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민재 통역 교수의 편지 "아우라 대단한 김민재 선수님, 새로운 마라도나가 되길"

김정용 기자 2022. 8. 3.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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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 데베네디티스 나폴리동양학대 교수. 본인 제공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유창한 한국어 실력으로 김민재 기자회견의 신스틸러가 된 안드레아 데베네디티스 나폴리동양학대 한국학 책임 교수. 그에게 받아 본 이메일은 말 이상으로 유창했다.


지난 7월 30일(한국시간) 김민재는 나폴리 전지훈련 중 첫 기자회견을 가졌다. 언어별 통역이 없는 나폴리 구단은 그 지역에서 소문난 한국어 전문가를 섭외했는데, 그 사람이 데베네디티스 교수였다. 이탈리아인이 고급 한국어를 구사하는 모습이 큰 화제를 모았다.


디베네디티스 교수는 한국어를 배운 걸 넘어 한국사 관련 연구를 해 온 학자다. 한국어 소설 여러 편을 이탈리아어로 번역해 현지에 내놓기도 했다. 지난 2000년 한국을 처음 방문한 이래 자연스럽게 실력을 갈고닦게 됐다. 통역 섭외를 받은 그의 고민은 한국어 실력이 아니라, 나폴리 사람으로서는 드물게도 축구팬이 아닌지라 축구 용어를 알아듣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디베네디티스 교수와 서면 인터뷰를 가졌다. 정갈한 답장이 그 자체로 디베네디티스 교수의 한국어 능력을 반영하고 있기에 수정, 편집 없이 그대로 공개한다. 집콕, 화이팅, 아르바이트 등 한국식 표현뿐 아니라 '하하'라는 의성어, 말줄임표까지 모두 데베네디티스 교수가 직접 작성해 보냈다.


Q 안녕하세요. 축구 기사를 읽는 독자들에게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나폴리 오리엔탈레 대학에서 한국학 책임 교수로 근무하고 있는, 안드레아 데 베네디띠스라고 합니다. (성이 길어서 매우 낯설게 들리실 것 같습니다.) 반갑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방면에 걸쳐 한국 문화 홍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한국 문학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Q 김민재 선수의 통역은 어떤 계기로 참여하시게 됐나요?
A 아주 우연이었습니다. 김민재 선수가 계약서에 서명한 직후에 구단 관계자한테서 메신저로 연락을 받았습니다. 기자회견 통역을 맡아 줄 수 있겠냐고 묻는데 저는 전문 통역이 아닌데다 축구에 대해 잘 몰라서, 사실 할까 말까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다 나폴리팀 팬이거든요. 대단히 중요한 일인데 이것을 그냥 흘려보내면 그냥 두지 않겠다는 식으로 강하게 압력을 가하더군요.


Q 축구와 관련된 일을 하셨던 기록은 없는데, 교수님께도 새로운 경험이었나요? 새로운 분야라 어려웠던 점도 있나요?
A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코비드(코로나19) 때문에 2년 간 '집콕'을 했기에 이제 운동을 본격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습니다만… 그렇다고 갑자기 이런 식으로 스포츠계에 던져질 줄은 몰랐습니다. 가족들은 매주 경기를 보고 축구를 대단히 좋아하는데 저는 축구를 하지도 않고 경기를 보지도 않아서 축구 전문 용어가 많이 나올까봐 불안했습니다. 다행히 질문과 답변에 많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Q 김민재는 원래 알고 계셨나요? 만나본 뒤 어떠셨나요?
A 김민재 선수님을 몰랐습니다. 나폴리팀의 영입 제안을 고려하고 계시다는 것만 알고 있었고… 만나 보니 김민재 선수가 발산하는 아우라가 대단했습니다. 저하고 신체적으로 완전히 상반된 타입이시죠. 만약 서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더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선수님은 카리스마가 있으시고 매력 있으신 분으로 보입니다. 얼른 팀에 적응해서 저희가 기대한 만큼 나폴리 팀에서 좋은 경기 하시면 좋겠습니다. 김민재 화이팅.


Q 한국에는 '나폴리 시민들이 김민재에게 엄청난 관심과 기대를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교수님도 실감하시나요, 아니면 약간 과장된 면이 있나요?
A 기자회견 끝난 다음에 밖에서 기다리는 팬들이 엄청나게 많았고 다 김민재 선수 사인을 받으려고 하더군요. 그래서 혹시 잡힐까봐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도망갔어요. 하하… 이것은 시작일 뿐이고 앞으로 관심이 점점 커져갈 텐데요. 한편으로 대단히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선수에게 지나치게 부담스럽지 않을까 걱정도 앞섭니다. 나폴리 팬들은 우상인 선수들을 영웅처럼 모시려는 경향이 있는데 수비수라도 김민재 선수 또한 새로운 마라도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Q 앞으로도 김민재 및 구단과 협업하실 계획이 있나요?
A 제가 도와드릴 만한 일이 생긴다면 달려가겠습니다. 그런데 김민재 선수님께서 젊고 스마트해서 아마 이태리어를 빨리 배우고 통역 없이도 잘 지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제자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을 텐데, 이번 통역에 대한 주위 반응은 어땠나요? 한국 유튜브에서 조회수 수십만 회를 기록하는 건 교수님께도 새로운 경험일 것 같습니다.
A 일단은 제가 스포츠 통역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것을 학교에서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나폴리 팀을 위해서 통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총장님께서 오히려 우리 학교 웹사이트를 통해서 공지해야 한다면서 대단히 기뻐하시더군요. 하하… 주변 사람들 상당수가 다 나폴리 축구팀 팬이라 대단히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 같습니다. 멋진 댓글과 칭찬을 많이 달아 주셨는데 격려 많이 되고 너무 감사드립니다.


Q 한류가 인기를 끌고 있고, 교수님은 이탈리아와 한국의 관계를 오래 고민해 오셨는데요. 한국 대표 축구선수의 이탈리아 인기팀 이적은 한류 속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A 한국 축구 선수의 이적이 나폴리 도시에 매우 중요하고 획기적인 일이 될 것 같아요. 외국에 나폴리에 대한 편견이 많은데 이것을 계기로 이 도시가 주목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탈리아 여러 도시에 살아봤지만 나폴리가 유일하게 진정한 이탈리아 문화를 아직까지 접할 수 있는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문제점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앞으로 많은 한국분들이 나폴리를 찾아오셨으면 좋겠습니다.
한국과 관련해서는 한국 문화 콘텐츠의 인기가 폭발적으로 늘었는데요. 정확한 데이터를 안 가지고 있지만 제가 느끼기로는 중국과 일본보다 훨씬 인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옛날에 한국어를 공부하러 한국에 간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저를 굉장히 이상한 사람으로 보았는데, 이제는 그때의 그 사람들이 부러운 시선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김민재(나폴리, 왼쪽)와 안드레아 데베네디티스 나폴리동양학대 교수. '칼초나폴리24' 유튜브 캡처

Q 개인적으로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가까운 지역 출신이시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나폴리를 응원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A 저는 개인적으로 축구를 안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한 팀을 꼽아야 한다면 나폴리죠. 그리고 나폴리 팬들의 열정이 어마어마합니다. 이번을 계기로 저도 축구팬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Q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축구는 어떤 의미인가요? 교수님에게도 유년 시절 축구에 대한 기억이 있나요?
A 축구는 떼려야 뗄 수 수 없을 것 같은 이탈리아의 한 부분입니다. 저만 빼놓고 주변 친구들이 다 축구를 하고, 또 축구 얘기를 하면서 자랐습니다. 저는 유일하게 우리 가족 안에서 축구에 관심이 없는 탓으로 평생 왕따로 지내왔습니다. 하하하.


Q 이탈리아에서 한국 축구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문에 적대적인 이미지인 것처럼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그런가요?
A 그건 오래된 일이고 그런 이미지가 사라진지도 오래된 것 같아요. 그런데 오히려 1966년에 이탈리아 국가 대표팀이 북한팀에 져서 월드컵에서 탈락한 것이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Q 김민재를 보기 위해 나폴리를 찾을 한국인들에게 팀을 하나 주신다면?
A 나폴리 홍보 대사가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만 나폴리에 꼭 오세요. 피자와 커피를 비롯하여 맛있는 음식이 많고 방문할 장소도 많습니다. 배를 타고 아름다운 카프리와 프로치다도 갔다 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Q 외국어 실력으로 화제인데 한국어를 잘 배운 비결이 있다면? 어떤 공부 또는 경험이 가장 도움을 줬나요?
A 한국어를 배운지 오래 되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 언어를 잘 배울 수 있는 비결을 아시는 분이 계신다면 저에게 비결을 알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한국어는 경희대학교에서 배웠는데 그때 잘 가르쳐 주신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약간 노력파이고 한국책을 많이 읽고 무척 좋아합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공부할 당시 아주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서 그 분들을 통해서 많이 배웠습니다.


Q 이탈리아어와 한국어의 격차는 매우 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김민재가 이탈리아어를 배우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할까요?
A 개인적으로 선수께서 어떤 스타일인지 모르겠지만 원래 운동하시는 남자분들이 비교적 말이 없고 무뚝뚝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런 면이 있다면 지장이 될 수 있습니다만, 김민재 선수는 스마트하셔서 잘 배우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젊은 나이에 이탈리아에 오셨기 때문에 더 금방 배우실 것 같습니다.


Q 현재 연구중이시거나 진행 중이신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해 주시겠어요?
A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몇 년 전부터 어학 교재 개발에 관심을 많이 쏟고 있습니다. 한국어 교재를 지속적으로 출판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한국사 책을 집필하고 싶습니다. 저 또한 계속 공부하고 연구해야 하겠지만 한국사를 잘 이해시킬 수 있는 책을 집필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대학교 때부터 한국에 대한 막연한 관심이 있었습니다. 저는 동양사를 공부하고 싶었지만 한국사에 대한 자료가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인터넷도 잘 사용하지 않았고 해서 정보를 찾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한국에 가서 한국사를 배우고 싶게 됐고 그 공백을 조금이라도 메우고 싶다는 야심찬 꿈을 꾸게 되었는데… 한국에 가서 역사를 공부해 보니 한국사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 능력 이상으로요. 이런 어려운 공부를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사진= 안드레아 데베네디티스 교수 제공, '칼초나폴리24'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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