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을 만났다. 1박 2일 동안(7월 28~29일) 지리산 장터목을 만나고 천왕봉을 만났다. 지리산 천왕봉을 만난 게 언제 일인지 헤아려 보니 벌써 8년 전의 일이다. 세상에, 세월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났다. 남편이 암 판정 받기 훨씬 전에 천왕봉을 다녀왔고 수술하고 회복한 것이 벌써 5년이 지났으니...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남편은 건강을 되찾고 난 뒤 처음 가는 것인만큼 기대와 설렘이 가득했다. 나는 산행도 거의 안 한데다가 요즘 같은 내 체력으로 지리산까지 갈 수 있을까 싶었지만, 굳이 내가 함께 가야 한다기에, 가다가 못 올라가면 되돌아오자는 마음으로 따라 나섰다.
첫째날, 아름답던 일몰을 뒤로하고
▲ 지리산 칼바위
ⓒ 이명화
▲ 지리산 출렁다리...
ⓒ 이명화
지리산국립공원 입구에 다다르자 지리산에 온 것이 실감이 났다. 주차하고 배낭을 챙기고 산행 입구에 접어들었을 때, 아는 길이니 벌써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간헐적으로 저녁 운동한다고 가까운 공원 산책길 몇 바퀴 걷는 게 전부인데 걱정부터 앞섰지만, 어느새 발걸음은 숲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다행히 첫날은 중산리 계곡길 따라 걸어서 장터목대피소까지 가면 되었고, 다음날 지리산 천왕봉을 만나고 하산하기로 했기에 적어도 해 떨어지기 전에 장터목까지만 가면 된다 생각하고 느긋하게 걸었다. 초입부터 무더위로 숨이 가쁘고 몸은 좀 무거웠지만 조금씩 올라가니 차츰 몸이 적응했다. 무엇보다도 계곡 물소리가 등산길 내내 흥겨운 노래소리처럼 따라붙어서 더위와 피로감이 덜했고 걷는 길이 즐거웠다.
▲ 지리산 끝없이 계곡 물소리 따라 붙고...
ⓒ 이명화
그래, 산행을 하면서 몸으로 배웠었지.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것을. 까마득하게 높고 먼 산을 언제 도착할까 싶어도 처음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으로 당도하게 된다는 것을. 차츰 고도는 높아지고 얼음처럼 차가운 물을 마셔가며 마침내 도착한 유암폭포에서 잠시 머물렀다. 조금 지나면 곧 급경사길이 한참을 이어지고 오름길에 숨이 턱에 닿을 때쯤이면 장터목에 도착할 것이다. 유암폭포에서 땀을 식히고 잠시 망중한을 즐기다가 다시 배낭을 등에 매고 길에 올랐다.
오름길에서 하산하는 사람들도 이따금 만나 인사도 나누었다. 올라가는 사람 내려가는 사람이 이따금 마주하면서 마지막 약 1키로미터 남짓되는 높은 길에서 남은 힘을 내었다. 드디어 계곡 물소리 끊어지고 오르막 끝에서 장터목 식수대가 보였다. 그 위로 가파른 계단 위에 장터목대피소가 있었다. 지치고 땀으로 흠뻑 젖은 얼굴과 몸을 장터목 식수대 앞에서 타올로 대충 닦고 대피소에 닿았다. 숙소를 지정받고 우린 밖으로 나왔다.
▲ 지리산... 장터목 가는 길...
ⓒ 이명화
▲ 지리산 꽃들도 반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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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목 바깥 테라스에서 버너와 코펠로 지어 먹는 저녁, 더운 김이 사그라들고 밥 뜸이 돌면서 나는 구수한 밥 냄새와 삼겹살 굽는 냄새가 식욕을 돋우었다. 안개 걷히고 저녁놀이 반야봉 쪽 하늘가를 붉게 물들였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생각을 품고서 일몰에 빠져 있었다. 누군가 옆에서 크게 번지다 서서히 소멸하는 저녁놀 바라보며 하는 말. "일출도 아름답지만 일몰도 아름답다...."
▲ 장터목 식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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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터목... 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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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목도 다 좋은데 이곳 화장실은 여전히 적응이 안 돼서 난감했다. 곧 바람이 안개를 몰아왔고 장터목은 이내 안개에 갇혔다. 바람과 안개가 사물을 지웠다. 짙은 밤안개 속에서 우리는 한동안 바깥에 서서 어슬렁거리며 지리산의 옛이야기들을 했고, 별이 쏟아지던 여름밤에 밖에서 비박했던 얘기도 하며 추억에 잠시 잠겼다.
곧 소등한다고 해서 숙소로 들어갔다. 밤 9시 정각에 불이 꺼졌다. 숙소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코고는 소리에 더더욱. 새벽 늦게까지 이리저리 뒤척이는데 새벽 3시 가까이 되자 알람 울리는 소리 요란하게 번지더니 여기저기서 부스럭거리는 소리 요란하고 부산스럽게 짐 챙기는 소리가 숙소 방안 가득했다.
천왕봉 일출 보러 가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이었다. 한바탕 난리더니 이내 조용해졌고 숙소가 텅 비었다. 일출 보는 건 예전에 많이 했던 일이라 우린 생략하기로 했었다. 겨우 잠을 청해 설핏 잠이 들었는데, 전화 소리에 잠이 깼다. 오전 6시가 가까웠고, 잠이 달아나버렸다.
둘째날, 많은 것에 감사했던 하루
▲ 지리산 장터목의 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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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터목 안개 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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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도 안개는 여전했다. 대충 아침을 먹고 천왕봉으로 향했다. 장터목을 일별하고 제석봉을 지나고 축축하게 젖은 숲길을 걸었다. 잠시 소나기가 지나가다가 멈췄다. 바람이 불고 안개는 짙게 깔려 있고, 우리는 바람에 흔들리며 안개 속을 걸으면서도 좋았다. 통천문을 지나고 몇 개의 가파른 계단 길을 지나고(예전엔 바윗길이었던 곳을 나무계단으로 해놓은곳도 있었다) 바위를 짚고 걷고 가다 보니 천왕봉이 저만치 안개에 묻혀 있는 게 보였다.
지리산 천왕봉 도착! 안개에 묻혀 주변 경관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짙은 안개에 갇혀 있는 것도, 맑은 날도 다 좋았다. 천왕봉에서 하산하는 중산리 길은 급하게 경사진 길이다. 그런데 그 험준하고 가파른 바윗길이 나무계단으로 바뀌어 있어 조금 수월했다. 그럼에도 하산 길은 내내 가팔라서 한걸음 한걸음이 조심스러웠다. 짙은 안개... 젖은 바윗길이 미끄러웠다. 거의 직각으로 내뻗은 하산길.
▲ 장터목 장터목의 이른 아침...안개에 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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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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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8년만에 지리산을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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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로터리대피소에 다다랐다. 우린 여기서 학생교육원 방향으로 내려가서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때마침 그쪽 방향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버스가 몇 시에 있는지 물었더니 오후 2시 50분에 있다고 했다. 우리도 그들 뒤를 따랐다. 그런데 걸음이 얼마나 빠른지 앞서가던 사람들이 시야에서 금방 사라졌다.
나는 학생교육원까지 가는 길 시간을 알 수 없으니 빠른 걸음으로 가야지 싶은데 남편은 느긋하기만 해서 내심 마음이 바빴다. 아니나 다를까 한참 내려가다가 올라오는 사람이 있어 얼마쯤 걸리냐고 물었더니 족히 1시간은 가야한다고 했다. 벌써 2시 20분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고, 시간은 촉박해지고 안 되겠다 싶은지 남편은 먼저 가서 버스를 잡겠다고 우리더러 뒤따라 오라고 하고 달려갔다. 나 역시 뛰다시피 빠르게 걸었고 뒤따라 오는 남편 여동생도 눈에 띄는지 가끔 보면서 빠르게 내달렸다. 목적지를 향해 돌진했다. 모두가 괴력(?)을 발휘했다. 남편이 먼저 도착했고, 버스가 도착했고, 출발 직전에 우리도 도착했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휴~
▲ 지리산 천왕봉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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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천왕봉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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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통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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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으로 온몸이 젖은 상태로 버스에 올랐다. 10분 만에 중산리탐방센터에 도착했고 산 위의 날씨와는 달리 뙤약볕이 쨍했다. 1박 2일이 마치 여러 날 지난 것처럼 느껴졌다. 근처 식당에서 밥 사먹고 집으로 출발. 돌아오는 길에 타이어가 펑크나는 돌발상황도 생겼지만, 끝까지 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무엇보다 8년 만에 지리산 천왕봉을 만난 것이 남편에겐 건강이 회복된 후에 첫 지리산 등반이라 감회가 새롭고 감사한 일이리라.
▲ 지리산 하산길...
ⓒ 이명화
[산행수첩]
7/28: 9시 15분 물금 Ic 통과- 10시 55분 단성 IC--지리산국립공원 도착 (11시 30분)_11;33분 주차장~ 11시 50 산행출발=12시 45분 칼바위'- 삼거리 (천왕봉.장터목갈림길) 12:55- 유암폭포 3시 10분- 장터목대피소 5:20
7/29 : 아침 9:5 장터목대피소에서 출발-10시 20분 통천문=천왕봉 10시 55분 11시 30분 하산, 천왕샘 11:45-개선문 12:25-로터리대피소 1:50 -학생교육원 2시 50분- 지리산탐방센터도착 3시 정각 도착- 4시 40 분 출발- 단성 IC5:17- 밤중에 도착.