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 "퍼즐 맞추듯 시나리오 작업..'오겜' '헌트' 믿을 수 없는 해"

임세정 2022. 8. 3.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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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헌트'로 감독 데뷔한 이정재 인터뷰

“막다른 길에 다다른 것 같아 포기할까 싶을 때도 있었고,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게 허황된 꿈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연기 생활을 하면서 마치 퍼즐을 맞추듯 글을 쓰고 캐릭터를 만들어 나갔다.”

영화 ‘헌트’로 감독 데뷔한 이정재.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오는 10일 개봉하는 영화 ‘헌트’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하는 이정재가 3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영화는 조직에 숨어든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해 서로를 의심하는 안기부 요원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가 ‘대한민국 1호 암살 작전’을 맞닥뜨리면서 각자의 신념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하게 되는 첩보 액션 드라마다.

30년 가까이 연기만 해 온 배우가 감독이 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이정재는 “스파이 장르의 특색을 살려야 했는데 처음 해보는 입장에서 직조된 듯 치밀한 시나리오를 쓰기가 어려웠다. 주제를 정하는 데 꽤 긴 시간 고민했고, 자료 조사와 팩트체크에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면서 “‘반전의 반전’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생기다보니 ‘내가 관객이라면 만족하지 못할 것 같다’ 생각이 들 때도 있었고, 영화의 재미를 더하는 볼거리는 어떻게 글에 녹여야 하는지도 고민이었다”고 털어놨다.

이정재 감독.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그는 시나리오 작업을 하는 4년 동안 7개의 작품을 촬영하는 바쁜 스케줄을 이어갔다. 이정재는 “혹시 중간에 그만두게 될까봐 거의 숨어서 글을 썼다. 써보니 마음이 차분해지기도 하고 연기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며 “캐릭터를 상상하고 생각을 확장하고 정리하는 것이 좋은 경험이었기 때문에 동료 배우들에게 연출은 몰라도 시나리오를 써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고 말했다.

영화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광주 민주화 운동, 군부 독재 등 한국 근현대사 속 사건들도 등장한다. 그는 “5년 전 국민들이 양극으로 나뉘어 대립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린 서로 싸우고 싶어하지 않는데 누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혹시 어떤 인물들이 정보를 가공해 우리를 대립하게 만들진 않았을까’ 생각했다”면서 “그러다보니 정보를 가공하고 공유하지 않는 시대는 1980년대였을 것이고, 그 시대라면 평호와 정도가 자신의 목표에 대한 의지를 굳혔겠다는 데 생각이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역사, 정치를 다루는 일인만큼 대중의 평가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이정재는 “그 시대와 주제에 대해 섣불리 영화화한다고 했을 때 비난받으면 연기 생활에도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두려움이 컸다”며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고민했고, 꿈에서라도 해결되면 좋겠다 싶었다. 자다가 일어나서 메모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1980년이란 배경 때문에 젊은층 관객이 영화에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그는 “10대, 20대 관객들이 봐도 충분히 이해하면서 즐길 수 있게 만들어야 해외 관객들도 이해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 작업했다”면서 “막상 칸에서 시사회를 했을 때 관객의 30% 정도는 당시 한국의 정치 상황을 몰라 영화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었다. 그렇다면 국내에서도 그 정도의 관객들이 공감하지 못할 수 있겠다 싶었고 칸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부터 각색 작업을 시작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도 전했다.

이정재 감독.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절친’ 정우성과 ‘태양은 없다’ 이후 23년 만에 같은 작품을 하게 돼 기쁘고 의미 있었지만 부담도 컸다. 정우성은 영화 출연 제의를 네 번이나 거절했다. 이정재는 “영화계의 많은 분들이 오래 전부터 ‘너희 둘 데리고 영화 찍어야 되는데’, ‘너희들 같이 뭐 좀 해 봐’ 하시면서 저희가 함께 나오는 영화를 빨리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해왔다”며 “함께 뭔가를 했을 때 흥행하지 못하면 작품성이라도 인정받아야 한다는 중압감이 굉장히 많았다. 연출도 하고 배우도 하면서 그 기대치를 뛰어넘기가 어렵다는 걸 우성씨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고 돌이켰다.

이어 “굳이 ‘정우성의 사고초려’ 이야기를 공개하는 이유는 저희가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일할 땐 사심으로 도와주지 않는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서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영화 '헌트'에서 안기부 요원 박평호를 연기한 이정재.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헌트’는 무엇보다 액션에 진심인 영화다. 이정재는 “임팩트가 강한, 잘 찍힌 액션 영화를 봤을 때 개인적으로 꽤나 재밌다는 생각을 해 왔다”며 “어떤 신에선 아이디어가, 어떤 신에선 힘과 박력이, 어떤 신에선 스케일이 돋보이도록 구분지어서 만들었다. 러닝타임 중 언제 배치할 것인지, 액션의 강도가 상승하는 듯한 느낌을 어떻게 줄 것인지 신경썼다”고 말했다.

정도와 평호 두 캐릭터는 초반부터 날을 세우고 중반엔 계단을 구르며 몸싸움을 하기도 한다. 그는 “이젠 몸도 무겁고 속도도 안나오고 힘들어서 액션신은 연기하기 싫다”며 “하지만 우성씨와 제가 친하다는 걸 대한민국 사람들이 다 알기 때문에, 대립각이 계속 커져야 관객들이 저희를 보면서 ‘청담동 부부’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며 웃었다.

영화 '헌트'의 주인공 박평호(이정재, 왼쪽)와 김정도(정우성).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그에게 2022년은 매우 특별한 해다. 감독 데뷔작이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돼 지난 5월 레드카펫을 밟았다. 다음달 열리는 제47회 토론토 국제영화제에도 초청받았다. 지난해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으로 올 초 미국 배우조합상(SAG)과 크리틱스초이스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월드스타’가 됐다. 다음달 열리는 에미상 후보에도 올라있다.

이정재는 “믿을 수 없는 사건이 벌어졌다”고 했다. 그는 “‘오징어 게임’이 해외에서 이렇게 인기가 많을 거라고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연기자 입장에서 한국어 연기가 외국인들에게 얼만큼 전달될까 고민이 많았다”면서 “그 장벽을 뛰어넘게 해준 건 역시 시나리오와 연출이었다. 황동혁 감독은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해외 시청자들도 즐겁게 볼 수 있는 요소들을 담았다고 했는데 그 자체가 훌륭했다. 한국 콘텐츠 발전에 중요한 시기인데 저와 동료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건 놀라운 기쁨”이라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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