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뛰는 중국, 갈라진 대만, 끼어든 일본.. 펠로시 트리거

김철오 2022. 8. 3.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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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관영매체 "대만과의 통일 촉진할 것"
대만 펠로시 환영 인파 한쪽엔 반대 시위
일본 "中 해상훈련 지점 우리 EEZ" 주장
차이잉원(오른쪽) 대만 총통이 3일 수도 타이베이 총통실에서 만난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에게 ‘특수대호운 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은 대만 방문의 성격을 ‘친선’으로 규정하면서 “무력에 의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길 원한다”고 말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3일 회담을 마치고 연 기자회견을 통해서다. 하지만 대만을 둘러싼 동아시아 정세는 펠로시 의장의 희망과 멀어졌다.

중국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계기로 연일 주변 해상·상공에서 무력시위를 펼치며 군사적 긴장을 고조하고 있다. 대만 안에서도 펠로시 의장의 방문을 놓고 환영과 반대 여론이 엇갈렸다. 이 틈에 일본은 중국의 군사행동을 견제하며 동아시아 긴장 국면에 편승했고, 북한은 “미국의 내정간섭”이라며 중국의 편을 들었다.

날뛰는 중국, 편드는 북한

중국 관영매체들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연일 강도 높게 비판하며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계열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이날 사설에서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어리석고 무모하며 위험한 도발”이라고 규정했다.

이 매체는 “대만해협의 현상 유지에 대한 심각한 파괴이자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정치적 배신”이라며 “미국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거두는 정치적 성과보다 더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은 대만을 영토의 일부로 간주한다. 1979년 미·중 수교를 계기로 대만은 1981년부터 국호인 중화민국을 국제행사나 체육대회에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에서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이란 결국 대만과 통일을 뜻한다. 글로벌타임스는 이런 중국의 관점을 담아 “중국의 모든 대응은 정당한 주권국의 권리행사”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대응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이고 단호하며 꾸준하게 진행될 것”이라며 “중국의 대응은 (대만과) 통일을 목표로 한다. 통일을 이룰 수 있는 시간과 동력은 확고히 우리 손에 있다. 미국과 대만의 독립 세력의 도발은 오히려 중국의 완전 통일 실현에 속도를 내게 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중국 민병대원들이 3일 수도 베이징의 미국대사관 앞을 행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중국 인민해방군 창설 95주년을 기념한 광고판이 1일 베이징 시내의 한 건물에 붙어 있다. EPA연합뉴스

인민일보는 이날 1면 기사에서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은 누가 대만의 현상 유지를 변화시키고 미‧중 관계, 국제질서, 지역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줬다”며 “민의와 대세는 거역할 수 없다. 통일을 이루겠다는 중국 정부와 인민의 결심은 굳건해 어떤 세력도 막을 수 없다. 우리는 대만 독립 세력에 어떤 공간도 남기지 않을 것”이라고 적었다.

북한은 맹방인 중국의 편을 들고 나섰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이날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미 국회 하원의장의 대만 행각 문제가 국제사회의 커다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며 “미국의 파렴치한 내정간섭 행위”라고 비난했다.

친미‧친중으로 갈라진 대만

미국 의전 서열 3위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은 25년 만에 성사됐다. 앞서 1997년 뉴트 깅그리치 당시 미 하원의장이 마지막으로 대만을 찾았다. 대만 정부와 시민들은 펠로시 의장의 방문을 미국에서 독립국으로 인정을 받은 행보로 평가하고 있다.

펠로시 의장을 환영하는 인파는 지난밤 타이베이 시내 곳곳으로 몰려들었다. 펠로시 의장이 지난 2일 밤 10시43분(현지시간·한국시간 밤 11시43분)쯤 도착한 쑹산공항, 숙박을 위해 이동한 타이베이 그랜드하얏트호텔 주변에선 ‘대만은 펠로시의 방문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걸렸다.

환영 인파 속에서 ‘Taiwan≠China’(대만과 중국은 다르다)거나 ‘친선’ ‘우정’을 적은 팻말이 등장했다. 세계에서 9번째(509.2m)로 높은 건축물인 대만의 랜드마크 ‘타이베이101 빌딩’ 외벽에는 ‘TW ♥ US’(대만은 미국을 사랑한다)는 문구가 표시됐다.

대만 시민들이 지난 2일 밤 수도 타이베이에서 ‘자유’ ‘친선’ 등의 문구를 적은 팻말을 들고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방문을 환영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대만 시민들이 지난 2일 수도 타이베이에서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방문을 반대하면서 차이잉원 총통에게 항의하는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하지만 대만 시민 모두가 펠로시 의장의 방문을 반긴 것은 아니다. 펠로시 의장의 숙박 호텔 주변에선 반미(反美) 시위도 열렸다. ‘Ugly American(추악한 미국인)’ ‘미국은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는 팻말과 현수막이 펼쳐졌고, 일부 시민은 “펠로시는 떠나라”고 외쳤다. 이로 인해 차이 총통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불거졌다.

대만 안에도 중국과 갈등에 반대하거나 통일을 추진하자는 여론이 존재한다. 대만은 지난해 도쿄올림픽 참가를 앞두고 ‘차이니즈 타이베이’ 대신 ‘타이완’이라는 국호로 출전하기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당시 중국은 대만을 강하게 압박했고, 투표 안건은 20만여 차이로 부결됐다. 전쟁을 불사한 중국과 갈등보다 평화를 유지하길 원하는 대만 내부의 갈라진 여론이 당시 투표에서 확인됐다. 펠로시 의장의 방문을 계기로 대만 내부의 친미‧친중 여론은 다시 파열음을 내기 시작했다.

‘전운의 대만해협’ 끼어든 일본

중국은 대만 주변 해상에서 포위하는 형태의 군사훈련과 실탄사격을 예고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인민해방군의 훈련 해상 6곳의 위치를 공개하면서 “4~7일까지 해당 해역‧공역에서 중요 군사훈련과 실탄사격이 시행될 것”이라며 “해당 해상으로 훈련 기간 중 선박과 항공기는 진입하지 말라”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이날 오전 정례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4일부터 실시한다고 예고한 군사훈련 대사 해역은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을 포함하고 있다”며 “실탄사격 훈련이라는 군사 활동의 내용을 고려해 중국으로 우려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3일 수도 도쿄에서 중의원 임시국회 개회식에 참석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찰스 플린(오른쪽) 미 육군 태평양 사령관이 3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남부 바투라자 훈련장에서 열린 ‘슈퍼 가루다 실드’ 훈련 중 전열을 점검하고 있다. 이 훈련엔 미국·인도네시아는 물론 일본, 호주, 싱가포르가 참가했다. EPA연합뉴스

마쓰노 장관은 이날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일본 정부가 언급할 입장이 없다”며 즉답을 피했다. 대만해협의 군사적 긴장에 대해서는 “평화와 안정은 일본의 안정보장과 국제사회의 안정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되길 기대한다”고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중국의 군사적 긴장 고조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으로서 전쟁을 포기하고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의 헌법 9조, 이른바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에 힘을 실을 수 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위시한 일본 집권 자민당은 자위대 존재의 근거를 명기하는 헌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월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올해 들어 빈번한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이어 대만해협의 전운이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의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다.

마쓰노 장관이 이날 중국의 해상 훈련 지점 일부를 EEZ라고 주장한 만큼, 실탄사격이 실제로 이뤄지면 중국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과 논조가 변화할 가능성도 있다. 기시 노부오 일본 방위상은 지난 2일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중요하다는 미국과의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그 관점에서 주의 깊게 주시하겠다”고 말했다.

일본 후지뉴스네트워크는 이날 자국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기시다 총리와 펠로시 의장이 조찬하는 방향으로 조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펠로시 의장은 이날 한국을 방문한 뒤 오는 4일 일본으로 떠날 예정이다. 기시다 총리와 펠로시 의장의 조찬은 오는 5일 일본 수도 도쿄 총리관저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논의되고 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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