앞서 지난 6월 22일부터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가로·세로·높이 1미터 철제 구조물에 들어가 31일 동안 감옥 농성을 벌였다. 그 역시 7월 25일부터 녹색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던 중이었다.
나 분회장은 "거통고지회(대우조선 하청노조) 싸움이 힘들었을 때 서울 단식농성장에 연대 방문을 한 적은 있지만, 유 부지회장을 직접 본 건 처음이었다"라며 "서로의 투쟁을 얘기하면서 응원했다. 노동자들이 이렇게 자기 몸을 혹사해가면서 싸워야 하는 세상이 빨리 없어져야 한다면서 공감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각자의 병실로 돌아간 두 노동자는 몇 시간 뒤 다시 만났다. 꼬깃꼬깃한 오만 원 짜리 두 장을 챙겨나온 유 부지회장이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나 분회장을 불러낸 거였다. 나 분회장은 수액을 꽂은 채, 유 부지회장은 휠체어에 탄 채였다.
나 분회장과 함께 단식 농성을 하던 최유경 파리바게뜨 수석부지회장은 3일에도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벌써 31일째다. 나 분회장은 "미안해하지 말라고 하는데 최 수석부지회장을 볼 때마다 미안하다. 홀로 남겨둔 것 같아서..."라며 또 한번 울먹였다. 나 분회장을 이날 전화로 인터뷰했다.
▲ 나은경 파리바게뜨 노조 서울분회장이 단식 농성을 하고 있는 모습(가장 왼쪽). 옆으로 박수호 파리바게뜨 노조 대의원, 최유견 파리바게뜨 수석부지회장이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
ⓒ 파리바게뜨노조 |
- 현재 몸 상태는.
"많이 좋아졌다. 7월 29일 퇴원한 뒤 비정규노동자 쉼터 '꿀잠'에서 지내고 있다. 보식(단식 후 정상적인 식사를 할 수 있을 때까지의 회복 과정) 중인데 많은 분들이 챙겨주셔서 감사히 잘 있다."
- 녹색병원에서 유최안 대우조선 하청노조 부지회장을 만났다고.
"입원하던 첫날(7월 26일) 병원 로비 멀리서 유최안 동지를 처음 봤다. 그땐 주변 동료들과 있어서 인사는 못 하고 지나쳤다. 그러다 퇴원 전날(7월 28일), 의사 선생님이 장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하셔서 수액을 꽂고 병원 복도를 돌아다니고 있는데 누가 휠체어에 앉아계시는 거다. 봤더니 유최안 동지였다. 반가운 마음에 처음 인사를 나눴다. 알고 보니 같은 층에, 심지어 옆 호실이었다(웃음)."
- 무슨 대화를 나눴나.
"서로 건강 안부를 물었다. 유 부지회장은 철창 안에만 있었으니 근육 같은 걸 못 움직이고 경직된 상태라고 하더라. 생각보다 재활이 오래 걸려서 걱정이라고 했고... 조선소 노동자들도 몸과 체력으로 일하는 분들이다 보니까, 재활이 더 중요한 것 같더라.
그러다 자연스럽게 서로의 투쟁 얘기로 넘어갔다. 저희는 양재동 SPC 본사 앞에서 농성을 하다가 여의도 민주당·정의당 당사로 단식농성장을 옮겼는데(7월 18일),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들이 상경해 단식을 하던 여의도 산업은행 본사와도 가까웠다(대우조선 하청 노동자 3명은 7월 14일부터 파업이 종료된 7월 22일까지 9일간 단식 농성을 벌였다). 자연스럽게 연대 방문을 갔었다. 그때 얘기도 하고, 단식하는 분들께 '유최안 동지는 어떠냐'고 물어보면 '유최안 동지는 철창 안에서 손도 제대로 못 펴면서도 자기는 괜찮다고, 동지들이 힘내라고만 한다'는 얘기도 들었었다고. 그때 눈물 나서 혼났었다고 얘기도 하고...
그렇게 저는 내일 퇴원한다고 인사까지 하고 헤어졌는데, 몇 시간 뒤에 간호사 선생님이 나를 부르는 거다. 유최안님이 잠깐 보자신다고. 나갔더니 유최안 동지가 '내일 퇴원하시는데 해드릴 건 없고 이거라도 받으시라'면서 오만 원짜리 두 장을 건네더라. 그래도 거통고(대우조선 하청노조)는 쟁의권 획득하고 파업하는 거였는데, 파리바게뜨는 다수노조가 아니라 쟁의권도 못 얻고 개인 연차를 내고 단식 농성하느라 더 어렵겠다고... 조선소처럼 다 같이 일하는 게 아니라 제빵사들은 개개인이 나눠져 일하니 노동조합하기도 더 힘들지 않냐면서..."
- 돈을 받았나.
"마음만으로도 감사하다고, 간부들에게 그 마음 잘 전달하겠다고 몇 번을 사양했는데. 유최안 동지가 '이거 받고 꼭 승리하셔야 한다'고 해서 결국 못 이기고 받았다(웃음). 근데 받고 나니 나도 가만히 못 있겠더라. 나도 뭐라도 드려야지... 근데 단식 끝나고 바로 병원에 온 터라 수중에 현금이 한 푼도 없었다. 수액 맞고 있는데 돈 뽑으러 나가지도 못하니 미치겠더라.
다행히 퇴원 전이라고 간호사 선생님이 새벽에 수액 바늘을 뽑아주셨다. 수액 빼자마자 편의점에 가서 나도 십만 원을 찾았다. 수속 다 마치고 간호사 선생님께 조용히 전달을 부탁드렸다. 짐 다 챙기고 병실에서 나와 엘리베이터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유최안 동지가 또 서둘러 나오는 거다. 감사하다고. 잘 받겠다고. 나는 '급하게 드리느라 봉투도 없이 죄송하다'고 하고. 그렇게 결국 서로 웃고, 건강하게 퇴원하시라고 인사하고 병원을 나왔다."
▲ 대우조선 하청노조가 단식 농성 중인 최유경 파리바게뜨 노조 수석부지회장을 연대 방문한 모습. |
ⓒ 파리바게뜨노조 |
- 최유경 파리바게뜨노조 수석부지회장은 31일째 여전히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사실 너무 미안하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들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내 체력이 안 돼서 더 함께 못 한 거니까. 혼자 남겨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엊그제도 다녀왔는데 최 수석부지회장이 열이 많이 났다. 병원에서도 혈액 검사를 했는데 상태가 안 좋다고 이제 그만 접으라고 말리는데도 최 수석부지회장이 버티고 있다. 매일매일 목소리가 달라진다. 힘없는 목소리를 들으면 정말... 도대체 어디까지 해야 회사가 우리 말을 들어줄까. 이미 임종린 지회장이 53일이나 단식(3월 28일부터 5월 19일까지)을 했다. 그래도 해결이 안 돼서 우리가 30일 넘게 단식하고 있는데..."
- 파리바게뜨 단식이 장기화되는 걸 보고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중에선 '우리가 관심을 많이 받는 바람에 파리바게뜨 문제가 더 부각되지 못한 것 같다'고 하는 이도 있더라.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너무 많은 시민들이 파리바게뜨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셨다. SPC 불매운동도 노조에서 제안한 적이 없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여주셨다. 거통고 동지들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에도 서울까지 와서 저희 농성장에 방문해주셨다. 저도 또 한 번 뵀다. 정말 감사했다. 힘이 났다.
싸움을 하면서 '연대'라는 말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거창한 게 아닌 것 같다. 사실 저도 이 싸움을 하기 전엔 주위를 둘러보지 못하고 살았다. 싸우면서 주위를 둘러보게 됐다. 이젠 투쟁하면서 관심 받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다. 지금도 파리바게뜨보다 훨씬 더 관심을 못 받은 채, 어렵게 투쟁하는 사업장들이 너무 많다. 그들과 함께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 사측과는 진전이 없나.
"전혀 없다. 오늘도 회사는 단식자들에게 출근 거부를 하고 있다며 내용증명을 보내왔다. 벌써 네 번째다. 휴가를 내고 단식농성을 한 건데도 이제 와서 휴가를 승인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를 징계하기 위한 작업이다. 뿐만이 아니다. 지난 7월 26일 정의당·민주당 중재로 사측이 노조와 만났지만, 뒤로는 우리를 상대로 양재동 본사 앞 농성천막 철거 가처분 신청을 냈다. 변한 게 없다. 우리를 기만하고 있다.
우리가 일할 땐 11시간 동안 빵만 만들다 점심도 못 먹고 퇴근하는 날도 있다. 물량 맞춘다는 책임감에서다. 우리는 우리가 다니는 직장을 조금이라도 좋은 환경으로 바꾸고 싶어서 이렇게 싸우고 있는 거다. 우리는 회사의 적이 아니다. 노동자다."
[관련 기사]
파리바게뜨 집단단식 23일차에 단식자 한 명 또 병원행 http://omn.kr/2000p
"죽어야 해결할 건가" 또 단식 내몰린 파리바게뜨 제빵사들 http://omn.kr/1zn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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